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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May 09. 2023

낙심이 비 내리는 검은 밤에

[일기] 2023년 5월 9일

요즘은 잠을 잘 자기가 힘들고, 그래서 그런지 집중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집을 구상하다가도, 생각들이 마음에 의미 있는 구름 덩어리로 응집되지 못하니, 시원하게 글이 뿜어져 나오는 폭우 현상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합니다. 자꾸 구상이 흩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사실 힘든 일이 좀 있습니다. 가족 누군가가 아프고 몸이 힘들고 병원에 입원하고 하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제 나이가 그런 나이가 된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 모두 인생을 살만큼 살아서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글 폭우 대신, 낙심의 폭우가 자꾸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이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인생의 무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너무 상하지 않으려고, 그냥 그러려니 주어지는 상황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려고 마음 밭을 넓히고 고르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 직업 관련 목적으로 정리해 두고 있는 교육 칼럼 번역글과, 영어 회화 레슨을 정리하는 글만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 요즘인데요, 제 삶이 낙심의 강을 건너가는 동안 브런치, 즉 글쓰기와 너무 멀어질까 봐, 매일 브런치에 들어와 뭐라도 끄적여 발행하고 싶은 조바심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뇌리 한편에 똬리를 틀기 시작하네요. 소설이 마구 혼자 써 내려가는 시간들이 그립습니다. 그때는 내가 과연 소설을 쓸 자질이 있을까 자신이 없고 어떻게 써도 모자라 보이는 게 장애물이었는데, 지금 다른 장애물들이 뾰족뾰족 험준한 산길처럼 길을 막아서니, 왜 그동안 평탄한 길에서 스스로 나를 막아섰나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놈의 완벽주의가 정말 오랫동안 저를 옭아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모든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모여,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루는 세상과 예술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통찰력 부족 때문이었을까요.


지금 뒤늦은 깨달음이나, 성찰 또한 그 아름다운 세상의 일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고 다 똑바르기만 한 것이 세상의 본모습이 아니니까요.


저는 그냥 힘을 빼고 흘러가기로 합니다.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이 잘 써지지 않으니, 한동안 생각과 경험을 모으고 재충전할 기회로 여기려 합니다. 모두가 완벽하게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어설픈 삶들을 그냥 그대로 끌어안고, 오래 걸어 해지고 터진 짚신 같은 그 삶 그대로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슬픈 소식은 물러가고 좋은 소식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멈추지 않을 거예요. 호롱불 밝혀 놓고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요. 짚신을 만져본 적도 없고, 호롱불을 켜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 표현들을 마구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은, 제 마음이 그런 심정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짚신을 신고, 호롱불을 켜던 그 시절 그 수준의 삶까지 제 마음이 낮게 쫙 엎드려 흘러가 닿은 느낌입니다.


오늘도 불면의 밤일지 모르는 검은 밤 하나를 마주합니다. 싸우고 발버둥 치기보다 이 이상한 어둠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감사와 기도를 마음에 품고 흘러내려 보려 합니다. 제 삶의 일부인 모든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나를 둘러싸는 어두운 장막 곳곳에 새겨 놓겠습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jple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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