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 어휘가 사용되는 맥락의 중요성
영어를 공부한 한국인이라면 많은 사람이 “단어장”을 외워 본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고등학교에서 시키기도 했고, 스스로 따로 공부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러한 “단어 시험”은 한글 뜻을 나열하고 그것을 영어 단어로 바꿔 적거나 영어 단어를 나열하고 그것을 한글 단어로 바꿔 적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러한 단어시험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문자 ‘모양’과 ‘뜻’을 연결시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어에서 더욱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바로 ‘소리’입니다.
우리나라 언어 교육이나 시험의 문제점은 바로 이 ‘소리’를 몰라도 고득점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단지 철자와 뜻을 연결해서 외우는 단어시험을 보면서 단어를 공부하면, 영어가 소리로 형성된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종이에 쓰인, 까만 건 문자고 하얀 것은 종이인데 저렇게 쓰인 까만 모양은 이런 뜻이더라, 하는 식으로 단어를 익히게 됩니다.
차라리 초등학교 1학년 때 누구나 겪는 “받아쓰기”처럼 제대로 된 영어 단어를 소리로 듣고, 그 소리를 문자로 적고 뜻도 아는 경우가 그나마 나은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단어장 암기”는 문제가 있는데, 외국어의 단어는 일부 명사를 제외하고 동사나 관사 등 많은 경우에 한글 단어와 1:1의 치환이 되지 않습니다. 아예 문장 구조와 문장을 만들어 내는 틀, 세상을 구조화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런 식의 단편 단어 뜻 암기는 그런 부분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뜻만 외운 단어는 맥락에 맞지 않는 한국적인 표현, 콩글리시 같은 표현을 생산해내게 되는 주범이 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영어적인 사고를 해서 문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장을 먼저 만들고 그것을 알고 있는, 뜻만 외웠던 영어 단어로 치환하게 되게 때문입니다. 정말 언어로서 그 나라 말의 단어를 익힌다면, 그 단어는 언제나 맥락에서 익혀야 합니다. 단어장의 예문을 통 암기 하는 것이 단어를 낱개별로 뜻만 외우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합니다. 단어장을 “책”으로 보게 되면 결국 그 예문이나 활자를 눈으로 보고 어떻게 발음되는지 그냥 내 안에서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네이티브의 발음을 많이 듣고 그 발음이 자연스럽게 몸 안에 체득 되는 것과 다른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음 자체가 아닙니다. “소리”로서의 말은 발음 뿐 아니라 굉장히 많은 정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발화자의 감정, 뉘앙스, 말하는 의도, 발화자의 성격, 발화자의 성별, 언어권 등 정말로 다양한 정보가 소리 언어 안에는 같이 묻어 있습니다. 이러한 더욱 “살아있는” 언어 정보는 설사 어학 테이프로 영어 예문을 듣고 통 암기를 한다고 해도 다 경험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학 테이프는 실제 발화와는 다르게 기용된 성우가 최대한 클리어하고 감정 등이 덜 실린 목소리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죽은 언어’가 됩니다. 이러한 ‘죽은 언어’들로는 정말로 살아있는 언어를 익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