햇빛 속의 여자

회광반조(回光返照)/햇빛 속의 여자/에드워드 호퍼

by 조승희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자>

천근만근이란 말이 과장법이 아닌 것 같이 몸이 무거운 아침이다. 주말 내도록 평소 잘 신지 않던 굽 있는 신을 신고 더위 속을 걸어 다닌 탓이다. 발바닥이 부은 것인지 멍이 든 것인지 한 걸음 떼기도 쉽지가 않다. 7시 알람이 울릴 때까지 다시 누워 한 숨을 더 잤다. 겨우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와 냉커피 한 잔을 물처럼 들이켰다. 한 발자국도 못 뗄 것 같았는데 막상 걸으니 발의 감각도 돌아오고 멍했던 정신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책상 앞에 앉았지만 아침의 고요함과 여유가 빌려온 것처럼 낯설다. 고작 이틀 집을 비웠을 뿐인데 토토,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와 함께 고생 고생하며 모험을 하다가 캔자스 시티로 돌아온 도로시가 된 듯한 느낌이다. 돌아온 탕아를 맞아주는 아버지에게 안기듯 책상 위에 쿠션을 얹고 고개를 뉘었다.


책상 모퉁이에는 탁상형 일력이 두 개 놓여 있다. 올해 구입한 터라 아직 한 바퀴를 다 돌지 못한 명화 일력과 3년째 사용하여 손 때가 탄 법상스님의 일력다. 두 개를 나란히 두고 한 장씩 넘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주말에는 책상에 잘 앉지 않기에 월요일 아침에 몰아서 몇 장 넘기게 된다. 7월 1일에 멈춰진 종이를 한 장 넘기니 일력은 끝이 났다. 6월에서 7월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달력과 달리 일력은 방향을 돌려주어야 한다. 올해의 반환점을 무사히 지났구나 싶으면서도 세월의 속도에 새삼 놀란다. 시간이 30대는 시속 30km로 40대는 시속 40km로 달려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30분이 1년이 되어 하루 만에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리고 노인으로 변해가는 섬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본 적 있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조급해지는 건 유한한 생명체의 본능일까. 시간의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고 느끼는 것,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자각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아있는 동안 언가를 빨리빨리 해내야만 할 것 같다.


새해가 되며 올해 목표로 삼은 것은 한 권의 책으로 엮을 만한 글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방향을 점검해보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고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더 놀랐다. 책을 출간한 작가들과도 친분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출간 작가가 되어보고 싶은 욕심의 꽃 맹아리가 어디선가 움텄다. 기획서가 필요하다 했다. 남들과 차별화를 두면서도 일관된 테마로 써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다. 잘 알고 오래 생각해오던 것이라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재로 기획의도를 쓰고 32개의 꼭지를 만들었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겠구나' 작은 성취감이 긴 여정의 팡파르를 울렸다


낯선 길을 두리번거리는 걸 좋아해서 출발길은 신이 났다. 그러나 몇 번 쓰고 나니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길을 나섰으니 걷긴 걸어야겠는데 좀 걸었다고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정해진 길을 가려니 처음처럼 흥도 나지 않았다. 부족한 글쓰기 실력, 소재에 대한 얄팍한 지식들 탓에 길은 더 험하게만 느껴졌다. 그만 갈까 하고 돌아보니 출발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어오긴 했다. 안 간 셈 치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마음을 다 잡고 조금 더 걸어보자고 힘을 냈다. 조금 걷고 또 쉬고 그러는 동안 목표치의 반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일력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한 장 한 장 넘어가며 여름을 맞이해 있었다.


주말 여행지는 서울이었다. 한강물이 황토색으로 변할 만큼 많은 비를 쏟아부었다던 하늘이 강력한 레이저건 수백 대를 동원하여 맹렬하게 햇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작년에 사서 한 두 번 신었을까. 양말을 챙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운동화를 놔두고 급히 꺼내 신은 샌들이 발바닥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다들 각자의 이유로 흠씬 지쳐있었다. 마지막 남은 일정은 남산 케이블카 타기. 남산 행을 소망한 건 엄마였다. 부산행이 처음인 사람들이 부산하면 떠올리는 곳이 해운대이듯 서울행이 처음인 사람이면 누구나 떠올리는 단어가 '남산'과 '덕수궁 돌담길'정도일까? 엄마도 그랬다. 우리에겐 목적지가 있었고 '다시 못 올지도 모를' 곳에 와 있었다. 누군가 그냥 쉬자고 한 마디만 했어도 그날 밤 마음은 조금 불편했어도 몸은 편했을 것이다. "또 언제 오겠니"라는 말에 남산행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대기 30분이란 안내표지를 보고 승강장 쪽으로 올라가니 구불구불 이어진 사람 줄이 계단 아래까지 이어졌다. '서울은 원래 이렇게 덥나? 서울은 원래 사람이 이렇게 많나?' 애꿎게 서울 탓을 해가며 줄을 섰다. 에어컨도 무력하게 만드는 사람 열기에 치여 속이 울렁거렸다. 일단 올라가면 괜찮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일행에게 말해가며 아픈 발을 들었다 뗐다 움직거렸다. 콩나물 자루처럼 빼곡한 사람들 틈에 끼여 케이블카를 탔지만 리를 놀라게 한 것은 서울 야경이 아니었다. 상행길 대기 줄보다 두 배는 더 긴 하행길 줄만이 입을 벌어지게 할 뿐이었다. 목적지가 있는 여행은 정복전쟁과 비슷하다. 과정을 즐기기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게 목적이다. 승리한 기쁨의 순간은 잠시, 다른 목적지를 향해, 아니면 돌아갈 곳을 향해 또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세팅된다. 인증사진을 찍었으니 줄이 더 길어지기 전에 얼른 내려가고 싶어졌다.


책상에 엎드려 그림 한 점을 본다. 그림 속의 여인은 혼자다. 언덕이 보이는 어느 호텔에서 하룻밤을 잤나 보다. 어젯밤 그녀는 치쳤으려나. 굽 높은 신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두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잠에 들었다. 눈부신 햇살에 몸이 먼저 깨어났고 담배 한 개비의 도움을 받아 정신도 맑아진 듯 보인다. 근육질 다리, 곧게 편 등과 어깨, 햇빛 속에 다리를 살짝 벌리고 선 그녀는 적나라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사색에 빠져 있다. 불교에서는 밖으로 향한 빛을 돌이켜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을 '회광반조回光反照'라 한다.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다.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하려야 비교할 수도 없는 온전한 개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자리를 아는 혜안을 지닌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로 여겨 밖으로 무언가를 구하러 나선다. 포커스를 밖에다 맞추고 세상을 살아가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뜻대로 되는 일보다 월등히 많다. 아무렇게나 신을 벗어던지고 잠들고 싶은 날들이 많은 것이다. 그럴 때 빛을 돌려 나를 비추게 하고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하는 일, 더 이루어야 할 것 없이 갖추어져 있는 존재를 느끼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


자문한다. 목표라는 걸 정한 게 잘못된 걸까, 아니면 목표점을 잘못 정한 걸까. 이 길이 맞나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그만 가기 위한 핑계인 것일까 더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일까. 즐겁기 위해서 나선 길인가,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나선 길인가. 글쓰기에 진심인가 매번 묻고 있다는 것 자체로 정해진 목적지를 정복하기 위함이지 운명을 믿고 즐기는 여행자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대답하고 있는 꼴이었다. 글쓰기라는 만만치 않은 여정에서 맞지 않는 신을 신고 뒤뚱거리다 이른 더위까지 만난 셈이었다. 그러나 가고자 하는 방향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나서지 말았어야 하는데,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같은 후회는 아니었다. 일정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하고픈 욕심이 여행을 즐길 여유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날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일곱 걸음 움직이고 삼사분 멈춰버리는 남산 케이블카 하행 대기줄에서 우리는 웃음을 잃은 채 서 있었다. 멈췄다 걷기 시작하는 타이밍에서 앞만 보고 좀비처럼 움직이던 우리는 수군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지쳐버린 현아가 움직이여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서서 잠이 들어 있었다. 뒤에 있던 젊은 커플이 움직이지 않는 현아를 보고 당황하여 깨워야 할까 망설이다 눈이 마주쳤다. 툭 치자 잠에서 화들짝 깨어난 현아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며 미안하단 눈인사를 했다. 뒤에 있던 커플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고 현아는 부끄러워했다. 조금씩 우리 앞보다 뒤쪽 줄이 훨씬 길어졌다. "힘들면 뒤를 봐." 한 마디에 다 같이 또 웃었다. "올여름에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넷플렉스나 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히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빛의 속도로 잠에 빠졌다.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으로 이름을 정했다. 7월은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이라 한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일력의 방향을 바꾸어주었다. 첫 장을 넘긴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다짐을 한다. 줄어들지 않는 행렬처럼 남산행이 오래 추억될 것을, 넷플렉스나 봐야지 하는 진심이 일주일도 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이왕 나선 글쓰기 여행은 힘겨워도 웃어가며 일정을 마치고 싶다. 그러나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가 되게 놔두리라. 열심히 말고 즐겁게 살리라. 빛 속에 당당히 선 저 자유로운 여인처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만족하리라. 7월은 달려오느라 진이 빠지고 무더위까지 만나게 되는 달이다. 잠깐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볼 보기 좋은 '회광반조'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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