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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4. 2021

내 세계를 넓혀주는 어학 공부

1-6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 외국어 공부가 줄 수 있는 행복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어학공부에 있어서 좋은 교재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자체만 교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그 외국어의 구조나 기본 단어, 표현들을 배워가는 주 교재와 함께 공부할 때의 보조교재로써, 혹은 네이티브의 자연스러운 음성을 듣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네이티브 음성을 듣기 위한 영상 보조 교재는 더 뛰어나거나 더 좋은 교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교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내가 재미있고 흥미롭게 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가족 드라마 일수도 있고, 시트콤일 수도 있고, 법정 드라마 일수도 있고, 블록버스터 영화나 시리즈 영화 일 수도 있습니다. 목표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영상 매체라면 뭐든지 좋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즐기면서 보고, 또 반복해서 보고 싶을 만큼 작품 자체로 좋아하는 것이면 더욱 좋습니다. 이 부분은 그저 명작이라거나 사람들이 이 영상을 이용해 외국어 공부를 많이 했다더라 하는 정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영상이든 네이티브 음성 환경에 노출시켜 줄 수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심지어 그 영상이 고어를 쓰거나 사투리를 쓰거나 할지라도 목표 언어의 그러한 고어를 말하는 느낌, 사투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상들은 목표 외국어 시청자가 즐겁게 보는 것을 전제로 제작된 영상물이기 때문에 죽은 언어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목표 외국어의 네이티브들이 보고 즐기는 영상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는 더빙이 된 작품이 아니고 목표 언어 문화권 속에서 제작된 작품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그 속에서 그들의 취향이나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학 자체를 위해 만들어지고 정제된 대화문과 지문이 등장하는 주 교재는 이러한 생생한 살아있는 외국어의 느낌이 많이 담겨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교재인 어학교재만으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목표 언어로 만들어진 매체, 영상이나 책을 소비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외국어를 언어로서 공부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외국어로 대화하고 글을 쓰는 생산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했듯이 언어 학습은 재료를 이용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재료 자체를 내가 잘 모르면 제대로 생산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외국어로 된 영상이나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방향성이 듣기->말하기, 읽기->쓰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어로 그 문화권의 매체를 즐길 수 있는 수준에 오르게 된다면 내가 접하는 세계 자체가 굉장히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국어 화자는 지구 인구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아이디어들, 사상들, 책들, 혹은 영상들이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생산되고 있고 그 중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어 들어오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하게 된다는 것은 이러한 세계에 있는 한국어로 되지 않은 무수한 매체를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한 번역을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정보의 양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문화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줌 정도의 마니아밖에 없는 분야에서 더 소통할 수 있는 훨씬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지구상에 내가 그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더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화권, 국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하는 교류가 주는 두근거림과 설렘,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했듯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익히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이 보는 시각을 그 입장에서 더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야가 생기기도 하고 문화의 차이와 보편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모국어와의 차이나 문화권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가지는 큰 선물이고,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어 하나를 네이티브처럼 마스터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네이티브에 더 가까워 질 수도 있고, 충분히 서로 의사소통을 하거나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거나 그 외국어로 만들어진 영화나 영상 매체, 책 등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모국어인 한국어도 잘 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마스터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뉴스 아나운서와 같은 발음을 가져야 할까요? 한국어로 된 의학 용어, 법률 용어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문 용어를 다 알아야 그 언어를 더 잘하는 것일까요? 소설 창작과 같은 문학적인 작품을 창작해야할까요? 같은 네이티브 한국어 발화자 한국인이라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능숙한 정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이티브처럼 외국어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내 감정과 마음, 생각을 그 외국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을 하며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고, 영화나 영상매체, 책 등을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소통의 도구인 언어의 역할을 충분히 익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한국어의 구개음화니 안긴문장이니하는 어문학적 지식과 분석을 알아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어문학적 지식조차 외국어 공부에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이 감각을 저 문화권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음성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 음성이 어떻게 글씨로 표현되고 쓰이는지 익히는 것입니다. 네이티브와 똑같이 되는 목표는 달성하기 한없이 어려울 수 있어도 외국어로 된 매체를 부담 없이 즐기고, 의사소통하는데 까지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세계를 크게 열어줍니다. 이것은 단순히 스펙으로서 좋은 영어점수를 한줄 적어내거나 목표 외국어와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는 사실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책상 앞 공부가 아닌 외국어 학습


대화가 담긴 어떤 영상 매체도 외국어 공부에 부교재로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즐기면서 여러 번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미국 시트콤 프렌즈로 영어공부를 했다고 해서 내가 꼭 프렌즈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프렌즈의 개그나 시트콤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학 공부는 꼭 “공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하면서 그것을 외국어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외국어가 간접적으로 크게 늘 수 있습니다. 그렇게 “즐기면서 하는” 어학 공부, “공부가 아닌” 어학 공부가 오히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어떤 작품을 봤는데 그 작품의 한국어 번역 수입이 중간에 멈췄는데 너무나 뒷이야기가 궁금하거나 할 때 그 궁금한 뒷이야기를 보고 알기 위해서 원서나 원어로 된 작품을 찾아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목표는 그 뒷이야기를 아는 것에 더 초점이 있었지만 물론 원어로 접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외국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어학 공부에 있어서 이러한 동기 부여가 있으면 좋습니다. 다만 막연하게 이 외국어를 잘 하고 싶다라든가, 이 외국어를 잘해야 인정받는다던가, 그래야 스펙이 쌓인다든가 같은 식의 목표가 아니라 정말로 그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내가 더 즐거울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제가 이야기했던 번역되거나 수입되지 않은 이야기의 뒷부분을 접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발매되지 않은 게임을 해보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자막이 나오지 않은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외국 노래의 의미도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저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많이 좋아하는데 그 후속편인 《20년 후》는 예전에 영어 중역만 되었고 마지막편인 《브라즐론 자작》은 번역 되어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직 실천은 못했지만 프랑스어가 아니라면 적어도 번역된 영어나 일본어로 이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강하게 있습니다. 그렇게 “언어를 잘하는 것”자체를 목표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이용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 언어 공부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도움이 됩니다. 


그러한 목표 설정은 단순히 내가 토익 등의 어학시험에서 몇 점을 받겠다는 목표 설정과 매우 다릅니다. 실제로 그 언어를 내가 사용할 환경과 동기를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언어는 그렇게 그 자체가 마스터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입니다. 수단으로서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서는 내가 이 언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보르헤스나 알렉상드르 뒤마, 에리히 캐스트너 같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될 수도 있고, 우리나라에 발매가 되지 않은 게임을 해보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자막이 없는 드라마나 영화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그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거주를 하거나, 취직을 하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 외국어를 하게 되어서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를 알고 또 실제로 외국어 학습 과정 속에서 내 바람을 조금씩 실천해 나가는 것은 외국어를 그냥 이력서의 성적 스펙 한 줄이 아니라 내 재산으로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언어로서 외국어를 하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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