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더 재밌게 새롭게
내게 운동은 엔지니어링 같은 거였다.
엔지니어링이라는 학문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조국의 경제력 강화라는 거국적 의미를 위해, 고착된 성역할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평생 갈 커리어를 구축하는 개인적 의미를 위해 반드시 공부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젊음과 미래를 걸고 공대에 진학해서 오랜 시간을 버틴 것이다.
운동 신경이 크게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노력했다. 100미터 달리기 18초 같은 건 끝내 바꾸지 못했지만, 윗몸일으키기나 오래 매달리기 같은 건, 조금도 못 버티던 약골에서, 체력장 만점까지 발전했다. 운동을 하고 체력관리를 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지금까지 살면서 심한 입덧과 잠 못 자는 육아로 여유가 없었던 몇 년을 제외하곤 운동을 계속했었다.
10대엔 열심히 자전거를 탔다. 다칠까 걱정되어 부모님은 자전거를 사주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으셨지만, 나는 자전거를 꼭 타보고 싶은 열망에, 누군가 빌려준 쌀집 아저씨 자전거로 몰래 혼자 배워냈다. 그리고 학교가 일찍 파하는 날엔 친구들과 사직 운동장에 자전거를 타러 다녔다. 아시안 게임, 소년 체전 붐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남동생에게만 테니스 수영 태권도 레슨을 시켜주었는데, 나도 배우고 싶어서 동동거렸다. 아버지가 무서워 말은 못 하고, 조용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테니스 교습소에 동생을 따라가서 나도 한 달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 특별활동도 테니스부를 선택하여 라켓 쥐고 바른 자세로 휘두르는 연습, 라켓 위에 공을 놓고 튕기는 연습, 벽을 상대로 공치는 연습을 무진장했었다. 또한 남동생이 집에서 태권도 연습과 스트레치 하는 걸 보면서 나도 따라 했다. 대학 가선, 공대 남학생들이 즐기는, 축구, 농구, 테니스, 탁구, 족구, 컵차기까지... 매일 추리닝 입고 등교해서 하루에 최소 2시간은 뛰어다녔던 것 같다. 일상이 달리기의 연속이었다.
미국에 와서는 타이보 (태권도와 복싱을 융합한 유산소 운동)와 요가를 입덧으로 너무 힘들어지기 전까지 쭉 했었다. 그리고 작은 애가 어느 정도 컸을 때부터, 옆 집 아줌마와 함께 운동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쯤엔 유산소 운동 유행이 바뀌어 타이보 클래스는 없어지고, 줌바가 판을 치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춤추고 운동이 된다는 건 솔깃한 제안이라, 줌바를 열심히 따라 해 보긴 했는데, 사실 그때 내 몸상태에 1시간 동안 미친 듯이 팔다리를 휘두르며 방방 뛰는 줌바는 많이 무리였다. 아이 낳고 키우면서 안 좋아진 어깨와 무릎 상태가 더 나빠져서 줌바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시간이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Ffii9udixxU
병원을 다니며 어깨와 무릎의 통증을 어느 정도 가라 앉힌 후, 요가를 쉬운 동작부터 천천히 살살 시작했다. 요가를 몇 달 하면서 어깨와 무릎이 많이 나아지고 체력이 생기는 걸 느꼈다. 덕분에 지난여름부터 복근 운동을 비롯한 근력운동을 조금씩 시작할 수 있었다. 요가 동작들과, 몇 가지 근력 운동 동작들을 섞어 40-45분 루틴을 만들어 계속해 왔다.
운동 루틴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
40-45분 루틴을 계속하면서 뭔가 점점 만족스럽지 않다.
매일 똑같은 동작을 하니 이제 쉽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쉬운 만큼 재미가 없다
40-45분 시간을 덩어리로 확보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부담스럽다
운동 시간을 채웠다 싶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나,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는 핑계가 자꾸 식탐을 정당화시킨다.
변화가 필요하다.
알프스 알프스 (Alps Alps)
운동 시간을 채우기보다, 하루 종일 쉴 틈이 생길 때마다 운동을 하여, 목표로 정한 운동량을 채우는 새로운 방식을 며칠 전부터 시도해 보고 있다. 내가 만들어 준 새로운 운동 방식의 이름은 알프스 알프스이다. 매일 알프스 산을 두 번 넘는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A (ab) 복근 운동 루틴 (10분 정도 소요)
L (leg) 다리 운동 (무릎 강화 운동) 루틴 (10분 정도 소요)
P (plank) 플랭크 1분
S (stretch) 전신 스트레치/요가 (20분 정도 소요)
A (arm or aerobic) 팔운동이나 유산소 루틴 (5분 정도 소요)
L (lunge) 런지 최소 30개
P (push up) 푸시업 최소 30개
S (squat) 스쾃 최소 30개
결론적으로는 원래의 루틴과 시간적으로도 운동량으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가 다르다
마음이 새롭다: 매일 알프스산을 넘자는 새로운 각오가 생겼다. 알프스 등반을 각오하면, 뭘 해도 알프스 넘기보단 쉽다.
시간 강박에서 자유롭다: 시간을 재며 40-45분을 채우려고 하는 걸 쉬어보니 더 편하게 느껴진다.
더 효율적이다: 긴 시간을 한 번에 내는 것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하나씩 목표한 운동량을 채우는 게 지금 내 라이프 스타일엔 더 효율적인 것 같다.
하루 종일 움직이게 된다: 푸시업을 30개 완료했어도, 틈이 나면 푸시업을 또 하게 된다.
알프스 오르기가 재미가 없어진다면
언젠간, 알프스산 넘기도 재미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러면 그때 가서 또 운동을 더 재미있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 된다. 매일 운동하는 게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닌 거다. 이 어려운 걸 오늘도 하는 나를,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