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습작
진아는 최고 순위의 진가를 아는 여자다. 권력 실세로 오랫 동안 힘을 떨쳤던 할아버지의 그림자와, 유명대 총장이라는 학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아버지의 힘을 충분히 맛본 후, 사람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최고의 위치가 갖는 힘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뜻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끝까지 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더라면, 그녀는 원상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녀는 청소년 시절 아버지에게 반항을 했다. 아버지에게뿐 아니라 자신이 갇혀 태어난 화려한 감옥소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상대로 화를 냈다. 그땐 '아버지가 세심히 알아서 꽂아주는 것'의 가치를 몰랐고, 모든 걸 통제하고 조종하는 부모에 대한 적대감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거칠게 헤집었다. 진아는 자신의 가슴속 불길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을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길을 택했다. 금지된 관계를 맺고 자신의 몸에 천박한 금기의 때를 묻힐 때의 쾌감이 가장 짜릿하고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길에서 만난다면 누구나 한 번쯤 더 돌아볼 만큼, 귀엽고 여성스러운 매력이 있는 진아는 남자들이 많이 따랐다. 덕분에, 맘껏 골라가며 여러 종류의 남자들과 놀아 볼 기회가 많았다. 놀면서도 서열을 매기고 분류하고 있는 자신. 그녀는 자신이 속으로 하는 짓을 문득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부모의 인간 감별 기준이 그대로 자신의 머릿속에 전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안과 재력을 꼼꼼히 따져 서열을 정할 수 있는 분명한 선별 기준이 제 안에 확립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확신했다. 자신이 그런 기준을 가진 이상 아무나 만나고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그것을 깨닫자마자 자신이 놀던 자리를 모두 뒤로하고 부모님의 안전한 품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문제는, 아무나 하고 놀았던 끝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아가 놀고 버린 남자들이 집 앞에 와서 난장을 부리는가 하면, 인터넷으로 모대학 총장 딸이 날라리, 걸레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어느 날 세상 정보에 해박한 꼼꼼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지금 상태로는 너 우리 집안 수준에 맞는 쟁쟁한 집안 남자들은 못 만난다."
지금 세간에 떠도는 진아의 소문이 너무 나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그 중요한 '평판'을 갈아먹었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진아는, 자신의 과오를 덮고 부모님의 뜻대로 살아갈 방법이 있을지 물었다.
"이제부턴 무엇이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할게요."
진아의 항복을 받자마자, 어머니의 오점 하나 없이 완벽하게 잘 그려진 눈썹의 좌우대칭이 순간 파격적으로 깨지더니, 한쪽 눈썹이 다른 쪽보다 더 높이 올라간 채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 너 미국에 가라. 거기서 자연스럽게 이름도 바꾸고,......"
어머니는 미국에 가서 학위도 따고 제대로 된 평판을 쌓아 오라고 했다.
부모님이 진아의 소문 세탁을 위해, 미국 명문대 진학 코스를 짜는 일은 진아의 방을 뜯어 리모델링하는 일보다 쉽고 간단했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jbundg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