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밑동을 드러냅니다

[시집] 나무

by 하트온

무성히 자란 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고

여기 사람 다닐 길을 내야 한다길래

나는 너의 일부를 잘라내기 전에

가만히 너의 몸을 살펴보았다.


네가 왜 이 길을 막아놓은 것인지

네가 지금까지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날카로운 창 가지를 꼿꼿이 세우고

네 온몸을 가린 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너는 너를 가리기 위해

너무 많은 힘을 쏟아붓다가

사람이 다닐 길도 막아 버린 것이었다


이제 마음을 열자고

네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고

어르고 달래며

바닥까지 무성한 가지들을 끊어내고 쳐내고

마침내 너의 참모습을 드러냈다


오솔길이 열리고

환한 빛이 힘차게 진군하여

너의 아름다운 밑동을 비추자

가장 먼저 아이들이 달려와

너의 몸을 만진다


처음 느끼는 맑은 바람에

너무 가까운 사람 소리에

아직은 예민한 몸을 떤다


수십 년의 시간 후에

이제야 생긴 모습 그대로

길을 열고

인적을 허락하는 삶


우리 같이 해 보자

나는 너를 지켜주고

너는 나를 지켜주면서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jple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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