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루이의 나무
루이는 하얀 프리지어 꽃다발을 손에 든 채로,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떨리는 숨결 사이로 이슬을 머금은 깨끗한 향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풋풋한 향은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순수하면서도 아릿한 데가 있다.
꿈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그녀인데.
루이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그의 무의식이 데려가는 곳은 기억에 없는 생소한 곳이었다. 낯선 도시 낯선 거리에서 결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녀를 찾아 헤매던 수많은 밤들. 허전함과 절망과 슬픔 같은 묵직한 감정의 응어리가 목에 걸려 삼켜지지 않던 아침들. 어렴풋한 그림자라도 잡아보려 했던 그 공허한 나날들.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던 그 애틋하고 간절했던 감정의 물살이 그의 삶에 자꾸만 한국을 불러왔고, 마침내 그는 여기 서울까지 흘러와 있다.
나무. 그녀의 이름은 나무다. 오래전에 잠시 스쳤던 인연이었을 뿐인데, 점점 희미해져 가던 그녀에 대한 기억과 반대로, 루이의 심장에 각인된 그 눈망울이 뿜어내던 형형한 빛은 점점 더 되살아나 그의 가슴을 마구 휘저어 들끓게 했다.
마침내 루이는 나무와 다시 마주하는 거센 기적 앞에 서 있다. 그녀를 그날 밤 우연히 본 이후부터, 그의 마음에 간절한 결심 하나가 심겼다.
이젠 그렇게 그녀를 놓치고 마는 꿈을 그만 꾸겠다고. 다시는 나의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고.
루이가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천천히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시계는 약속 시간 11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5년의 세월, 기다림의 모래시계가 다 흘러내렸다. 레몬을 띄운 찬 물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루이는 창 밖을 내다본다.
그 순간, 그녀가 골목길 입구로 들어섰다.
루이는 어린 시절 떡갈나무 위에 숨어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발끝에 힘을 주고 숨을 죽인 채 그녀를 기다린다. 봄빛을 닮은 프리지어 향의 설레고 벅찬 감정이 가슴 전체에 환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온다.
그녀를 알지만 그녀를 모른다. 그녀는 루이를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어떻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