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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May 17. 2023

오늘 맞은 손님을 사랑합니다

[일기] 2023년 5월 16일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부부가 화단을 참 예쁘게 가꿉니다. 매일 아침 지나가다 넋을 잃고 쳐다보게 만들 정도입니다. 하루 종일 이 꽃밭에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오늘은 어떤 꽃이 피었을까, 그 수를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아름다운 꽃들이 매일 순서를 놓고 다투듯 풍성하게 피어나 엄청난 생명의 기운을 발산하며, 벌과 나비와 새떼들까지 어울려 들게 합니다. 종종 저도 모르게 다가가 대화가의 작품 같고, 힐링 영화 한 장면 같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잔뜩 취해 바라보는 것을 눈치채셨나 봅니다. 오늘은 안주인분이 나와서 이야기를 건네십니다. 


안주인의 이름은 '아이린', 평화라는 뜻의 예쁜 이름을 가진 이 분은 그리스계 미국인이라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시집을 몇 권 출간하신 시인이시네요. 글쓰기에 대한 나의 애정도 고백하고 나니, 묘한 동지애 같은 것이 아지랑이 피어오릅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의 눈빛은 참 맑습니다. 저의 엄마보다 많은 나이시라는데, 그 나이가 느껴지지 않고 몹시 평등한 우정이 생성될 것만 같은 기운이 저와 아이린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됩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 앞에서 제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요즘 저의 솔직한 생각, 고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저의 솔직함이 그녀의 빗장을 해제시켰는지, 그녀도 글쓰기 고민, 삶의 고민을 진솔하게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참지 못하고 서로를 품에 꼭 안고 등을 토닥여 줍니다. 잘 될 거야. 힘든 일은 다 지나갈 거고, 우리는 마침내 힘차게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우리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좋은 글동무가 되자. 말없는 메시지를 서로의 마음에 전합니다. 


친구가 된 아이린이 외우고 있는 시를 읊어줍니다. 


The Guest House 게스트 하우스


This being human is a guest house. 인생은 게스트 하우스

Every morning a new arrival. 매일 아침 새로 도착하는 손님.


A joy, a depression, a meanness, 때론 즐거움으로, 때론 우울하고 불공평한 일로 

some momentary awareness comes 때론 찰나의 깨달음으로 

as an unexpected visitor.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Welcome and entertain them all! 그 모두를 환영하고 환대하라!

Even if they’re a crowd of sorrows, 슬픔이 떼거리로 몰려올 때도

who violently sweep your house 몰려와 너의 집을 휩쓸고 난장을 쳐도

empty of its furniture, 집안 살림을 다 풍비박산 거덜 내도  

still, treat each guest honorably. 여전히 손님 한 분 한 분을 귀하게 대접하라

He may be clearing you out 슬픔은 너를 씻어 예비하시는 중일지 몰라

for some new delight. 새로운 기쁨을 맞이할 수 있도록.


The dark thought, the shame, the malice, 거친 생각, 수치심, 악의가 찾아와도 

meet them at the door laughing, 웃으며 그분들을 맞으라

and invite them in. 그리고 초대하고 맞아들이라. 


Be grateful for whoever comes, 누가 오시든 감사하라 

because each has been sent 한 분 한 분이 다녀가신 것은 

as a guide from beyond. 나를 인도하시는 분의 은총이시니. 


시를 이루는 단어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어떤 독한 약기운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갑니다. 약기운을 입은 몸의 세포들마다 일제히 일어나 충만한 기쁨과 위로와 설렘을 느끼며 간질거리고 반짝거립니다. 시가 사람에게 무엇인지 그 효과를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오늘 나를 방문하신 손님은 '시'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이렇게 기록하며 환대해 드립니다. 저는 오늘 찾아오신 저의 손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점점 사랑하는 손님을 늘려가 보겠습니다. 저에게 어떤 짓을 해도 존대해 드리겠습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castleguard)

시 출처: by Jalaluddin Rumi

<Rumi: Selected Poems>, trans Coleman Barks with John Moynce, A. J. Arberry, Reynold Nicholson (Penguin Books,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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