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10년 이상 계속된다면?

어떻게 마음먹어야 할까

by 하트온

아직은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코로나는 감기처럼 변종을 자꾸 만들고 제멋대로 굴며, 백신 효용을 100%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화이자 백신이 95% 효능을 보인다고 말하지만,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처음부터 막아주는 것인지, 코로나 걸린 사람의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인지조차 분명치 않으며, 장기간 체계적으로 연구되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백신회사들이 어떤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효능을 계산하건, 결론은 아주 잘 만든 백신을 맞아도 몇 프로의 '감염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설사 100%의 효능의 백신이 나온다 해도, 지구 상 모든 사람에게 단시간 내에 그 백신이 주어질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마스크를 벗을 수 없고 항상 감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 사람의 입김, 사람의 숨을 피해 다니는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람과 마주하는 일을 피해 다니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최대한 비대면 방식으로 집에서 모든 일을 원격으로 해결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적어도 2022년까지는 이러한 생활이 계속될 것이며, 2022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신을 맞는다 해도, 모든 것이 여전히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일 것이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생활 습관이 남아 있으므로, 이런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는 더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들을 하고 있다.


최대한 집에서 요리하고, 커피는 집에서 내려 먹으며, 미용실보다는 집에 셀프 헤어컷 장비를 갖추고, 많은 사람 많은 병균이 모이는 병원에 가는 일을 줄이고 최대한 민간요법으로 해결하려는 심리가 생각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람들의 재난 공포감, 자급자족하려는 심리가 커지고, 돈을 쓰는 영역이 한정되면서, 많은 시스템들이 무너지고, 많은 사업체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엄청난 경제 대공황의 회오리바람도 예상된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예견하고 있다. 사람들의 재난 상황 심리가 부르는 필요를 만족시키는 기술을 가진 대기업이 모든 것을 먹는 독점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극단적이 될 것이며, 누군가는 역사 속 그날들처럼 현금 가치가 없어질 상황을 대비해서 금을 사 모으고 있기도 하다.



돈이 몰리는 곳이 따로 있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코로나지만, 일부 사업체들은 독점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미국에서 느끼는 정도는, 맥도널드와 칙필레, 스타벅스 같은 드라이브 쓰루 시스템을 잘 갖춘 곳들과 코스코, 타깃, 월마트 같은 모든 생필품을 다 갖춰놓은 매장, 아마존처럼 배달 시스템을 확실하게 구축한 온라인 쇼핑몰 기업, 휴지와 소독제, 손 비누, 해열제, 각종 비타민 같은 코로나 필수품을 만드는 회사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전자기기, 디지털 장비 공급 업체들 그리고, 집의 역할이 달라지면서 필요에 맞게 공간을 꾸미는데 요구되는 가구를 파는 이케아 같은 가구점들, 인기 유투버들의 유명세를 업은 각종 사업, 그리고 식재료를 파는 식품점... 에 한쪽으로 사람들이 밀려드는 정도가 그 물살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최근에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 시스템중 하나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 (Bank of America)'가 미국 전역 40%의 지점을 닫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던 동네 지점 은행이 갑자기 없어져 다른 도시로 원정을 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온라인 뱅킹이라는 옵션이 커지면서 일어날 일이 코로나 상황에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뿐이겠지만, 온라인 뱅킹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노인들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어딜 가나 보이는 수많은 은행 지점의 편리함을 누렸던 고객들도 힘들지만, 그 많은 은행 직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뱅크 오브 아메리카뿐만이 아니다. 매장을 줄이고, 규모를 축소시키는 사업 시스템들이 한두 개가 아닌 상황이다. 어떤 사업체들은 아예 오프라인 매장들을 없애고, 온라인 쇼핑몰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세상이 점점 변해가던 속도에 가속이 붙어 이젠 미친 듯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코로나가 오래 계속된다면


코로나가 곧 소멸된다고 기대하는 것과 코로나 팬데믹이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것을 다르게 만든다. 코로나가 곧 소멸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잠시 큰 재앙을 피하고 살아남는 일에 최선을 다 할 뿐 다른 것들은 상황이 회복된 후로 미루어도 된다. 잠시 폭설이 내려 집에 며칠 갇힌 것처럼 오래간만에 주어진 휴가라고 상상하고, 생필품 잘 갖추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코로나 팬데믹이 10년 이상 가는 무엇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 교육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 아이들의 미래를 더욱 진지하게 모색해야 하며, 젊은이들은 이러한 난관 속에서도 활발한 성장과 교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모두가 이 장기전 속에서 심신의 건강을 지킬 방법, 생계를 유지할 방법, 행복한 일상을 유지할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잘 살아가야만 한다.



재난 상황에 갇혀 있다는 경직된 심리를 좀 풀자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가도, 내 마음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전처럼 웃고 떠들고, 주변 사람들과 유대를 도모하며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야 하며, 소명 의식을 가지고 어떤 험난한 장애도 헤쳐나가야 한다. 평소 즐기던 것들을 즐길 방법을 찾고,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새로운 행복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나가야 한다. 수시로 불안과 공포가 밀려와도, 부정적인 감정들을 걷어 내고 밀어 내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고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10년을 버틴다.



유연하게 적응하는 아이들처럼


아이들은 밖에 나가 뛰어 놀기를 멈추지 않는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보다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욕이 훨씬 더 앞선다. 서로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니, 동네 아이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비 오는 날은 게임 가상 세계에 모여 함께 떠들며 집을 짓고 싸움을 한다. 멀리 살아서 만나기 힘든 친구들은 화상 채팅을 하고, 미국에 다녀가기로 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오래 못 보게 된 그리운 삼촌에게는 문자를 하고 게임 세계로 초대를 한다.


온라인 수업을 하며 선생님께 일일이 물어볼 수 없다고 모른 채 있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동원해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낸다. 마스크 쓰고 밖에 나가는 게 힘들다고 불평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마스크를 챙기고 관리하는 일에 완전히 적응했고, 스스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걸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적응하자. 두려움을 빨리 잊고,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풀어 버리자. 잠시 잠깐 코로나를 잊어도 된다. 뉴스는 가끔만 보자. 전과 같은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일을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말고 죄책감도 갖지 말자. 최대한 밖에 나가는 시간을 늘리고 걷고 뛰고 햇볕을 보자. 마스크 껴서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해도, 사람들을 귀하게 바라보며 활짝 웃어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멈추지 말자. 전화도 문자도 화상 채팅도 선물을 보낼 수도 있으니,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뻗는 일을 그만두지 말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점에서 책도 사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예쁜 옷도 사입자. 음악도 듣고 미술 작품도 감상하자. 가끔은 음식과 커피를 투고해서 즐겨보기도 보자.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를 철저히 유지하고, 손을 부지런히 씻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갖자. 마음이 살고 봐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손에서 행복을 놓지 말고 잘 챙겨 누려야 한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며 적극적으로 뚫고 나가자.




친애하는 동지들,


오늘은 민족 계몽과 여성교육에 힘쓰셨던, 여성 독립운동가 어윤희 선생이 하신 말씀을 가져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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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희 선생님은 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6세에 결혼했다가 3일 만에 동학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인이오. 이후 아버지와 살았지만 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마오.


그녀의 삶을 지탱했던 등불은 신앙과 교육이었다고 하오. 이 선생은 1919년 개성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개성 3•1 운동 발발에 큰 역할을 했소. 3•1 운동을 확산시키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하던 선생은 보안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게 잡혀간 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소. 위 명언은 선생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면서 하신 말씀이라 전해 지오.


우리들은 어윤희 선생님의 강직한 기개가 마음 깊이 살아 있는 후손임을 잊지 마오! 코로나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몸이 묶일지언정 우리의 마음은 묶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마음을 항상 살게 하여 자유롭게 누리기를 잊지 말고 멈추지 마시오!


- 동지들에게 아직 살아있는 의병이 보내는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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