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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May 03. 2021

옷 사기부터 배우자 고르기까지, 선택과 코디 기술

점점 옷 고르기 힘든 진짜 이유

아직 옷을 못 산 이유


지난 몇 주간, 워싱턴 디씨와 버지니아 주까지 다녀오고, 새로운 쇼핑 몰을 두 군데나 더 둘러봤는데도 옷을 사지 못했다. 고를 옷이 없었다. 옷을 왜 못 고르는지 이유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난 수년간 미니멀 라이프를 고수하며 안 그래도 잘 못하는 쇼핑을 더욱 등한시하여 옷 고르는 감이 떨어졌다.
나이 먹으며 몸은 변해가는데, 눈은 더욱 높아져 옷에게 바라는 게 많아졌다. 적당히 가릴 곳을 가리고 돋보여야 할 곳을 돋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세련미와 우아한 분위기까지 풍겨주길 바란다.
20-30대에 자주 찾던 브랜드 옷들이 더 이상 내 옷 같지 않고, 옷감도 디자인도 만족스럽지 않다. 나에게 어울릴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옷빨은 점점 떨어지는데 옷에 바라는 기대치는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이 먹어가며 변하는 몸에 맞춰 어울리는 옷을 계속 찾아야 하는 고민은, 특별히 체중 체형이 오랫동안 변함이 없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 말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옷 고르기에 관해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보니


이렇게 옷 고민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다 보니, 대화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에게 털어놓게 되었고, 이런저런 조언을 듣게 되었다.


드라마를 열심히 보면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나오는 배우가 있으면, '어느 배우가 어느 드라마 몇 회차 무슨 씬에서 입었던 옷'으로 검색해서, 브랜드 명을 알아내고 그것을 구매할 방법을 찾아보기
아마존 검색해서 눈에 좋은 대로 마구 지른 후, 받아 보고 마음에 드는 건 킵, 안 드는 건 리턴 환불받기
옷이 완벽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면 과감히 구매해서, 예쁘게 코디해서 입을 방법 찾기


귀 기울여 듣고, 참고해 볼만한 조언들이라고 생각된다.


비싼 명품관에 가면 내 구미에 맞는 예쁜 옷 많아. 근데 거기선 돈이 모자라 옷을 못 사지.

라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다. 그 말은 마치, '내가 원하는 조건 다 갖춘 남자도 많지. 근데 그런 남자나 그 집안에서 원할 조건은 내가 죽어도 못 갖추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욕망하는 걸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갖추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모든 바람을 충족시키는 결과가 결국 내 마음을 짓누르는 부담이 되고, 나 스스로에 대한 비관과 혐오라는 후폭풍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내게 좋은 조건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잔뜩 부담스러운 선택을 하고 내내 고통받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너무 귀한 존재라 상전처럼 모셔야 하는 선택은, 물건이건 사람이건 내가 함께 해서 마음 편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걸러야 하는 옵션은 재빨리 거르고 미련을 거두는 쪽이 낫지 않을까.


옷 고르기에 대한 여러 조언들을 듣고 생각해 보니, 선봐서 결혼할 배우자감 고르기에 버금가는 기준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라는 이성의 조건이 수만 가지라도, 그 모든 욕망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면 정말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 몇 가지로 조건으로 압축해 나가야 하는 것처럼, 내가 옷에 바라는 조건이 무수히 많아도, 내 구미에 다 맞추어 줄 정도의 디자이너와 재단사의 비용을 감당할 것이 아니라면, 가장 절실한 몇 가지 정도로 기준을 대폭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적절한 품/길이
옷감/바느질 상태
내게 어울리는 색상


일단 이 세 가지만 보는 걸로 압축을 해 보려고 한다. 옷이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 같은 것은 코디와 액세서리를 활용하여 커버하는 걸로 하고, 일단 옷이 전반적으로 잘 맞고 편하고 어울리는 느낌이면 사 볼까 한다. 직업 있고, 대화가 통하고, 사람이 착하면 나머지는 너무 따지지 말자 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단점을 잘 골라 품고 조율하는 코디 기술


동화 속 왕자님을 바라듯이, 동화 속 드레스를 바라는 것은 내 상상의 자유지만, 현실적 고민은 현실적 실질적 기준을 세워야만 해결이 되는 것 같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은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 배우자도 옷도 내 가족으로 맞아 평생 함께할 만한 내 삶에 잘 어울리는 편안하고 나 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진짜 중요한 것들을 알아보는 지혜와, 진짜 중요한 것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무시하고 내 감정을 부정하고 사는 것도, 진짜 중요한 것에서 균형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무엇을 골라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참으로 공평하게 장단점을 고루 가졌다. 다만, 내 선택의 단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점인지를 미리 잘 확인해야, 단점까지도 감싸 안고 함께 잘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크게는 배우자부터 작게는 옷까지, 인생의 모든 선택들에 대해서, 단점을 잘 감싸 안고 코디하여, 단점조차 장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장단점을 가진 그러한 동전의 양면 세상에선, 명품관의 옷보다, 세상 기준 상위 1% 조건을 가진 배우자감보다 중요한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점을 잘 골라, 잘 품고 조율하는 코디 기술이 아닐까. 제 아무리 세계 최고라 평가 받고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무엇이래도, 그 단점이 내가 감당하지 못할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내 입장에선 내 인생에 들일 가치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일단 올 여름에 입을 옷을 잘 사서 단점을 커버하며 코디하는 기술부터 연마를 해보련다. 그리고 나서 내 모든 앞으로의 선택들에까지 그 선택의 지혜와 코디 기술을 늘려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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