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나의 최초의 기억은 내가 19개월 정도의 유아였을 때로 거슬러간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무슨 기억이 가능하냐 하겠지만, 나와 내 남동생은 딱 19개월 차이고, 나는 아기 동생이 태어나 집에 왔던 그날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받은 충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매일 안기던 엄마 품 안에 내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것. 또 하나는, 드디어 아들이 태어난 것에 몹시 환희에 찬 표정들. 그것은 내게 몹시도 큰 상실과 차별의 충격이면서, 질서의 전복이었다.
남동생의 출현이 얼마나 정신적 충격을 몰고 왔는지는 내 어릴 적 사진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남자 옷을 입고 최대한 씩씩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 자신을 잃어버린 아이. 정체성의 혼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더 안심이 되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남자의 옷을 입고, 남자 같아 보여야 안심이 된다고 느끼는 아이의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한 혼돈들을 주변 어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아무 말하지 않고 남자아이 옷을 입혀주고 학교에 가게 한 것을 보면, 어린 여자 아이가 남성적 취향을 보이는 것이 우습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혹은, 여자아이가 그렇게 남자아이처럼 구는 것이 진취적이고 용맹한 기질로 발전할 것이라 기대하여, 학교 생활 사회생활하기에 더 이익이고 안전하다 여겼는지도 모른다.
사진 속의 나는 대체로 남자아이의 옷을 입고 있고, 몹시도 마르고 발육이 늦은 편이었던 내 모습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남자아이의 옷을 입으려 하고, 남자처럼 보이려 하는 심리는 생각보다 꽤 오래갔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엔, 키도 많이 크고, 걸음걸이까지 건들건들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으므로, 지나가는 꼬마들은 나에게 '형'이라고 불렀고, 다니던 여학교에선 여학생들의 남성성에 대한 낭만적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우상이랄지, 가짜 연인 역할이랄지, 암튼 몹시 공허하고 달달하고 눈에 띄는 휩 크림 토핑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책상 위엔 팬레터와 장미 초콜릿 등이 쌓여 있었고, 때론 나를 두고 여학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내 앞에서 훌쩍거리며 누굴 택할 건지 답을 분명히 달라고 고집을 부릴 때는 정말이지, 우유부단한 성격 끝에 두 집 살림을 차리게 된 드라마 속 부잣집 아들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때 내 나이 고작 만으로 열셋이 될까 말까 한 나이일 뿐이었는데, 나는 어른들의 <사랑과 전쟁> 못지않은 소용돌이 속에서 공짜 초콜릿과 향기 나는 꽃편지가 불러오는 곱절의 대가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어릴 때 막연히 꿈꾸던 연예인이나 연주자 같은 화려한 직업이 결코 행복을 주지 않겠다는 걸 말이다. 진짜 나를 모르는, 진정한 공감이 없는 환호는 마음이 시릴 정도로 스산한 느낌을 동반한다는 것, 광적으로 열광하는 마음들이 때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나를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즈음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엔 모두가 교복을 입을 것이 요구되었고, 주변에 교복을 입지 않는 학교는 없었다. 내가 다니던 여학교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치마와 베스트, 그리고 재킷으로 구성된 네이비색 교복을 입었고, 다른 학교 교복들도 회색과 네이비색 사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색조에, 모양이나 구성들도 비슷비슷했다. 교복 착용의 의무화로 치마를 매일 입어야 했던 탓도 있지만, 그때쯤에는 내 몸도 많이 변해서 남자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남자로 보이긴 힘든 상황이 되었다.
학교에서 의무 자율학습 - 강제 학습의 다른 이름 -을 밤늦게 까지 하고 학교 버스를 타고 , 집 근처 대로변에 도착하면 이제 막 아가씨 티가 나기 시작하는 딸의 밤길이 걱정이 된 엄마가 마중 나와 있었다.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집에 도착하면, 약간의 간식을 먹고, 남은 숙제나 공부를 하고 잠드는 일.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또 일어나는 일. 이것이 3년 동안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하루 일과였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나는 자연스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학교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던 것 같다.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는 주로 남자 교사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학교를 지켰는데, 선생님이 지나가다 소란스럽고 질서가 없는 반이 있으면 그 반 반장을 불러서 손바닥 몇 대를 치면, 아이들은 학급을 대신해서 신체 고통을 당한 반장에게 미안해서 숙연해지는 심리 작용으로 운영되는 자율 시스템이었다.
나는 반장이었고 - 어떻게 반장이 되었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우리 반은 특별히 까불거리고 할 말이 많은 여자 아이들이 많았고, 나는 그 아이들을 다 조용히 시키는 능력에 있어서 몹시 역부족이었으므로 - 나는 집중하면 전혀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진 탓에 -자율학습 시간마다 꽤 많이 불려 나갔고 종종 맞았다. 그런 과정에서 알게 된 최철광이라는 교사가 있었다. 3학년 졸업반 담임이었던 그는, 1학년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다른 교사들보다 좀 더 여유가 있었고.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굳이 힘든 몸을 무리해가며 여학생들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코 만만하게는 볼 수 없는 어딘지 냉정하고 음울한 그림자가 눈 주변에 드리워져 있어, 언제든 수틀리면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풍기는 교사였다. 긴장을 풀고 대할 수 없는 느낌은 '불독'이라 불리는 주임 교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문득 내 이름표에 머물렀다. 순간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은 지겹도록 익숙하다는 노련한 표정이 잠시 사라지고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강? 네 이름 외자야? 무슨 강인데?"
사실 내 입장에선, 자라면서 수차례 보았던 표정이고 받았던 질문이라 새롭지도 않아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강할 강요"
대답하고, 문득 고개를 들어 교사의 얼굴을 보니 한쪽 입꼬리가 꽤 많이 올라가 빙글거리는 모습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자 애들 이름에 잘 안 쓰는 한자를 쓰셨네. 너희 아빠가 지어주셨니?"
"아니요. 엄마가요."
교사의 눈빛에 또 한참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랐다.
거짓말이었다. 우리 집은 철저한 가부장 사회였고, 아이들의 이름 짓는 일에 여자의 권한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사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가늠하지 못해 혼란에 빠지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나는 거짓말을 종종 하곤 했다. 사실 집에서 누가 이름을 지었는가 따위에 누가 관심을 갖고 캐묻겠는가. 나는 다만 엄마가 이름을 지을 수도 있다는 개념을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즐거웠던 것이다. 사람들이 따지고 들 느낌이 들면, 엄마가 이름 지었다고 말해줘 하고 엄마에게 부탁하면 그뿐일 터였다.
사실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절에 가서 지어온 이름이었다. 다음에 아들을 낳을 운을 높이기 위해서, 사주 관상인지, 명리학인지를 아주 잘 안다는 스님이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아들이 들어섰으니, 가족들은 내 이름이 영험하다고 생각해, 모두들 열심히 내 이름을 불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은 대부분 내 이름을 전체적으로 다 불러주어야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최강'이라고 불러온 것이 버릇이 되었고, 오직 시아버지가 어느 날 갖다 안긴 딸아이 이름이 요즘 아이들 이름처럼 세련되고 아련한 맛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운 엄마만 '강희야'라고 없는 ㅎ(히읗)을 굳이 끼워 넣어 불러주곤 했다.
"너 내 조카하고 이름이 똑같다. 한자까지."
그때까지 나는 그 교사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네."
"네 이름 참 좋다. 너, 내 이름 아니?"
"아니오."
"그래."
그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우리 반 아이들을 향해, 다시 왔을 때 이렇게 떠들고 있으면, 네 반장 10대 때릴 거라고 엄포만 놓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린 채로, 절룩절룩 다른 반 쪽으로 걸어갔다.
공갈 협박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희미한 관심 한 자락을 받은 것 같기도 한 내면 충돌적인 감정을 느끼며 자리로 돌아온 나는, 옆자리 짝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최철광 쌤 젊었을 때 잘생겼을 것 같지 않아?"
나보다 더 반장처럼 생겨선 은근 야시시한 소리를 많이 하는 옆자리 수민이가, 그의 이름은 물론, 그가 다리를 다치게 된 사연까지 다 말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