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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May 27. 2021

고군분투 중인 ‘생활인’ 혹은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의 변명> 저자 김도언 인터뷰

아주 평범하고 초라한 일상도 소설 안에서 그려졌을 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소설가들의 예민한 시선과 호흡이 지닌 위력일 것이다. 같은 대상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니 말이다. 지금까지 <철제계단이 있는 풍경>(2004), <악취미들>(2006), <꺼져라 비둘기>(2012) 등의 작품을 발표해 온 소설가 김도언이 ‘한국일보’에 2년 간 연재한 칼럼을 묶은 <소설가의 변명>도 이런 경험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마치 도시락같다. 한 주제가 한 페이지 분량으로 담겨 있어 너무 짧아 아쉬움을 남기지도, 너무 길어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작가는 보일러실에 물 보충하러 갔다가 어미 고양이의 출산 장면을 목격하거나, 매번 시계를 볼 때마다 초침이 4시 44분을 가리키는 일처럼 일상적인 풍경에서 특별함을 길어낸다. 세월호 사태나, 대통령 이슈를 언급하거나 출판기획자라는 ‘생업’에 대한 소회도 담겨 있다. 독서를 마친 후 독자들은 잠시 인간 김도언의 시각에 익숙해진 느낌에 생경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소설가의 변명>을 쓴 김도언을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모든 질문에 한 글자 한마디 힘주어 답변하는 작가에게서 정성스러운 ‘변명’의 태도와 만날 수 있었다.





Q 책 제목이 ‘소설가의 변명’인데 보통 ‘변명’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제목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전부 제가 일상에서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코와 입으로 흡입해 온몸과 감각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들이에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시대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 편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죠. 저는 그런 것들이 한 소설가가 자신의 당대적인 삶을 살아갔다는 하나의 ‘증명’인 동시에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가란 존재는 이 세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존재인 동시에 독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거든요. 독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은 것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게 변명(해명)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소설가가 쓰는 모든 소설 작품도 독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대답하는 것이고요. 이 글 역시 산문이란 형식으로 제가 독자들로부터 받은 질문들에 해명하는 대답의 결과물이라는 거죠.

Q 칼럼은 불특정다수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소설이나 시에 비해 반응이 다른 점이 있었나요?

가끔 독자한테 온 메일이나 칼럼 관련 포스팅에 달린 댓글을 본적이 있어요. 제 소설에 대한 반응보다 산문에 대한 반응이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솔직한 것 같아요. 제 소설에 대한 반응은 작가인 제가 볼 때 간혹 비비 돌려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쓰는 산문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반응을 하시더라고요.

Q 사회에서 ‘소설가’, ‘시인’으로 불리는 작가님에게 시나 소설을 쓰는 일과 신문에 칼럼이나 산문을 쓰는 일 사이에 위계를 두시나요?

저는 차이를 두지 않아요.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칼럼이든 유한한 어떤 물리적인 시간 안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제가 머물고 있던 시공간을 관찰해서 보고한다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비중을 갖는 형식들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소설이나 시를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미학적인 고급함을 갖춘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봐서 그러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시각에 크게 공감하지 않아요. 당대라는 시간에 제가 살고 있는 공간을 면밀히 관찰하고 보고하는 것. 그때 적합한 양식으로 써나갈 뿐이죠. 한가지 양식만으로는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을 빌어다가 쓰는 것 뿐이고요.



Q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쓸 때, 작가의 글쓰기와 일반인의 글쓰기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건 어떤 동일한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태도란 말을 상당히 좋아하거든요. 그게 소설이든 시든, 좋은 작품은 그 작가가 좋은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좋은 태도란 ‘세계와 정면대결 하려는 태도’거든요. 이 세계가 자본적인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자본의 구속을 받고 있지만 그런 것에 타협하거나 협조하지 않고 작가로서 자존심을 걸고 정면대결 하겠다는 그런 태도를 가질 때 그 사람이 쓰는 시든 소설이든 산문이든 특별한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항상 좋은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해요. 형식이나 호흡은 달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태도 안에서 시나 소설이나 산문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작가들이 세계와 정면대결하기에 현실은 힘겨울 때도 많잖아요.

문단이나 문학판도 제도화 된지가 오래죠. 제도화 됐다는 건 생태계가 만들어져서 그 안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단 얘기에요. 제도화 된 이후에는 다툼이나 권력, 서열이 발생하고. 상품화 되는 폐해도 발생하죠. 생태계가 만들어진 건 어쩔 수 없고, 그 안의 질서란 것도 이제는 거역하기 힘들죠. 다만 작가 개인이 구조적 부조리를 알고 비판적 정신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과 그걸 모르고 제도화된 시스템 속에 부속품으로 말려들어가서 글을 쓰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예요. 이런 현실에 대해 균형잡힌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게 이 시대에 그나마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는 양심이라고 생각해요.




Q 보통 작가들은 창작을 본업이라 믿고 생업은 부수적 요소로 치는 경우도 많은데요.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억압에 대한 반동기제가 작동하지 않아 오히려 소설이 써지지 않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소개 글에 적으셨습니다. 실제 샘터, 생각의나무, 열림원에서 편집장으로 활동해오면서 ‘생활인으로서의 작가’의 태도를 강조해오셨는데요.



보통 30대 초반에 후배들이 등단하면 “이제부터 난 작가야”라고 하면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그래요. 오히려 작가가 된 이후에는 자기자신을 스스로 너무나 신성을 부여해서 범인들이 모여있는 공간 속으로 자신을 집어넣는 걸 꺼려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게 이해가 안돼요. 사회 구조를 체험할 수 있는 직장이나 인간조직 안에서 두루두루 사회의 서열화된 폭력적인 구조도 경험을 해보고 그 안에서 모멸감도 느껴봐야지만 인간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나 인식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또 한가지 이유는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만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기가 쓰고 싶지 않은 글의 청탁이 왔을 때 그걸 거절할 수 있어요. 자신이 작가라서 조직생활을 안하고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경우엔 경제적으로 예속되고 문학적으로도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없게 되죠.



Q 소설가로 활동하던 중 2012년에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로 등단하셨잖아요. 보통은 시로 시작해서 소설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소설로 시작해서 시로 간 경우인데요.



소설이란 형식을 통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게 했다는 자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이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 구조 안에서 인물들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 서사 장르인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충분히 이야기를 했으니, 긴 호흡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찰나적 진실들을 포착하는 것에 대한 결핍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게 시라는 장르더라고요. 시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는데 소설을 쓰면서 2012년도에 그 동안 모아놓은 시를 잘 갈무리 해서 보냈더니 당선이 되었어요. 



Q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에 ‘한국문학의 국지성과 글로벌스탠더드의 폭력성을 함께 체감했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유수의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을 스스로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그들의 작품을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추수하기 바쁘거든요. 외국에 나가보니까 우리나라 작가에 대한 세계 작가들의 인지도가 너무나 희박하고 대학 도서관을 가봐도 중국, 일본의 문학은 빼곡하지만 한국 문학은 코너 자체가 없어요. 그런 사실에 깜짝 놀라면서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국지성을 체득하게 되었어요. 우리 문학도 좁은 시각 틀에서 벗어나서 세계 문학의 일환으로 세계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넓은 관점에서 창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문학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표현한 거였어요. 아이오와 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은 그런 것을 두루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 주신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저는 저만의 내면적인 명령에 따라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써나갈 거예요. 현재 시인들 인터뷰 작업을 하고 있고, 앞으로 그걸 모아 책을 낼 예정입니다. 올해 두 권정도 책이 나올 것 같아요. 

- 북DB 2015.6.29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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