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이 없어서 나無

아낌없이 주는 나무

by 하트온

나무라는 재료


나는 '재료공학'을 전공했지만, '나무'라는 재료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배운 적이 없었다. 학교와 연구소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다루었던 재료는 세라믹이나 금속, 고분자, 바이오 재료 같은 공학적 혹은 의학적 가치가 높은 재료였으며, '나무'는 그 대열에 한 번도 낀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성장과정 동안 나무를 접한 기억도 별로 없다. 어린 시절 집 근처 '목공소'의 '목수 아저씨'가 전기톱으로 '지잉' 나무를 자르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을 뿐, 동네 전체가 개발되고 빈터였던 곳들이 남김 없이 새집들로 빽빽해지면서 어쩐 일인지 '목공소'도 '목수 아저씨'도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집 재료로는 대부분 '보르크'라고 불리던 시멘트 블록 재료나, 벽돌이 쓰이는 것을 많이 보았고, 집 바닥도 '장판'이라고 불리던 PVC 바닥재가 흔했던 걸로 기억한다.


미국에 오니, 여긴 온통 나무 세상이다. 집도 대부분 나무로 지어졌고, 집 바닥도 나무 - 카펫이 바닥인 집들도 나무 위에 카펫을 깔아놓은 것이다 - 심지어 길가의 전봇대도 나무, 웬만하면 다 나무다. 집에 필요한 무언가를 짓거나 만들고 싶으면 '홈디포*'에서 나무를 사다 직접 짓고 만드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홈디포 (Home Depot): 미국에서 가장 큰 집수리 공구 및 건축 재료 파는 체인 가게. The Home Depot is the largest home improvement retailer in the United States, supplying tools, construction products, and services. https://www.homedepot.com


집에 뭔가가 고장 나거나 낡아서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할 일이 생기면, 한국처럼 쉽게 저렴한 값에 부를 수 있는 '수리 아저씨'같은 존재는 미국에 없다. 아무리 조그만 이유로도, 일단 집으로 사람을 불렀다 하면, 사람을 보낸 회사가 큰 비용을 청구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당장 와 줄 사람 찾기는 더욱 힘들다. 사람을 기다리느니, 내가 유튜브 영상 뒤져가며 배워 직접 고치는 편이 훨씬 빠를 때가 많다. 그런 환경이라 미국에는 어떤 기계, 건축, 배관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맥가이버'같은 '핸디 맨**'이 각광받는다. 남편이, 아빠가 '핸디맨'이라고 하면 '와 부럽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곳이 바로 이 미국이다.


**핸디맨: 주거 건물이 요구하는 각종 수리 및 보수, 개선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 또는 그러한 일을 하도록 고용된 사람. a person able or employed to do occasional domestic repairs and minor renovations.


나는 기계는 좀 들여다볼 줄 안다. 미국에서 엔지니어링 연구소를 다닐 때도, 사람들이 못 고쳐서 애를 먹던 실험 장비들을 들여다보고 고치곤 했다. 집에서도 세탁기나 오븐 정도는 뜯어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좀 주눅이 들었던 일은, 다양한 용도의 '밀링 머쉰***'과 다양한 목적의 '스크루', '볼트', '너트'를 포함한 각종 공구 장비들이 종류별로 잘 갖춰져 있는 '머신 룸'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마치 수십 가지 최신 디지털 운동 기기들이 있는 대형 '피트니스 클럽'에 처음 입장할 때처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너무나 생소하고 작아지는 느낌.

***밀링 머신(Milling Machine) 이란 원판 또는 원통체의 외주면이나, 단면에 다수의 절삭날로 평면, 곡면 등을 절삭하는 기계를 말한다. https://namu.wiki/w/밀링%20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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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회사에서 나를 당황시켰던 '머신 룸' 이미지, 사진출처: 픽사베이 https://pixabay.com/photos/search/engineering/

많은 미국 사람들에겐- 특히 만들기/짓기에 관심 많은 사람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자신이 많이 갖고 놀아보기도 하는 그런 도구들이다. 어려운 기계도 척척 고치고, 복잡한 실험도 잘 해내면서, 벽에 뭘 설치하거나, 실험을 위한 구조물을 직접 짜는 것 같은 쉽고 간단한-미국 '핸디 맨'들 입장에서- 작업을 해야 할 때 당황하곤 했다. 다행히 회사 내 테크니션 아저씨들이 설명도 잘해주고 많이 가르쳐 주어서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아저씨들에게 미국 사투리와 슬랭도 많이 배우고 재밌게 지냈던 기억이 많다.


한국에서도 연구소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다. 제가 근무했던 한국의 연구소에서는 실험에 필요한 장비만 연구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서 신경을 전혀 쓸 필요가 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미국의 대학, 대학원, 연구소에도 필요한 실험 장비 디자인과 설치를 도와주는 엔지니어나 테크니션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엔지니어들에 대해 DIY 능력, 핸디맨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 있는 편이다.




남편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소위 한국 사람들에게는 '교포 2세'라고 불리고, 미국 사람들에게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불리는 존재. 시아버님은 한국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셨고 미국에 오셔서는 '보잉'이라는 비행기 회사에서 은퇴하실 때까지 근무하셨다.


아버님은 손재주가 남다르고, 기계도 나무도 다 잘 다루고, 뭐든 잘 만드는 분이시다. 덕분에 남편은 집에서 아버님과 함께 자동차를 고치거나, 집을 보수 수리하는 것을 돕는 등, 여러 가지 자동차 관리 집 관리 일을 경험하며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님만큼의 손재주는 없는 것 같았다. 남편도 공학 전공이긴 하지만, 주로 컴퓨터를 써서 일처리 과정과 공간 배치를 디자인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공장을 다니며 컨설팅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산업 공학 엔지니어'였고, 더군다나 공무원 자리로 옮겨 가면서는 더욱 무언가를 만지고 지을 일이 없었다. 지금은 교육 사업을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몇 년 전부터 남편은 나무를 사다 짓기 시작했다. 직업이 온종일 책상 앞에서 하는 일이 되다 보니, 나가서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 같았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장비를 하나하나 마련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짓고 만들고, 집에 낡은 곳들을 고치고 보수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몇 년 사이 열심히 짓고 만들더니, 이젠 실력이 많이 발전하고 있는 게 확연히 보인다.


나는 누가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응원하고 더 많이 시도해 보도록, 일을 더 크게 벌리도록 부추기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남편의 성향은 옆에서 하라고 하면 다 해 보는 성향이다. 그래서 우리 둘이 만나 일을 벌이면 엄청난 속도로 일이 진행되는 편이다.


신이 나서 남편에게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던져 주었다.


창가에 기대앉아 책을 볼 수 있게 '책장'과 '데이베드'를 만들어 보시오



이 공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은 우리 집 둘째다. 식구들보다 먼저 일어나는 편인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여기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식구들이 깨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집 앞 나무에 날아드는 새도 보고,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다람쥐도 보고,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화하는 창밖 풍경 구경까지 하느라 심심할 틈이 없는 것 같다.


사진 속, '데이베드'위에 쌓여있는 책과 공책, 종이들은 모두 꺼내놓고 다시 제자리에 넣지 않는 경향이 있는 둘째의 것이다. 귀찮아서, 치우지 않고 그냥 촬영했다.






스토브가 고장 났는데, 다시 사고 싶지 않소. 집에 있는 조리 장비를 놓고 쓸 구조물을 짜시오.


최근에 우리 집 '스토브' - 오븐과 레인지가 하나로 묶어진 주방 가전 - 가 고장 나서 없애는 일이 있었다. 평소 '스토브'에 달린 오븐은 너무 커서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굳이 값비싼 '스토브'를 또 사야 하나 의문이 들어 생각을 거듭한 끝에, 스토브를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니 오븐은 이미 집에 갖춰놓고 자주 사용하고 있었고, 값싸고 이동이 쉬운, 주방용 핫플레이트 두 개만 장만했다. 내 기억으로 둘 다 해서 백 불 (한화 십만 원 정도)도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을 예쁘게 배치할 수 있게 구조물을 만들어 달라고 남편에게 요구했다. 나와 남편이 함께 디자인을 하였고, 남편이 지어, 사진에 보이는 구조물이 탄생하였다. 현재 매우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부엌 하부장이 너무 낡았으니, 하부장을 직접 짜시오.


우리 집은 지어진지 40년쯤 되었고, 부엌은 15여 년 전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 직전에 전 주인이 리모델링을 했었기때문에, 처음 이사 들어왔을 때는 부엌은 새 것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하부장 문을 수시로 열고 닫고, 들어갔다 나왔다 숨바꼭질하고, 문짝에 그림 그리며 놀이터로 사용했던 아들 둘을 키운 부엌이었던 만큼 하부장은 심히 낡고 보기 싫은 상태로 변해갔다. 거기다 싱크대 옆에 설치되어 있던 '식기세척기'까지 완전히 고장 나 죽은 상황.


나는 공학적 입장에서 '식기세척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물이 들어가는 모든 기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부지런히 자주 뜯고 관리하지 않는 한 곰팡이 가득한 세균 번식지가 될 수밖에 없다. 남편에게 식기세척기를 포함해 하부장을 다 뜯고, 가게 진열대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고, 이 사진은 그 결과다.



뒷마당으로 나가기 편리하게 '쪽마루'가 필요하오. 하는 김에 '펜스'도 다시 하오.


뒷마당 현재 모습

원래는 뒷문 앞에 마당으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 - 매우 볼품없었고, 많이 낡아 삐그덕 거리던-이 있었다. 여기에 '쪽마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하던 차에 남편이 나무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쪽마루'를 만들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원래 뒷마당은 아래 사진처럼 펜스 앞에 작은 텃밭을 경작(?)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얼핏 보이는 목조물은 남편이 '조그만 몸에 딱 맞는 자신들만을 위한 집'을 원했던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트리 하우스'였다.


아이들이 커서 '트리 하우스' 작은 공간에서 더 이상 놀지 않게 되어, '트리 하우스'를 허물고, 거기서 나온 나무를 고스란히 써서 '쪽마루'를 만들고, '벤치'도 만들었다.

텃밭이 있던 시절 뒷마당의 예전 모습.


텃밭을 없애고 나니, 낡은 펜스도 너무 보기 싫어서, 깨끗하게 다시 해 달라고 했고, 남편은 '홈디포'에서 나무를 잔뜩 사 와서 펜스를 다시 세웠다.


예전에는 집이 낡고, 원하는 뭔가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것을 갖춘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공간 환경은 만들어 가기 나름이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물론 나 혼자였다면 누군가를 부르지 않곤 못했을 일이고, 남편이 '핸디맨'이 되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긴하다.


남편은 나무로 여러 가지를 만들면서, '내가 원하는 집을 내가 만들고 이루어 간다는 느낌'이 너무나 좋고 작은 성취감들이 쌓여 큰 행복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자신이 이런 것들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줄 몰랐기에 자기가 만든 것들을 보고 '이게 정말 내가 만든 거라고!' 늘 감동을 받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나무는 '좋은 재료'다.


남편이 나무로 이것저것 짓는 과정을 다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나무는 끝없이 재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한 가지를 만들었다가, 그것이 쓸모를 다 하면 뜯어서 '그 나무'로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남는 잔 조각들, 더 이상 쓸모를 잃은 나무들은, 이렇게 '가족이 모이는 자리'를 따뜻하게 빛내고 한 줌 '재'가 되어 깨끗이 소멸한다.


모든 것을 주는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세상에 이렇게 'Selfless'한 존재가 있을까. 그래서 이름이 '나(self) 무(無)'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무는 필요한 용도로 사용한 후에, 거듭 재활용 새활용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불 때는 장작으로까지 사용할 수 있으므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도시에서 나무를 장작으로 소비할 여건이 되지 않아 쓰레기로 처리 해 그냥 버려진다 해도, 쉽게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성질을 가졌고, 썩기 전에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새활용 재활용될 가능성도 많다. 나무는 '미니멀 라이프', '친환경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점이 많은 '착하고 좋은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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