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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un 06. 2021

죽음 앞에서만 가능한 순애보

<당신> 출간 박범신 인터뷰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라는 이름으로 평생의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보통 인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부르는 말 “당신”에는 만만치 않은 울림이 녹아있다. <은교>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박범신이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신작 소설을 냈다. 과거 작품에서 뜨거운 정념을 다룬 그가, 노년에서야 완성된 사랑은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졌다.


비 오던 어느 토요일, 박범신을 그의 자택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어느덧 칠순이 된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모발은 성성한 백색이 되었고 얼굴엔 주름이 생겼지만, 시간을 거스르는듯 눈빛과 몸짓 사유에선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왜 그를 ‘영원한 청년작가’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건강 비결을 묻자 “자연으로서 살면 된다”고 답했다. 박범신이 들려주는 신작 소설 <당신>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43년을 달려온 박범신의 작가 철학에 대해 귀 기울여 보자.







"소설 쓰는 내내 곁에 아내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Q 근황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거처를 논산으로 옮기셨다는 기사를 봤어요.

일정하진 않은데, 서울서 반, 논산에서 반 오고 가면서 살아요. 논산이 내 작업실인 셈이죠.




Q 신작 <당신> 도입부는 윤희옥이 죽은 남편 주호백의 시신을 앞뜰에 묻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슬픈 장면임에도 아주 담담하고 아름답게 묘사하셨더라고요.

이 작품의 결말은 비극이지만 내용만 보면 해피엔딩이에요. 감상에 빠지지 않고, 담담히 그리려 했어요. 보통 죽음을 앞두고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이렇게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하죠. 주호백은 이 모든 단계를 거쳐 죽을 준비가 다 된 행복한 죽음에 든 거예요. 물론 슬프지요. 하지만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편안한 죽음이라서 고통이나 분노로 그릴 필요는 없었어요.




Q <당신> 서문에 “나이 일흔에 쓴 이 소설을 부끄럽지만 나의 ‘당신’에게 주느니, 부디 순하고 기쁘게 받아주길!”이라고 쓰셨죠. 부인에게 바치는 작품이라니 로맨틱한데요.

아내가 평소 가까이에 있어도 자주 못 들여다보잖아요. 오래된 아내는 장롱 같은 존재예요. 10년, 20년 두고 살면 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 소설 쓰는 내내 곁에 오래된 여자가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소설을 쓰면서 집사람과의 43년 인생도 되돌아보고, 아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작가를 데리고 사는 게 힘든 일이에요. 작가는 예민하니까요. 주호백이 윤희옥 데리고 사는 게 힘들었던 것과 똑같은 거지요. 지금껏 수십 권 소설을 썼는데 한 번도 아내에게 소설을 선물한 적은 없었더라고요.




Q 아내분께서는 이번 소설에 대해 뭐라고 하시던가요?

원래 마누라한텐 소설 얘기 잘 안 해요. 일전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50분짜리 KBS 라디오 프로그램 두 개를 만들었어요. 지금까지는 한 번도 아내를 행사에 부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오라고 했지요. 아내가 손님들 사이에 묻혀서 앉아 있었어요. 그때 MC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관객석에 아내가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아내에게 이 작품 읽어주고 싶다고 해서 작품을 읽었어요. 아내가 저 뒤에 앉아 있어서 반응은 못 봤지만.




Q 이번 작품이 노부부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읽으면서 예전에 선생님께서 경향신문에 쓰신 ‘이혼에 관한 해묵은 농담’이란 제목의 칼럼도 생각이 났어요. ‘안온한 일상’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이혼을 고민하던 내용이었는데요.

내가 논산으로 내려갈 때의 삽화지요. 작가는 지속해서 자신을 긴장시키는 게 어려운 일이거든. 젊을 땐 가난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긴장했고, 나이 들고 힘든 역할이 끝나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습관에 내 삶을 맡기기 쉽잖아요. 항상 내적으로 긴장해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소설을 못 쓸 거예요. 당시 내적으로 긴장시킬만한 요인이 별로 없어서 ‘마누라랑 한번 이혼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 거예요. 어떤 부부인들 이혼하고 싶은 순간이 왜 없겠어요? 나에게도 있고, 아내에게도 그런 순간이 당연히 있었겠죠. 그랬지만 잠든 얼굴 들여다보니까 못하겠더라고요.




Q 윤희옥과 주호백 부부는 그들 세대에서 남편-부인 관계로부터 좌우가 뒤바뀐 거울상 같아 보였어요. 윤희옥이 자유로운 삶을 좇는 인물이라면, 주호백은 그런 아내에게 평생 헌신하는 인물이죠. 실제 작가님 부부의 모습은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주호백 캐릭터가 우리 집사람이고, 윤희옥이 나예요. 사회 통념상으론 여자가 제 소설 속 남편 주호백 같은 삶을 살고, 남자가 윤희옥 같은 삶을 살아왔죠. 한국사회는 가부장제라 여성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기에 아내들이 헌신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본질이 꼭 그런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Q 이번 소설에서는 치매 증상이나 치료법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묘사돼 있더라고요. 치매라는 소재를 다루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이번 소설은 독자들에게 치매라는 병에 관해 알리고자 하는 계몽적 목적도 있었어요. 이 병에 관해서 자료 조사도 꽤 많이 했고요. 주호백처럼 참고만 살면 뇌에 나쁜 단백질이 끼면서 치매가 되기 쉬워요.







"<당신>은 사랑을 꿈꾸지만 외롭게 사는 오늘의 청춘들도 읽어야 할 소설"




Q 결혼 생활 내내 남편 주호백에게 마음을 주지 않던 윤희옥은 2011년 새해를 맞는 새벽에 치매에 걸린 주호백이 “나를 좀 도와주세요”라 말하며 무너지는 순간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평생 사랑하지 않던 배우자, 그것도 치매에 걸린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 게 어떤 것일까요?

이들은 마지막에 공평해지죠. 남자는 평생 사랑했고, 여자는 5년뿐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헌신이 컸기 때문에 공평해진 관계에서 죽음을 맞이한 거예요. 그게 ‘사랑의 윤리성’이지 않을까 해서 썼어요. 사실 연애 감정으로서의 사랑은 공평하고 안 공평하고도 없는 거죠. 어쩌면 상대의 완전한 멸망과 죽음까지도 요구하고 싶고, 나의 완전한 멸망과 죽음까지도 주고 싶은 것이 사랑 아니겠어요?

사랑은 일종의 정신병 같은 거예요. 유지가 안 되고 지속할 수 없죠. 사람들은 그런 광포한 본질을 이기려고 윤리적 합일을 꿈꿔요. 좀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타협안이죠. 결혼이라는 것도 윤리적 합일을 담기 위한 제도적 그릇이겠죠. 연애는 그냥 놔두면 얼마 못 가지만 결혼에 담기면 오랫동안 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윤리적 합일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라 사랑을 더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지혜로운 전략 같은 것이라 봐요.




Q 비이성적 영역인 ‘사랑’과 이성의 영역인 ‘윤리’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평생 사랑하고, 어느 한쪽은 평생 그를 등지는 일방통행은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데 굉장히 큰 장애겠죠. 이들 부부의 드라마를 쓰면서 고려한 점도  ‘5년’인지 ‘평생’인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마침내 공평해진 상태에서 죽음의 이별을 맞이하잖아요. 죽음의 이별 앞에서 비로소 사랑이 완성되지요. 사랑에는 완성이 있을 수 없어요. 변할 가능성도 많고. 진정한 순애보는 죽음 앞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거죠.




Q 전작 <은교>에서의 사랑이 사회적 굴레를 부수는 것이었다면, <당신>은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의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사랑을 그리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은교>를 러브스토리로 읽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단순한 남녀 사랑 이야기로 그 소설을 해석하는 건 그 작품을 매우 협소하게 보는 거예요. <은교>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슬픔과 도전이고, 존재론적인 소설이자 나아가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은교>에 사랑의 감정을 안 그린 건 아니지만 사랑은 본질이 아니죠. 왜냐하면 그 노인이 욕망하는 것은 육체를 가진 젊은 처녀 은교가 아니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일종의 불멸의 가치, 진선미를 갖춘 완전한 가치에 대한 욕망이거든.

하지만 <당신>은 처음부터 사랑 이야기, 순애보를 그리겠다고 마음먹고 썼어요. 이 작품이야말로 오래된 부부가 사랑으로 죽음을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로서 연애소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주호백-윤희옥-김가인의 삼각관계에서 60년대 이후 굵직굵직한 현대사의 사건들이 배경이 됩니다. 당시 어지러웠던 정치적 환경을 자세히 묘사하신 이유가 있나요?

우리 세대에서 사회 변화는 삶 그 자체였죠. 우리가 먹고살고 사랑하는 문제와 사회적 격변이 한 몸뚱이처럼 얽혀있다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당신>에 세 남자가 나오죠. 체제에 맞서다가 희생되는 김가인, 체제에 맞서긴 했지만 개인적 이유로 타협하면서 평생을 산 주호백, 체제에 매우 강력하게 들러붙어 있는 허용구.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전형적인 인물들이죠. 지난 70년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따라 살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그리기 위해서 전형적인 인물을 배치해야 했어요.




Q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이 아니면 못 볼 꽃을 그냥 지나쳐왔을까"란 문장이 책 띠지 메인카피던데요. 정원에 심어진 매화나무가 이야기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장면마다 꽃이나 나무가 세세히 묘사돼 있더라고요.

늙으면 다 꽃, 나무에 관심이 생겨요. (웃음) 꽃은 아름다워서 보는 게 아니라 생명이라서 보는 거예요. 너구리를 보거나 원숭이를 보는 건 재미가 없잖아. 나는 평생 내가 스스로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주인공도 자연의 사이클을 따라서 말년을 사는 거잖아요. 문명 속에서 우리는 반자연적으로 살려고 애쓰기 때문에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존재는 유한한 존재거든. 결국, 생로병사를 겪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죠. 모든 존재가 최종적으로는 자연의 사이클을 따라가는 삶을 살기 때문에 자연 배경으로 뒷받침을 해주면 이야기가 더 아름답고 슬플 것으로 생각하고 썼어요.




Q 어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거나, 누군가와 오래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지요. 이 소설이 노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단지 노인만 읽어야 할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날엔 자본이 젊은이들의 사랑이나 연애도 장악해 버렸잖아요. 이른바 스펙을 보고 결혼하는 시대니까. 사랑조차도 자본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는 추세거든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사실은 그늘을 보는 것이거든. 상대편이 가지지 못한 것을 봐야 사랑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얼굴이 잘생겼는지,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 돈벌이를 잘하는지 상대가 가진 것만 보잖아요.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마음도 상대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돈의 노예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난 사랑을 꿈꾸면서도 불안하고, 때때로 외롭게 살 수밖에 없는 오늘의 청춘들도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봐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서 총구를 전방에 겨누는 것이 현역작가의 자세"




Q 올해는 문학계가 표절 논란 및 그를 둘러싼 ‘문학 권력’ 논쟁으로 뜨거웠죠. 문학계 원로 작가로서 이 상황들을 어떻게 지켜보셨나요?

나는 문학권력이라는 말 자체도 인정 안 하는 사람이에요. 문학에 무슨 권력이 있어요? 후배 작가들에게는 몇몇 선배 작가가 문학 권력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 나라에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나쁜 권력이 얼마나 많아요? 세상이 개 같은 구조잖아요. 이런 데 비하면 문학은 아직 덜 썩어 있다고 보거든요. 표절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는 기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마치 앞집 남자와 뒷집 여자가 바람 핀 것 같은 스캔들의 관점으로 일부 언론은 이 문제를 다루는데 난 여기에 대해 반감이 있어요.




Q 이번 작품 역시 <은교>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일일 연재를 통해 탈고하셨는데요. <은교> 당시 하루에 3천~4천 명에 달하던 방문자가 100여 명으로 줄어든 것을 보며, 마치 ‘문학의 오늘’을 보는 것 같다며 씁쓸해 하셨다고요.

네이버에 <촐라체> 연재할 때는 방문자가 100만 명 넘었어요. <은교>는 내 블로그에 연재했는데 처음엔 몇십 명밖에 없던 방문자가 보름 지나니까 매일 2천~4천 명 씩 들어왔었고요. 그런데 이번엔 내 블로그도 아니고 회원만해도 7만 명이 넘는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데 조회수가 100~200 전후인 거예요. 마음은 슬펐죠. 국민의 반이 매일 휴대폰을 들고 검색하는데 그들은 무엇을 검색하는 것일까 싶었고요. 물론 문학은 소수자가 있어도 정체성을 지키는 게 문학이고, 우리 삶의 정체성을 지켜가자고 하는 것이 문학이니까 흥행 자체가 결정적인 건 아니예요. 난 문학이 소외된 환경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래도 사람들이 너무 글을 안 읽는 것에 대한 슬픔, 서운함은 느꼈지요.







Q 최근 작가 생활 초기의 중·단편부터 최근의 작품들까지 모두 85편의 작품을 담은 <박범신 중단편전집> 7권이 묶여 나왔는데요. 지난 43년을 결산하는 전집이란 점에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43년간 쓴 짧은 소설을 다 모았죠. 그중에는 20대 후반에 데뷔하고 쓴 소설이 있어서 읽어보니까 문장이 형편없더라고요. 문장구조는 바꾸지 않고, 비문이나 오문이랑 과하게 감상적인 부분은 손을 봐서 냈죠. 내가 올해 칠순이라 개인적인 자축의 의미로 일곱 권으로 만들자고 했어요. 나의 문학적 43년을 한눈에 조감해 볼 수 있는 책으로 <작가 이름, 박범신>도 같이 나온 거고요.




Q 칠순의 박범신은 노부인의 순애보 이야기를 <당신>으로 썼습니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영원한 청년작가’인 박범신이 10년 뒤 팔순에는 또 어떤 작품을 독자들 앞에 내놓을지 벌써 궁금합니다.

그냥 연애 한 번 한 것처럼 인생이 흘러간 것 같아요. 나는 여전히 미완성 작가라고 느끼고 있어요. 나는 나이에 의지하거나, 나이에 숨고 싶은 타입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독자들도 나를 ‘청년 작가’라는 별명에 받아주는 것이겠지요. 나는 지속적으로 강력한 현역작가로 살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이를테면 나이 먹었다고 장교의 반열에 안 가고, 입대해서 얼마 안 되는 졸병의 자세로 가겠다는 거지요. 총 한 자루 들고, 힘들고 어려운 땅바닥을 배를 대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게 졸병들이 하는 일이거든.

자갈밭, 계곡, 산엽 사이를 보병들을 차를 태우고 갑니까. 어쩝니까. 내 온몸이 다치는 것에 불구하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서 총구를 전방에 겨누는 것이 현역작가의 자세라고 보거든요. 문학은 뱀처럼 온몸을 땅에 대고 가는 거예요. 나이 든 척하면 일어서 성큼성큼 걸을지도 모르고, 둥둥 떠서 흘러갈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그건 문학의 자세가 아니에요. 오죽하면 내가 심사를 안 한다고 하잖아요. 나이 들면 소설 안 쓰고 심사해서 심사비로 용돈 하면서 사는 거거든, 소설 쓰는 거 힘들어요. 젊어서도 힘든데 늙으면 코피 난다고. 그런 게 나는 없어요. 나는 강력한 젊은 현역작가 같은 에너지를 신봉하는 타입이에요.




Q 정말 이렇게 꾸준히 작품을 쓴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작가 인생을 통틀어 꼭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나 기록 같은 것이 있나요?

난 아무런 세속적인 욕망은 솔직히 없어요. 돈 벌려고 내가 이걸 쓰겠어요? 평창동에 사는 이층집 모기지로 잡히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상관없고. 다만 나에겐 강력한 문학 순정 주의가 변치 않고 있어요. 나는 평생 에로스와 슬픔의 골짜기를 기어온 것 같아요. 에로스는 사랑에 대한 정념일 것이고, 슬픔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 같은 거지요. 모든 존재는 죽으니까,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론적 슬픔이라는 건 결국 거대한 우울과 맞닿아 있거든.

나는 글을 안 쓰면 우울에게 잡혀먹힐지도 몰라요. 슬픔에 너무 빠져있을지도 모르죠. 존재론적 슬픔과 에로스적인 욕망은 서로 대칭자리에 서 있죠. 우울할수록 강력한 에로스적인 욕망을 느끼게 되고, 그 에너지가 예술적인 에너지예요. 세속적인 욕망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슬픔을 이기기 위해 나는 쓰는 것이죠. 내 안의 슬픔, 고독감, 우울. 이것들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술도 먹어 보고, 연애도 해봤지만 퍼펙트하지 않은데, 글 쓰는 것은 굉장히 퍼펙트해요. 나로서는 바르게 잘 살려고 쓰는 거예요. 글을 안 쓰면 자학이 심해지고,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강력하게 쓰는 거지요.





사진 : 장우제


 북DB 2015.12.11 게재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6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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