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위로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내면 아이'가 탯줄을 끊을 시간

by 하트온

저의 마음은 곧 비가 후드득 떨어질 것 같은 낮게 드리운 먹구름입니다.


많이 힘든 아이가 찾아온 거예요. 저는 이럴 때, 이런 마음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거나, 스트레스를 풀러 나간다거나, 친구에게 전화 걸어 수다를 떤다거나 저 자신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또 찾아올 것을 분명히 아는 손님은 며칠이고 피 터지게 싸우고 온종일 시달리는 한이 있어도 과감히 대면하여 해결하는 편입니다.


저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실로 오랜만에 만난, 아주 먼 곳에서 온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내게 보여주기 위해, 제 손을 잡고 한참의 시간을 거슬러 멀리멀리 데리고 갑니다. 매우 놀랍게도 제 앞에 30여 년 전의 시간이 선명히 펼쳐집니다.


혼자 울고 있는 여자 아이. 엄마는 달래주지 않아요. 엄마는 그녀의 거친 성격의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이 힘들고 영혼이 너덜너덜합니다. 남편을 닮은 딸이 부정적인 감정을 보일 때, 엄마의 마음은 얼어붙기만 합니다. 딸에게 화를 내거나 때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우는 게 남편 눈에 띄어 성질을 건드릴까 봐 두렵기만 합니다. 힘든 엄마의 삶에 감정을 터뜨려 심리적 부담 하나를 더 보태는 딸을 차갑게 묵살합니다. 그러는 쪽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조용히 잠재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여자아이는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들어주지도 위로해 주지도 않는 엄마에게 울며불며 마음을 알아달라고 이렇게 저렇게 호소를 해 보지만 엄마는 안 그래도 충분히 힘드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칠 뿐입니다. 여자 아이는 사춘기 내내 너무나 힘들었지만, 엄마는 여자아이의 세계로 들어와 함께 여자 아이가 겪는 고통의 시간에 같이 있어주거나 공감을 해 주지 않습니다.
엄마는 본성이 냉정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여자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모든 물리적인 뒷바라지 해 주며 딸을 열심히 돌봤습니다. 하지만 여자 아이는 감정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온도가 달라지는 엄마를 느끼면서 자신의 감정이 무언가 잘못된 것인가 스스로의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버릇을 가지게 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나게 됩니다.




저는 어제오늘, 엄마의 공감과 위로를 갈구하는 작은 소녀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엄마와의 작은 갈등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와르르 엎지른 탓입니다. 내 힘든 마음을 조금도 들어주지 못하는 엄마. 속이 상해서 엄마에게 한 마디를 하기도 했어요.


엄마가 내 감정을 그렇게 취급했기 때문에, 내가 나 스스로의 마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돼서 너무 힘들다고....

사람의 진짜 솔직한 감정은 발을 보면 안다고 어느 작가님이 말씀하셨던가요? 상황을 피하고 싶은 엄마의 발은 도망가려고 나에게 뒤꿈치를 보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꾸만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나에게 엄마는 벼르고 벼른 한 마디를 합니다.


네 나이가 몇인데. 제발 과거에서 빠져나와라.

맞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마음이 상할 뿐입니다. 그저 이 순간을 빨리 모면하고 싶은 엄마의 상황 종료 의지에서 나온 말이니까요. 과거 속으로 나와 함께 가서 나의 내면 아이를 돌아봐 줄 마음도, 능력도 없는 노인이 된 엄마에게 나는 순간 깊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이 절망감은 속속들이 드러나는 현실의 한계와 봇물 터진 과거의 기억들에 점점 더 짓눌리며 결국 진흙탕 흙물 바닥으로 깊숙이 잠겨 헤어 나올 줄 모릅니다. 한참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 있었습니다.

누군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고 싶어 머무르는 것이 아니잖아요.


엄마를 향한 분노, 공격하고 싶은 마음과, 약한 엄마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녀는 학대를 많이 겪어 트라우마도 많고, 그래서 두려움도 많고, 힘든 기억도 많고, 그녀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상담자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엄마라고 해서 나의 상담자가 되어 줄 의무도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어린 시절, 감정을 다루어 주고 감정 코치를 해 줄 수 있는 양육자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저 부족한 사람들이 부족한 모습으로 자녀를 부족하게 겨우 키워낼 뿐입니다. 곳곳에 구멍이 듬성듬성하고 결핍이 난무합니다.


나는 내 어머니의 부족함을 원망하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내 부족함과 결핍 또한 미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든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녀와 나의 정신적 탯줄을 여기서 끊어내겠다고, 그녀와 나를 분리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압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춘기, 혹은 그 이후에라도 저보다는 훨씬 빨리 이 정신적 탯줄을 자연스럽게 끊어냈을 거라는 걸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라지 못했었어요. 어른이 되지 못했었어요.


20년쯤 전에 제 안의 아이를 처음 자각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열심히 양육해 왔는데, 제 안의 아이가 어느덧 자라 사춘기가 되었나 봅니다. 드디어 스스로 탯줄을 끊어 낼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부모에게서 나를 완전히 분리해 낼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이젠 어머니뿐 아니라,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마음에 들게, 내 필요에 맞게 행동해 주기를 공급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서로 사랑의 빚 외엔 진 것이 없는 관계임을 선언합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할 것입니다. 이제부턴 진짜 사랑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녀의 방식대로 준 사랑만 기억할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투박한 표현에서도 사랑을, 사랑만을 읽어낼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잘 자란 아이'가 기특해서 눈물이 납니다.


지금 네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는 모르지. 어제오늘의 힘든 감정을 너는 참 잘 견뎠고 잘 처리했어. 네가 드디어 독립적이고 성숙한 훌륭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야. 드디어 '탯줄'을 끊어내고 '분리'를 이루어 낸 네가 참 자랑스럽다. 매일매일 더 멋진 일들이 네 삶 속에 펼쳐질 거야. 너무나 기대가 된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함께 할게! 우리 함께 끝까지 행복하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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