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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26. 2020

나에게, 수영장

구제불능이 위로받다

뜨거운 여름 열기, 파란 야외 수영장, 적당히 차가운 물의 온도. 그 거대한 부피의 액체에 몸을 기대 맡기는 순간, 모든 걱정거리는 둥둥 떠올라 떠다니다 점점 흩어지고, 내면이 파란 물의 무아지경으로 차오르는 '물의 힐링', '물의 위로'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인생의 바닥에 내쳐졌던 그 나날들에 '물의 위로'를 넘치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 둘을 한 팔에 하나씩 끼고 키우던 그 시간,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듯한 인생 열차 안에서, 인생의 바닥에 내쳐진 마음을 추스르고 또 추스르며, 아이들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던 것이 별로 없던 그 시간.


맘마 스케줄, 낮잠 스케줄 챙겨줘야 하고, 수시로 기저귀 갈아줘야 하는 젖먹이에 매인 몸이라, 나가 놀고 싶어 하는 큰 애를 데리고 어디 먼 데를 갈 수도 없던 저에게, 그 여름 유일한 나들이 옵션은 동네 수영장뿐이었어요. 




저의 엄마는 '충무' (지금의 통영), 아빠는 '진동', 두 분 다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신 분들이라 수영을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물개들'입니다. 물놀이 선수인 부모님들이 저를 계곡으로 수영장으로 데리고 다니셨지만, 저는 수영을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했어요. 아마도 어릴 때는 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컸고, 그만큼 긴장한 몸이 스스로를 물에 맡길 줄 몰라서였겠죠. 


중학생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친구가 수영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장담했어요. 수영 레슨을 꾸준히 받아왔고, 물놀이를 좋아하던 그 친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 같이 다닐 친구로 저를 지목하고, 수영 못한다고 거절하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한 것입니다. 우린 결국 수영장에 함께 갔어요. 그 친구는 저에게 열심히 수영을 가르쳐 보다가, 결국 실망감 짙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했습니다. 


넌 진~~~ 짜 구제 불능이야.


부모님도, 친구도 나에게 수영을 가르치다 포기를 선언했으니, 저도 저 자신을 '구제불능', '수영. 알. 못'으로 분류하기는 쉬웠습니다. 수영장은 저에게 전혀 자신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저희 집 동네 커뮤니티 수영장은  3ft (0.914 미터) 높이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깊어지다가 맨 끝에는 8ft까지 깊어지는 구조에, 위에서 보면 긴 직사각형 형태로 생겼습니다. 한쪽에는 어른들이 운동으로 수영 레이스를 할 수 있도록, 2개의 긴 레인이 있고, 그 레인을 제외한 공간 중, 5ft - 8ft 사이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다이빙을 즐기는 공간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노는 공간은, 3ft- 5ft 사이의 남은 공간이었습니다. 이 공간은 수영을 아직 할 줄 모르는 5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부모들과 노는 공간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튜브까지 태워 물에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영장 주변에 널려있는 스티로폼 같은 재질로 만든 '누들' 하나를 제 두 팔 아래 놓고 그것에 지지해 물에 엎드려 기댄 자세로 아이와 물놀이를 했어요. 큰애는 물놀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수영장에 울려 퍼지던 아이의 깔깔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아이와 물놀이하는 날들이 하루, 이틀, 사흘,... 매일같이 이어져, 3개월 넘게 수영장을 여는 여름 날들을 가득 채우고, 그런 여름들이 이어져 2-3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저는 문득 제 몸의 변화를 알아채었어요. '누들'에 의지하지 않아도 몸이 물 위에 둥둥 뜬다는 걸요. 아이를 데리고 노는 사이 몸이 물에 기대는 법을 배운 것이었습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수영장에 매일같이 다닌 게 제 몸이 물에 대해 편하게 익숙해지게 만들었고, 익숙해지고 편해지니, 제 몸은 물에 기댈 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직도 있으시거나, 수영이 잘 배워지지 않는 분들, 이렇게 매일 일정한 시간을 물과 함께 보내는 걸 시도해 보세요. 저처럼, '누들'에 기대서 이리저리 떠다니며 놀다 보면 어느새 수영을 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하실 거예요. 물을 유난히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수영 레슨법'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뭔가 자전거를 배웠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을 줄 알게 되면, 그 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수영도 마찬가지였어요. 물에 둥둥 뜰 줄 알게 된 몸은 그 전 상태로 돌아가지지 않습니다. 팔다리로 아무 동작을 취하지 않아도 물 위에 둥둥 뜨는 몸이 정말 신기했어요. 그리고 뿌듯했고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성취였고 기쁨이었습니다. 


사람은 뭐라도 잘하게 되는 게 생기면, 뭐라도 발전을 이루면 자신감을 가지고 승리감에 도취되는 존재인가 봅니다. 그 어렵던 시절, 제 검은 일상을 뚫고 들어왔던 그 작은 성취는, 마치 암흑 속에 빛나는 작은 별 하나 같았습니다. 그 작은 별은 어두운 내 마음 한가운데서 보석 중의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마치, 무인도에서 핸드폰이 터지는 지점을 발견한 표류자처럼 저는 그 핸드폰이 터지는 지점에 서서, 그 작은 성취에 집중해 다음 단계의 행동들을 시작했어요. 하나씩 하나씩 '물 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엄마가 어린 시절 가르쳐 주시려 했던 '개구리헤엄'을 혼자서 열심히 연습해보기도 하고, 수영 레슨을 한참 받으러 다니는 동네 꼬마 수영선수들을 만나면 그 아이들에게 조언도 구하면서, 여러 다른 수영 동작들도 연습해 보았습니다. 정식으로 코치에게 야단맞아가며 훈련받은 것이 아니라, 누가 본다면 여전히 어설프겠지만, 제가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물에 둥둥 떠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급기야 저는 제 키보다 30센티 이상 깊은 8ft에 뛰어들어 보겠다는 목표도 세웠습니다. 깊은 물속에서부터 물 위로 헤엄쳐 나오는 - '미래 소년 코난'이 늘 하는 그 물 바닥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 수영 - 그걸 꼭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점프한 후, 어떻게 위로 올라올지 계산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이제나저제나 기회만 엿보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수영장에 가는 기회가 왔을 때,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저는 다이빙 대 위에서 높이 뛰어올라 깊은 물에 몸을 던져 넣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물 위로 헤엄쳐 올라와 밖으로 나왔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성공!!!!

 

남들은 모르는, 이해할 수도 없는, 제 인생 최고의 멋진 도전의 순간이었습니다! 남들 어릴 때 다 한 번씩 해 보는 도전을, 겁쟁이인 저는 30대가 되어서야 해 본 거였어요. 그 겁을 이기고 극복해 낸 스스로가 기특하고 기뻐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이 모든 기쁨을 '물'이 저에게 주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영장'이라는 옵션이 제 인생 최고의 기쁨과 자신감을 준 장소가 된 것이었습니다. 늘 주눅 들고 부담스럽기만 하던 장소가 제 놀이터가 된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저희 동네 수영장이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언제 다시 열지 모르겠습니다. 수영장을 열어달라고 몇몇 이웃들이 모여 청원서를 내기도 했지만, 동네 운영 본부는 강경하게 대처했습니다. 어떤 위험 가능성도 만들지 말자는 의미겠지요. 


앞으로 편한 마음으로 타인과 함께 물에 몸을 담그는 수영장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저는 레인을 반복해서 오가는 장시간 수영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이젠 '수영장'만이 옵션인 시간은 지났으니까요. '수영장'이 저에게 가르쳐 준 것은, '수영장'이 나에게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도 보석 같은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까지 포함한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을 빛나게 하는 보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이 보석들은 어두울 때 더 잘 보였습니다. 그러니 인생길에 때때로 찾아오는 어두운 밤하늘 같은 날들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어둡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힘든 날이 오래 이어지는 일상을 견디고 있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에게 왔던 '물의 위로'와 '어두운 밤하늘 작은 별 같은 조그만 성취'가 당신의 일상에도 깃들어 당신이 그 날들을 이기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은 기쁨', '작은 희망'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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