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극의 조건 (1)

[소설] 도도한 도둑년

by 하트온

오정순은 아주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스물에 동갑내기 남편 전춘봉과 살림을 차린 첫해부터 애가 줄줄이 연년생으로 들어섰었기 때문이다. 덕문에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이들은 모두 중고등 학교를 다니고, 더 이상 손이 갈 일이 없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촘촘히 짜인 학교와 학원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고 집에 와서도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엄마는 필요 없는 것 같았다. 오정순은 그래서 마음 둘 데를 찾으려고, 파르테논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와 모임에 다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들은 다 키웠고, 좋은 동네로 이사도 왔도, 남편 사업도 더없이 잘되고 있어 모든 것이 전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풍족한데, 오정순은 이상한 허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느낌.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하고 밀어내도 그 이상한 허탈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올라와 뺨을 때렸다.


남편은 너무 편해서 그런 거라며, 함께 바쁘게 돌아다니자고 했지만, 오정순은 남편이 하는 식당 체인점에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식당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그녀는 탈북자 이미지를 함께 써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춘봉도 오정순도 탈북자가 아니었다. 오정순은 칠갑산 산골 출신이었고, 전춘봉은 중국 연변이 고향이었다. 그녀가 남편이 하는 사업에 끼어 들어서, 사업에도 그녀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일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오정순이 나고 자란 칠갑산 일대는 고추 농사로 유명하다. 고추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정순의 친정도 고추 농사를 크게 하는 집이었고, 그렇게 돈을 벌어 아들 둘을 대학 대학원 미국 유학까지 시켰다. 하지만, 그만큼 돈이 남아 돌아서는 아니었기에, 딸들은 죽도록 일해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오정순은 칠갑산에서 나서 칠갑산을 벗어나기까지 친구와 노는 게 어떤 건지조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안치는 일부터, 학교가 파하자마자 와서 농사일을 돕고 저녁 차리고 치우고, 집을 청소하고, 다음 날 찬거리 다듬어 놓는 일까지 모두 두 살 위 언니와 오정순의 몫이었다.


오정순은 언니를 제치고 먼저 결혼을 해서 칠갑산을 벗어나는 바람에, 언니가 몹시 화가 났었다. 언니뿐 아니라 모두가 화가 났었다. 오정순이 결혼한 사람이 조선족 일꾼이라고 은근히 무시했던 전춘봉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 첩첩산중까지 들어와, 그 뜨거운 여름 고추밭에서 땀 뻘뻘 흘리며 성실히 일해준 전춘봉을 진심으로 고마워 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으면 오롯이 이 일을 다 뒤집어썼을 오정순뿐이었다. 여름이 되어도, 대학생 대학원생인 오빠들은 내려오지 않았고, 언니는 서울 친구네에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며 아버지 허락도 안 받고 가출하듯 집을 떠난 상태여서, 그 여름 내내 고추밭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전춘봉 오정순뿐이었고, 몹시도 외로웠던 오정순에게 전춘봉은 급속도로 최초의 친구가 되더니, 최초의 남자가 되었고, 그 여름이 끝나기 전에 뱃속의 아기까지 잉태시켰다. 별 빛 가득한 칠갑산의 여름밤이 몹시도 길고 낭만적인 탓이었다.


몹시도 보수적인 오정순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뜨내기 일꾼이 몹시 탐탁지 않았지만, 대대로 살아온 마을 - 대부분 친인척인 씨족 부락-에 처녀가 임신했다고 소문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그는 더 이상 끼고 있을 수 없는 두 사람을 결혼시켜 바로 도시로 쫓아 보냈다.


두 사람 다 가진 건 젊음과 건강뿐, 정말 빈 손인 채로 나와 줄줄이 들어서는 아이들을 키우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그들이 일구어 낸 것은 엄청난 자수성가임에도, 그녀는 여전히 가슴을 후비는 결핍감에 시달렸다. 지금까지는 애들 셋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이 없어 생각지 않고 넘어간 것들이 요즘따라 자꾸만 무르익은 고름처럼 마음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오정순이 가장 부러운 여자는 윤정아였다. 윤정아가 우리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들먹일 때마다 오정순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는 그 외동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말이다. 그 여자야 말로 태어난 순간부터 사랑을 넘치게 받아 온 복이 가득한 여자라는 걸 말이다.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금방 알아보는 법이다. 그 아버지가 윤정아에게 해주었다고 하는 것들이 오정순의 귀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쑤시고 파고들었다. 어릴 땐 함께 오페라니 뮤지컬이니, 음악회니 온갖 문화생활에 딸을 데리고 다녔고, 미국으로 대학을 가기 전에 온 가족을 데리고 세계 여행을 다닌 아버지라니. 지금 집도 아버지가 해준 집이라고 했다. 그렇게 빠진데 하나 없이 사랑스럽고 예쁘고 돈 많은 여자, 게다가 미국 유학에 악기 연주까지 하고 대학 교수까지 하는 똑똑하고 재능 있는 여자는 얼마나 일상이 충만하고 기분이 좋을까. 게다가 남편이 한국 최고 대학 공대 교수라니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할까. 사람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감정, 뿌듯한 흐뭇함을 누리고 사느냐에 복이 달린 것이라는 것을 오정순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오정순이 느끼는 것만큼 윤정아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남편, 김도준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 외엔 어떤 면에서도 그녀를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가 어디 가서 말도 못 하는 고통이었다. 윤정아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보살핌과 사랑을 특별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워진 사람은 그게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복이라는 곳을 모르고 자라는 법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몹시도 극진한 사랑으로 키웠다는 것을 결혼을 한 후에야 뼈저리게 느꼈다. 어쩌면 아버지가 너무 그녀를 과잉 사랑으로 키워서 그녀가 결혼생활에서 도무지 충분한 사랑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지금도 다달이 몇 천 만원씩 용돈을 보내주고, 사위에게도 세상 좋은 것은 몸에 좋은 보약부터,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수제 명품 양복까지 철철이 챙겨 주셨다.


하지만, 윤정아가 느끼기에 김도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순수한 감사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젤 상팔자는 윤지나 네 팔자인 것 같아. 너보다 더 상팔자는 내가 본 적이 없다."


김도준 자신이 이렇게 빨리 학계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데 장인의 덕을 본 점이 커서,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대체로 윤정아에게 다정한 남편 노릇을 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빈정거리는 말투는 항상 윤정아의 마음에 싸늘한 바람을 불러왔다. 너는 혼자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지. 넌 끝까지 네 아버지한테 기대서 평생 응석받이로 편하게 사는구나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지는, 지 혼자서 여기까지 온 줄 아나, 우리 집안 서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집안 출신 주제에 장인 잘 만나서 명문대 교수 입네, 젊은 나이에 정교수에 오른 천재네 온갖 명예와 부를 다 누리고 사는 주제에 하는 빈정거림이 윤정아의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것이 느낌일 뿐, 그가 그렇게까지 실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미친 듯이 솟아나는 속 생각을 뱉어낼 도리가 없었다. 화가 나는데도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세기의 커플이라 부르는 케이크 장식 인형처럼 잘 어울리는 부부가 서로에게 다정하게 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가 없는 주말 부부인 그들은 주말엔 청춘 남녀들처럼 연극이나 뮤지컬을 함께 보고 - 주로 남편이 예약을 미리 해 둔 - 고급 레스토랑에서 부드러운 필레미뇽이나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고, 때론 칵테일 바에까지 들렀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곤 했다. 한 번도 아기를 낳은 적이 없는 데다, 식단을 철저히 지키고 필라테스 개인 강습을 일주일 내내 받고, 각종 경락 마사지와 피부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윤정아는 길에서 보면 여느 여배우 못지않은 후광을 발산했고, 항상 고급 재질의 정장 차림의 도민준도 멋지게 어울려, 두 사람은 파르테논 최고의 커플이라는 말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윤정아에 대한 김도준의 남편으로서의 최선은 그게 다였다. 집에 들어와선, 윤정아가 아무리 야한 속옷을 입고 어떤 유혹을 해보아도 김도준은 다정하게 짧은 뽀뽀만 해주고 끝이었다. 내가 피로가 쌓여서 지금은 좀 힘들 것 같아. 오늘은 서재방에서 잘게. 다음날이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항상 그는 서재방에서 뭔가를 들여다보다가 거기서 잠들어야 할 이유를 넘치게 가지고 있었다. 급이 완성해야 하는 프로포잘이나 논문이 있었고, 미처 다 마치지 못한 강의 준비가 있었고, 미팅 시간에 맞춰 새벽에 나가야 할 이유들이 무궁무진했다. 결국은 서재방에서 자는 게 낫겠다고 잠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늘 같은 레퍼토리인데도, 매번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정성스럽게 변명하며 윤정아를 꼭 안아 달래거나, 이마에 꼭 입을 맞춰주는 행동을 하니 윤정아는 혼란 속에서 남편을 믿으려고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윤정아는 이제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윤정아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 함께 자고 싶은 마음조차도 없다는 것. 그 사실이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선명히 솟아올랐다. 그는 자신의 출세 줄을 잡고 있는 장인의 딸인 윤정아의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녀에게 아이가 없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결혼을 하고도 장애물 없이 하고 싶은 공부도 연주도 여행도 실컷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삶을 풍족하게 누렸고, 아름다운 몸을 지킬 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이 아름다운 몸을 감사하지 않고 탐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문제였다. 남편이 아이가 생길 빌미를 주지 않아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모욕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윤정아가 가장 부러운 여자는 김소은이었다. 윤정아가 보기에 김소은이 가진 것은 모든 것이 다 균형 잡혀 있었다. 윤정아의 삶이 가진 것과 못 가진 것 사이의 심한 불균형이라면, 김소은의 삶은 아름다운 황금비율 같았다. 특히 항상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수수한 차림의 김소은과 그런 엄마를 그대로 빼닮아 미인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세 딸들을 바라보는 그 남편 장재민의 다 가졌다는 듯 더 바랄 것 없다는 듯한 흡족한 표정이 부러웠다. 그건 김도준이 지어야 할 표정이었다. 처가 지원도, 미모도, 음악 연주 실력도 자신의 반만큼도 안 되는 여자의 남편은 저렇게 흡족해한다는 사실이 윤정아가 자신의 삶이 겉만 번드르르하고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그녀는 김소은을 좇았다. 그녀가 어떻게 삶이라는 직물을 조화롭게 엮어가고 있는지, 무엇보다 그런 외모로 남자를 어떻게 끌어당겨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지, 어떻게 스스로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서 가족의 화합도 도모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이 보고 싶어서 김소은을 매일 찾아가다시피 했다.


김소은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김소은은 자신이 지쳐있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싫었다. 정신이 드는 순간부터 밀려오기 시작하는 오늘 해야 하는 일들에 압사 당해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을 해보면, 항상 친정어머니가 가장 생각났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모든 좋은 교육은 다 시켜 주셨었다. 어릴 때부터 미국인 선교사를 수소문해서 원어민과 교류 속에서 영어를 배우게 해 주셨고, 주말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가르친다는 클라리넷 교수의 집을 비행기 타고 찾아가 레슨을 받게 해 주셨다. 방학 때마다 중국이나 일본에 가서 어학연수를 했고, 상류층의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차밍 스쿨을 끊어 주셔서, 도도하면서도 우아하게 걷는 법, 옷차림을 고급스럽게 연출하는 법 등을 배웠다. 방학이 되면 책 50권을 읽어야 친구와 놀러 나갈 기회를 주셨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연예인들이 다닌다는 잘하는 강남 병원을 수소문해서 얼굴 전체를 갈아엎는 성형도 시켜 주셨다.


문제는 그렇게 노력한 결과들이 그녀 스스로 느끼기에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 누구도 그녀가 성형으로 갈아엎은 얼굴이라는 걸 눈치도 채지 못했으며, 모든 면에서 그녀 자신이 자신의 실력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글에 백 프로 올인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살아있는 어머니의 닦달 때문에 그녀는 끊임없이 모든 면에서 매일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돈을 처발라온 클라리넷도 계속해야 했고, 책도 계속 읽어야 했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부를 하고 자야 직성이 풀렸다. 어머니에게 배운 똑같은 열심으로 아이들의 교육 스케줄을 짜고, 어머니의 가족을 향한 희생과 정성을 생각하며 남편도 뒷바라지해왔다. 남편 장재민은 가정에 충실하고 김소은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있다. 하지만 김소은이 얼마나 물아래에서 발을 버둥거려 이 가정이 우아하게 자랑스럽게 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김소은은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발버둥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김소은이 하루라도 힘을 내지 못하면 모든 것은 쉽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김소은은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고, 아침이면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종종 클로이 킴을 생각했다. 그녀는 얼마나 우아한가. 얼마나 힘을 빼고 자유롭게 사는가. 남편이 미국에서 사업을 한 다곤 하지만, 한 번도 본 일도, 그녀가 딱히 남편에 대해 말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나이에 아이가 없는 것이 그렇게 홀가분해 보일 수가 없다. 자신은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어도 한국어 말곤 완벽하게 자신 있는 언어가 없어 자격지심이 생길 지경인데, 클로이 킴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5개 국어를 말하며 살았던 사람처럼,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한국어, 그리고 중국어까지 하는 것을 들었다. 이 타운의 모든 외국인 입주자와 그녀는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김소은은 그런 클로이 킴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리만족 같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을 잘하고, 그렇게 많이 알고, 사유가 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훨훨 날아다니는 듯 남편이고 아이고 거추장스러운 것 하나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글쓰기에만 열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김소은은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박사 연구를 하며 모았던 고전 자료의 내용을 묶어 책 한 권을 출간한 뒤로, 다시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출간 작가에 박사라고 치켜세우지만, 그녀는 첫 출간을 하고 5년 동안 아무런 글을 쓸 수 없는 상태로 몹시 부담에 짓눌려 있었다. 이젠 누가 출간 작가니 박사니 하고 부르는 것 자체가 질식될 것 같은 느낌을 몰고 와, 듣기도 싫었다. 그런 만큼 잡념에 숨 막히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김소은은 종종 클로이 킴을 찾아갔다. 모든 것이 고급스럽고 우아한 그녀의 완벽한 공간에선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 공간의 완벽한 일부가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어떤 고급 차밍스쿨도 필요 없고, 그 어떤 상류층 매너 교육도 필요 없이, 클로이 킴과 같이 있으면, 저절로 그녀의 우아한 언어들, 몸짓들이 절로 스며들어 자신도 우아한 자태가 몸에 밸 것만 같았다.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클로이 킴은 그녀에게 정보를 얻으려고 수작을 부리지도, 친해지고 싶어 영혼 없는 아부를 떨지도 않았다. 김소은은 클로이 킴과 함께 있을 때 자유를 느꼈다.


수많은 부인들을 상대하고 이런 일에 도가 튼 클로이 킴의 눈에는 벌써 어찌 돌아가는 판인지 훤히 보이는 듯했다. 거기에 더해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속속들이 찾아 보여주는 제이미가 있어 항상 재미는 곱절이 되었다. 제이미가 오면 세 여자의 삶을 신나게 흔들어 줄 방법을 확실히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미국까지 갔다가 연변을 지나, 칠갑산에도 들리고, 이런저런 분야의 친구들까지 좀 만나보고 온다는 제이미의 대답에 클로이는 무척 만족했다. 역시 꼼꼼하게 일하는 녀석이다. 그녀는 내일 제이미가 도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지금 당장 저 문을 열고 들어와 준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이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신나서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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