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38. 치유가 되었고, 빼앗긴 것을 찾겠다

Educated: A Memoir by Tara Westover 38

by 하트온

챕터 38. 낯선 이들과 순례자들 (Strangers and Pilgrims)



박사 그만두는 게 어때?


박사 공부는 엉망이 되어가고, 타라는 지도교수에게 할 말이 없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다 사실대로 말을 할 수도 없다. 지난 1년간 교수에게 아무 실적을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지도교수가 타라에게 못하겠으면 박사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타라는 자신에게 화가 나,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드라마만 줄곧 볼뿐이었다.

I was failing my PhD.

If I had explained to my supervisor, Dr. Runciman, why I was unable to work, he would have helped me, would have secured additional funding, petitioned the department for more time. But I didn't explain, I couldn't. He had no idea why it had been nearly a year wince I 'd sent him work, so when we met in his office one overcast July afternoon, he suggested that I quit.

"The PhD is exceptionally demaning, " he said. "It's okay if you can't do it."

I left his office full of fury at myself.


들어주고 믿어주고 나를 위해 다른 가족을 버린 사람


그 해 가을, 타일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부모님들로 하여금, 숀과 맞서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고 했다. 더 이상 숀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면 타일러도 자식으로 보지 않겠다고 아버지가 으름장을 놓았다고 했다. 숀도 전화해서 타일러를 가족 취급하지 않을 거라고 위협하고, 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싶으면 타라에게 물어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타라는 타일러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면서, 그도 오드리 언니처럼 가족을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 하는 결말에 대한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As I listened, I felt a strange sensation of distance that bordered on disinterestedness, as if my future with Tyler, this brother I had known and loved all my life, was a film I had already seen and knew the ending of. I knew the shape of this drama because I had lived it already, with my sister.


10월쯤, 타라는 타일러 오빠와 그 아내 스테파니가 함께 쓴 이메일을 받았다. 그 이메일은 똑같은 카피가 부모님께도 전달되도록 보내진 것이었다. 타라는 열어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일지 알 것만 같았다. 악령 들린 위험한 타라를 버리고 아버지 말씀에 따르겠다는 내용이 분명할 것이었다. 그 편지는 가족 집단에 계속 속하기 위한 보증 티켓일 것이었다.


타라가 억지로 이메일을 열어보았을 때, 짐작했던 것과 많이 다른 내용이 펼쳐졌다. 부모님이 잘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모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과도 맞지 않는 믿음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Our parents are held down by chains of abuse, manipulation, and control,... They see change as dangerous and will exile anyone who asks for it. This is a perverted idea of family loyalty... They claim faith, but this is not what the gospel teaches. Keep safe. We love you.

타일러 오빠는 아버지의 위협을 받고 며칠 간을 고민했다고 한다. 내 여동생한테 어찌 그럴 수 있겠냐고 매일 밤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타일러 오빠와 올케의 지지를 느끼며, 타라는 조금씩 힘을 얻고 우울증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카운슬러를 찾아가 상담 신청을 하고, 그해 겨울 내내 타일러 오빠와 올케와 통화를 더 자주 하며 그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들어주었고, 타라는 할 말이 그렇게 많았다. 타일러 오빠와 부모님 사이의 관계를 찢어 놓은 것 같아 깊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죽어가고 있던 자신에게 이렇게 힘을 주는 오빠가 있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Tyler paid a price for that letter, though the price is hard to define. He was not disowned, or at least his disownment was not permanent. Eventually he worked out a truce with my father, but their relationship may never be the same.

I've apologized to Tyler more times than I can count for what I've cost him, but the words are awkwardly placed and I stumble over them. What is the proper arrangement of words? How do you craft an apology for weakening someone's ties to his father, to his family? Perhaps there aren't words for that. How do you thank a brother who refused to let you go, who seized your hand and wrenched you upward, just as you had decided to stop kicking and sink? There aren't words for that, either.


그해 겨울, 타라는 상담받으러 다니고 드라마를 계속 보는 일 밖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Winter was long that year, the dreariness punctuated only by my weekly counseling sessions and the odd sense of loss, almost bereavement, I felt whenever I finished one TV series and had to find another.


타라의 회복


타라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데 수개월이 걸렸다. 봄,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이 왔다. 그때쯤부터는 타라가 집중해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족과 가족의 무에 관한 주제로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주제가 그녀의 논문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녀는 “The Family, Morality, and Social Science in Anglo-American Cooperative Thought, 1813-1890.”라는 주제의 박사 논문 초고를 끝냈다. 스스로 매우 만족스러운 초고였다. 그것을 지도교수에게 보여주자, 교수는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타라는 그녀의 종교적 배경과 그녀의 배움을 모두 이용해,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학문적 업적을 이룬 것이었다. 그녀는 현재를 누리기 위해 과거를 부정할 필요도,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미래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해 가을 그녀는 박사 논문 초고를 학교에 제출했고, 같은 해 겨울에 박사 논문 심사를 받았다. 마침내 1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그녀는 닥터 웨스트오버가 되었다. 17세에 집을 떠나 공부를 시작한 타라가 나이 27세에 이룬 업적이었다. 그녀는 드류와 함께 영국에서 보금자리를 꾸몄지만, 모종의 상실감을 느꼈다. 그건 가족을 잃은 느낌보다 더 큰 무엇이었다. 나의 근본 전체를 잃은 느낌에 가까웠다.


떠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조용히 떠난 것이 문제였다. 타라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마음대로 타라의 역사를 쓰고, 마음대로 타라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고, 마음대로 사방팔방 떠들었다. 타라 자신이 너무 많은 여지를 준 것이었다. 타라는 산골 집에 다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역사를 쓰는 일에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가야만 했다.

On my twenty-seventh birthday, the birthday I had chosen, I submitted my PhD dissertation. The defense took place in December, in a small, simply furnished room. I passed and returned to London, where Drew had a job and we'd rented a flat. In January, nearly ten years to the day since I'd set foot in my first classroom at BYU, I received confirmation from the University of Cambridge: I was Dr. Westover.

I had built a new life, and it was a happy one, but I felt a sense of loss that went beyond family. I had lost Buck's Peak, not by leaving but by leaving silently. I had retreated, fled across an ocean and allowed my father to tell my story for me, to define me to everyone I had ever known. I had conceded too much ground - not just the mountain, but the entire province of our shared history.

It was time to go home.






사람을 살리는 일에 누군가 믿어주고 들어주고 보살펴 주는 것의 힘을 본다. 끝까지 사랑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의 능력을 본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가져야 할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인내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여동생에 대한 타일러 오빠의 지극한 사랑이 타라를 살렸고, 도움을 구하고 받을 줄 아는 타라의 용기와 지혜가 엉망진창 진흙탕에 쓰러진 그녀의 삶을 세워 냈다.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루어 내고, 이제 힘을 회복한 타라는, 자신이 힘없이 내어주었던 것을 찾으러 씩씩하게 다시 상처의 그곳으로 진격해 나아갈 참이다.


조용히 도망가기, 나도 참 많이 했다.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기지 못하고, 목소리 내지 못하고 물러나기도 많이 했다. 나는 다시 그곳에 가서 내가 되찾아 와야 하는 것들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 상실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지 자세히 훑어본다.


나의 상실은 내 안에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너무 많이 휘둘리고 변형된 내 자아. 너무 사랑받고 싶어서, 사회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스스로를 뒤틀어 기형이 된 내 자아.


나는 나를 온전히 나다운 모습으로 회복해야 한다. 내 자아를 지탱해 줄 언어부터 찾아야 한다. 내 자아를 회복시킬, 내 자아 모습 성향 그대로 괜찮다고 증명해 줄, 언어를 찾아야 한다. 이런저런 심리적 욕구와 압박 때문에 피하고 둘러갔던 모든 것들을 다시 불러와 내가 잃어버린 언어들을 찾아내야 한다. 아직 되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움의 발견 37. 누가 뭐래도 나를 치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