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몰락의 기억 (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축구 선수였대'



내가 열 대 맞을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조심스러운 수민이는 노트에 글을 써서 보여주었다.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이라, 우리는 종이쪽지를 전달하며 실시간 문자를 주고받았다. 주고받은 종이 뭉치가 필통 한가득 쌓일 때쯤, 나는 최철광이라는, 교사가 아닌 사람을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대 초반의 그가 파란색 축구 유니폼을 입고, 환한 햇살 아래, 싱싱한 초록빛 필드를 뛰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같은 팀 선수들과 거칠게 손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치는 상상 속의 선생님은 땀이 줄줄 흘러내려 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너무 더워서 수돗가에서 머리를 적시고 와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얼굴엔 생동감이 가득하다. 힘차게 뛰어가는 그의 근육이 불끈불끈한 두 다리를 상상만 해도 내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고 신이 났다.


그렇게 강하고 힘찬 두 다리를 가졌다가 잃게 된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렇게 온 땅을 날아다니듯 누비며 활동적이었던 사람이 이 여학교에 갇혀 절룩거리는 모습밖에 아이들에게 보이지 못하는 심정이, 가만히 서서 수학공식만 줄줄 읊으며 살고 있는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몹시도 슬퍼졌다. 어쩌면 지금쯤은 그도 자신의 현실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삶을 어느 정도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앞으론 선수 생활을 못한다는, 평생 다리를 절게 될 거라는 선고를 받은 그날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머리카락을 손에 돌돌말아 쥐어뜯었다.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소름이 끼쳐 생각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사람이 살다가 겪을 수 있는 고난의 수준이, 그 깊이와 폭이 너무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라, 고등학교에 진학해 보게 된 사람들의 사연을, 알면 알게 될수록 나는 무언가 뜨거운 꼬챙이가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이 들고, 몸이나 마음이 망가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며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최철광 선생님 이야기를 수민이에게 전해주었을 수민이의 이모인 김영애 영어 선생님만 해도 그렇다. 항상 한쪽 얼굴을 긴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계신 선생님은, 고3 때 크게 고통 사고를 당하셨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예쁜 얼굴 한쪽에 심한 흉터가 있어 머리로 항상 가리시는 거라고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문자 과학 선생님은 폭발 사고로 화상을 입으신 적이 있어, 얼굴 전체가 항상 붉은 생선 비늘처럼 피부가 얇았고, 김정신 역사 선생님은 단정하게 묶고 다니시는 머리카락이 너무 듬성듬성해서 머리 밑이 환히 보일 정도다. 아이들을 출산한 후 심하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곤 다시 머리가 나지 않으셨다고 한다. 나는 학교에 와서 교사들을 볼 때마다 삶의 도처에 빠지면 큰일 나는 깊은 수렁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듯 불안하고 불확실한 느낌이 밀려오곤 했다. 사람이란 존재가 너무나 연약하게 느껴졌다. 지우기 힘든 상처. 평생 남는 흉터를 안고 가는 어른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디서 이런 분들만 모아서 교사진을 만들 걸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게, 내가 다니는 학교는 서울에 본가가 있는 어느 정치인이 설립한 사립학교라고 했고, 교사들은 그 정치인의 주변 인맥으로 구성되었기에, 모두 서울에서 학교를 나온 서울 사람들이 많았다. 수민이도 어릴 때 서울에서 살았고, 수민이 부모님과 친척들이 다 서울이 고향인 분들이라, 나는 집 밖을 나서 학교에 오면 서울로 공중 이동해 와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 서울 기분을 깨 준 것이, 2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갑자기 창원에서 전학 온 천조였다. 고등학교에서 전학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학교를 바꿔야만 하는 문제나, 덮어야 할 소문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들어간 고등학교를 바꾸고 전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추첨으로 학교가 정해지는 시스템인 만큼, 타 도시에서 부산으로 학기 중에 이사 오는 고등학생들이 진학할 고등학교를 찾는 일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하루라도 학교에 빠지면 따라잡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는 입시 준비 위주의 교육인 만큼, 대부분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적당한 지역에 자리 잡아, 무탈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는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보내는 것이 대부분의 자녀를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고 자세였다.



담임은 천조의 새 학교 적응을 반장인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지, 굳이 2년째 내 짝이 될 뻔 했던 수민이를 뒷자리로 가게 하고, 천조를 내 옆에 앉혔다. 키가 큰 편인 수민이가 뒷자리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 수민이도, 누구도 불만은 없었다. 아마 최대한 숨고 싶은 심리가 있는 수민이는 가장 뒷자리에 앉게 된 것을 내심 기뻐하고 있을지 몰랐다. 천조는 전혀 낯설어하거나 어리바리한 기색 없이 다부진 동작으로 가방을 정리하고 내 옆에 앉으며, 다소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네가 반장이가."


"어."



어떻게 전학하게 되었냐고 물어보고 싶은 호기심을 꿀꺽 삼키며, 마침 조례를 마치고 나가는 담임을 향해 일어나 대표로 차렷 경례 구호를 했다.


"와따.. 반장 목소리 대차네... 무서버서 말이나 걸겠나."


나는 천조의 혼잣말에 묘하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면서, 새로운 짝을 만난 긴장이 풀어졌다. 4교시까지 이어진 오전 수업을 마치고, 천조와 나, 수민이에, 덕분에 수민이 짝이 된 오지랖 유경이까지 껴서- 평소 밥 같이 먹는 장신 친구들 그룹으로 가지 않고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은 건 천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 것 같았다 - 같이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 천조는 이삿짐 정리가 안된 데다, 엄마가 부장으로 첫 출근이라, 도시락 준비가 안돼, 집에 있는 컵라면을 가져왔다며 어디서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내, 아침도 못 뭇거등... 밥인데 세 개는 무야지."


가방에서 컵라면 세 개를 꺼내는 그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를 향해 그녀가 겸연쩍게 웃으며 변명을 했다. 수민이가 갑자기 뒤돌더니 가방에서 세숫대만한 양푼 바가지를 꺼내 들고 야, 다 합쳐라고 말하자마자, 우리는 각자의 도시락을 바가지에 다 쏟아부었다. 잠시 망설이던 유경이도 결국 도시락을 우리와 합체시켰다.


"느그 머하노? 학교에서 비빔밥도 해묵나?"

"기다리 바라"


수민이가 어색한 사투리를 흉내 내며 기세 좋게 밥을 비벼선, 각자의 도시락 통에 덜어주고, 각자에게 덜어준 만큼 비빈 밥이 남겨진 양푼 바가지를 천조에게 내밀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내 집밥 진짜 오랜 마이다. 우리 엄마가 밥을 잘 안 한다. 으헉.. 너무 마싯다 마시써!"


천조는 감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입가에 밥풀을 묻혀가며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우리는 천조가 가져온 컵라면 세 개까지 양호실에서 얻어온 뜨거운 물을 부어 나눠 먹고야 푸짐한 점심 파티를 끝냈다.


천조는 남은 점심시간 동안 혼자 있기 싫은지, 가스가 잘 차서 밥 먹고 서서 돌아다닐 필요가 있는 나를 따라 운동장으로 함께 산책을 나왔다.



"나 느그들 억수로 마음에 든다. 특히 반장 니. 친하게 지내자 반장."



과감하게 호감을 표시하는 천조에 대해, 묘하게 유쾌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천조가 나에게 일으키는 감정엔 묘한 느낌이 늘 함께 스며드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대놓고 나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감정 표시를 하는 친구들은 없었던 것 같다. 수민이는 이모가 교사다 보니 아이들이 꺼리기도 하고, 자신도 이모의 입장을 생각해 말조심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해서,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벽장 그림처럼 조용하던 친구였다. 처음부터 친구가 되자고 시작했다기보다, 짝이다 보니 옆에 있었고, 옆에 있는 내가 편한지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수민이가 나에게 다 점점 보여주기 시작했고, 티브이에 나오는 모범생처럼 하얗고 하늘하늘하게 생겨선 온갖 망측한 이야기들을 다 지껄이는 그녀가 너무 기가 차고 웃겨서 웃고 들어 주다보니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수민이는 내 리액션이 좋다는 말을 하긴 했었다. 난 그냥 개똥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나이를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거라도 좋다니 좋으면 된 거였다.


"우리 아빠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엄마 친정이 있는 부산에 온 기다."


천조는 내가 믿을만한 친구라고 결정을 해 버린 듯, 자신의 사연을 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천조 엄마가 전국에 지점이 있는 대형 보험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전무후무한 승진을 하고 부산 지점으로 옮겨온 인사이시며, 천조에게 만조라는 남동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남동생 하나 있다. 두 살 차이다."


나는 내 동생 동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세 살 차이. 근데 이 몬땐 놈이 돈 액수가 더 크다고 맨날 기어오른다."


"무슨 돈?"


"우리 이름. 천조. 만조."



나는 천조가 말을 하고 딱 정확히 3초 후에 폭탄처럼 터졌다.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한참을 깔깔거렸다. 많이 겪은 일인지 내가 웃는 게 웃기는지, 천조는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서서 내 웃음 발작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었다.


"진짜 이름이 돈 액수를 의미하는 거가?"


"어. 우리 부모님이 좀 밸라다. 돈이 그래 좋단다. 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개명해 뿔 기다."


"천조. 나는 네 이름 들었을 때 '하늘을 나는 새'라고 생각했다."


"그리 생각해 주믄 고맙고. 그래도 나는 이름 대학 가기 전에 바꾸고 싶다."


"좋은 이름 생각해 논 거 있나?"


"예쁜 이름이야 쎘다 아이가. 젤 인기 있는 이름 골라 할기다."



나도 다른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했지만, 구체적인 개명 시기나 바꿀 이름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도 개명하까... 아들 낳을라고 이래 짓다카네..."


나도 모르게 내 마음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최강... 니는 거다 '희'만 붙이면 게안켔다"


"안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를 강희라 부른다."


"그래 불러주는 사람이라도 있어 좋겠다. 나는 씨... 그래도 우리 아빠는 우리 귀한 천조, 우리 비싼 천조, 이렇게 라도 말해줬는데, 울 엄마는 하... 말을 말자. 우리 김여사는 욕을 안 섞으면 말을 몬한다. 아, 아빠 보고 싶네..."



고개를 돌리는 천조의 눈가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내 동생 이름 동우가 아들이 귀한 만큼 천하게 짓되 멋있게도 지으려고 할아버지가 스님을 만나 몹시 고민한 끝에 나온 이름인데 사실은 소똥을 의미한다는 걸 말해주고 같이 웃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천조의 슬픔이 순식간에 내 마음을 뒤덮는 바람에 천조에게 하려던 시시껄렁한 농담들이 다 물속에 잠겨 흩어졌다. 세상에 이 모든 아픔이 왜 있는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뭐라 위로를 해줘야 할지 알 수도 없어, 몹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야, 우리끼리 서로 이름 부르지 말고 원하는 별명 만들어 불러주기 하까."



잠시 허공을 헤매는 듯하던 천조의 눈빛이 나의 뜬금없는 제안을 고민하기 위해 현실로 복귀하는 듯했다.



"어떻게?"


"각자 자기가 앞으로 불리고 싶은 이름 생각해 보고, 서로 그 이름으로 불러주기."


"좋다."


"개명하기 전에 좋은 이름 함 테스트해본다 생각하고."


"그래그래!"


"수민이도 지 이름 싫다카던데, 같이 하자고 해봐야겠다."


"그래 더 많이 같이 할수록 좋지."



수민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끝자를 똑 같이 하자. 자매 느낌 나게. 어때?"


"괜찮은 아이디어긴 한데... 일단은 천조가 개명하고 싶은 이름이 있을 것 같으니까. 천조가 정해 오면, 이름보고 생각해 보자."


"내 정했다... 바로, '혜리' 어떻노."



혜리라는 이름이 주는 앙증맞은 느낌과 천조의 듬직하고 강직한 느낌이 상당히 달라서 우린 속으로 당황했지만, 친구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어낸 이름이라는 느낌이 들어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구 박수를 쳤다.



"좋다 좋다!"


"우리 '리'로 끝나는 별명 짓기는 어렵겠는데, 나는 수리, 너는 강리.. 너무 아니다."



우리는 웃음 버섯을 먹은 아이들처럼 또 깔깔 댔다.



"꼭 이름 끝자가 같을 필요 있나? 그냥 앞에 '혜'를 따는 건 어떻겠노? 혜강이, 혜민이."


"오... 괜찮은데!"



수민이가 '혜민'이라는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드는지 박수를 쳤다.



"혜강이도 마음에 든다."


"나도 낑가 주면 안돼나?"


우리끼리 신나서 떠들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나 5교시 준비를 하던 유경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안될끼 머있겠노? 니도 같이 하자. 니는 혜경이 해라."


천조는 오늘 전학 온 학생이 아닌, 이 학교의 짱인 것 같은 말투로 너그럽게 명령했다.


"아 근데... 나는 '혜'자 말고 '리'를 따면 안돼나? 나는 혜경이는 좀 벨로고, 유리 하고 싶은데... 내 원래 유리라는 이름 억수로 좋아한다."


평소 말을 많이 섞어 본 일도 없거니와, 그렇게 간절한 유경이의 표정이 처음인 수민이와 나는 여기에 함께 끼겠다는 유경이의 발상 자체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지만, 유리라는 이름이 예쁘다는 것에는 만장일치하여 오..게안네 하면서 수긍해 주었다. 천조는 함께 하기만 한다면야 괜찮지 않을 게 뭐가있냐며 행복감에 흠뻑 젖어있는 듯 했다. 학교 첫 날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렇게 친해지게 된 자체에 무척 감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날, 천조, 유경, 수민, 강이 아닌, 혜리, 유리, 혜민, 혜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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