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며, 두근두근한 모험과 작은 기쁨들
어떤 한 외국어를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다는 것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다는 부분이 자신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론적인 효과가 아닐지라도 외국어를 공부해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렵고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어떤 사상을 익히는 것이나 전문 분야에서만 통하는 전문 지식을 익히는 것과 달리 일상적인 것을 함께 익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어 학습은 그래서 어떠한 의미에서는 실용 분야입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학습이 통역사, 번역가 등의 전문 분야로까지 발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따라서 공부한 것을 일상에서든 어떤 직업을 통해서든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높다는 점에서 외국어 공부는 공부를 한 보람이나, 활용하며 느끼는 뿌듯함 같은 즉각적인 보상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내가 직업이나 전문 분야에서 그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내 분야의 지식들이나 정보들을 학습한 외국어로도 찾아보며 활용할 수도 있고, 단순히 여가 시간에 번역되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그 외국어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외국어 학습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이나 삶에 있어서의 활용도는 커질 수 있습니다.
‘언어’로서 외국어를 학습해나간다는 것은 단순히 책상 앞에서 어떤 분야의 지식을 더 넓히는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틀을 익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내가 진리라고 믿었던 나의 믿음도 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태어나는 것은 다양성의 존중입니다. 어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표현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것은 그 렌즈에 주목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표현들에 담긴 사회적이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에 대한 환기가 되기도 합니다. 즉 내가 속한 문화 뿐 아니라, 학습하는 언어의 문화에 더 깊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언어 자체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언어는 사람의 행동 양식이나 문화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시에 타 문화권의 이해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자신이 놓인 문화권의 행동들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학 학습이란 다른 렌즈를 배움으로서, 자신의 렌즈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학 학습 안에는 다만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측면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사고와 깊이를 경험하는 측면도 함께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언어 자체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학 학습은 그 이해의 노력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말이 상처를 주는지, 오해를 일으키는지, 공격이 되는지도 더불어 알게 되기도 하고 그 뒤에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알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사고를 하고, 생각을 전개해나가기 때문에 언어는 나 자신과 굉장히 밀접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외국어를 익힌 다는 것은 내가 사고를 전개하고 세상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틀이 하나 더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경험을 했을 때 한국어로는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을 때 다른 외국어에는 그 단어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어떤 것을 경험하고 감각하는 나의 창구 역시도 넓어지게 됩니다.
외국어 학습은 삶에 직접적인 큰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친숙하게 보았던 것이 낯설게 보임과 동시에 낯설었던 무언가가 친숙해지기도 합니다. 즉 내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 내가 세상에 나를 놓는 위치가 외국어 학습에 의해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세계관이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문화권을 넘어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소통하고 친구가 되는 경험은 작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저 사람이 사실은 나와 유사한 점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서 교류할 수 있다는 경험을 직접적으로 해나가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문화권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강요받는 위치를 넘어서서 서로의 다름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서 서로를 좀 더 온전히 받아들이는 노력의 과정이자 경험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도 한 문화권의 기대 받는 행동양식으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놓인 문화권에 따라, 더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적어도 내 행동양식만이 더 옳다는 사고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언어 존재 이유 자체가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어떤 것을 표현하고 상대 안의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을 알아듣게 되는 과정, 그 자체가 언어 학습이며 어학입니다. 이는 20000단어 외우기나 고득점의 어학점수 같은 단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모국어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다른 정보원이 있습니다. 다른 형태의 생활 방식과 삶을 접할 기회도 넓어집니다. 내 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기 시작하고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형태를 그려보게 되기도 합니다. 언어를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타 문화권에 대한 익숙함과 이해도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익숙함은 친근함을 불러일으킵니다. 길거리에서 아는 외국어가 나오면 반가워지기도 합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 내가 아는 것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번역과 실제로 그 언어를 그 언어의 감각으로 듣거나 이해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각자 모든 고유의 언어에는 그 맛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노스르름하고, 누리끼리하고, 노릇노릇하다’를 들었을 때 한국어 모국어 화자라면 이러한 어감의 차이를 즉각적으로,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단순히 yellowish 등으로 번역한다면 이 한국어가 가진 고유한 어감이 살지 않습니다. 이러한 어감의 차이는 다른 나라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막이나 번역이 아니라 원어로 책을 읽거나 매체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그 매체의 고유의 느낌을 좀 더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는 창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 자체와 원래의 언어를 통해 만나가는 일도 기분 좋고 즐거운 모험이 됩니다.
그래서 어학은 두근두근하고, 행복하고,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어학을 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선물이 그 길목에 참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어를 통해 만났던 그 선물과 경험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나를 형성하는 나의 자산이 됩니다. 즉 그 어학 공부의 그 자체의 경험이 내 안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는 어떤 언어를 좀 더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 이후에 누리는 보상만큼이나 가치가 있기도 합니다.
‘언어’로서 외국어 공부는 단순한 책상 앞의 공부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새로운 면과 만나 가는 과정,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과정, 다른 문화권에 닿아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