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의 고급단계, 놀면서 하는 외국어 공부
저는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뉴스로 일본어 공부를 더 하고, 나중에 따로 일본어 공부를 하지 않고 가끔 일본어로 여러 가지를 즐기고 있을 때 즈음부터 JLPT N1급 만점을 받았습니다. 저는 세 번 연속 N1급 만점은 어느 정도 운도 따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으로 공부를 한다면 반드시 만점을 받을 수 있다던가 하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JLPT N1급 시험 자체가 최고급 수준의 높은 일본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도 아니기 때문에 만점을 받았다고 해도 제 일본어가 못 미치는 부분이 있고 저도 계속 새로 익히는 부분도 있고 오래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잊어버린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가 JLPT N1급 만점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돌아보면 제가 “공부”로 일본어 공부는 하고 있지 않았지만 일본어를 접하는 비중은 큰 편인 때였는데, 이 점이 시사 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어떤 단계부터는 언어 시험공부나 언어 교재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언어 실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자신이 “재미있고 좋아서”하는 일인 만큼 의식적인 노력이 덜 들어가는 행위인 점입니다. 마치 우리가 한국어를 더 잘 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지 않아도 항상 접할 기회가 더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최초로 JLPT N1급 만점을 받았을 때는 제가 더 이상 ‘공부’로 일본어를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발매되지 않은 책이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일본어 원서 만화책을 사서 본다던지, 출시되지 않거나 번역되었어도 원어로 해보고 싶은 게임을 해본다던지 하면서 일본어를 접하던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JLPT N1시험 즈음해서는 “명탐정 코난”이라는 이제 100권이 넘어가는 만화를, 당시 신간을 한권씩 사서 읽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해서 당시 600화 가까이 되었던 작품을 500화정도 거꾸로 돌아가며 감상하던 때였습니다. 명탐정 코난은 추리 탐정 만화로 많은 직업군이 나오고 글이나 대사가 많으며, 그래서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일부러 일본의 문화를 소개하는 느낌의 단편들을 넣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명탐정 코난을 통해 일본어를 접하는 양과 시간이 꽤 많았기 때문에, 당시 다른 공부를 하지는 않던 저에게 그 첫 번째 만점은 ‘명탐정 코난’덕분 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만점을 받았을 때는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라는 37권이 넘어가는 가벼운 소설을 읽고 있던 때였습니다. 시험대비로 읽은 것이 아니라, 재미로 읽던 중에 우연히 시험 날짜가 겹친 것이었지만 일본어 텍스트를 접하는 시간이 길었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만점을 받은 때도 역시 27권이 넘어가고 아직 발간중인 “책벌레의 하극상”이라는 작품을 일본어로 출간된 단행본과 웹소설로 한참 읽고 난 후였습니다. 즉 이런 경험들은 거꾸로 말하면, 언어가 어떤 단계에 오르면 따로 하는 시험공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 언어로 즐기는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그 언어를 활용하고 언어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용은 더 이상 시간을 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취미생활이나 휴식, 여가 시간 활용 같은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언어 공부의 가장 큰 장점은 ‘언어’자체가 도구이자 수단인 만큼, 얼마든지 즐기면서 익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서 집에 누워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편이 언어능력이 향상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언어가 어떤 개념의 머리의 이해가 아니라, 감각의 연결과 신체적인 느낌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과 연관되기도 합니다. 언어는 지식이 아니라, 내 온몸을 활용하는 일종의 감각 도구도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는 그 연결이 좀 더 긴밀한 스토리를 접하거나 실제 상황 속에서 더 갈고 닦기 쉽습니다. 사실 어학교재야 말로 언어로 들어가는 입구를 마련해주는 보조도구이고 정말 언어가 살아 숨 쉬는 영역은 실제로 언어가 활용되는 일상생활, 직장 공간, 매체 등인 것입니다. 이러한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외국어는 수능을 위한 ‘공부’로서의 영어와 결을 달리합니다.
제가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명탐정 코난”이나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나 “책벌래의 하극상”같은 작품을 보면 JLPT N1급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점을 받기 위해 이들 작품을 접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매체를 찾아서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은 어떤 단계 이후에 그 외국어의 공부나 활용이 어떤 형태를 띨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누워서 소설을 읽고 있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을 때 그것을 “공부하고 있다”고 혹은 “커리어를 쌓고 있다”고 얘기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단계를 넘어간 외국어는 그렇게 자신에게 여가가 되며, 즐거움이 되며, 내가 활용하는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로 갈 수 있는 부분도 외국어 공부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외국어는 어떤 특정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한 문화권에서 베이스로 활용되는 일상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일에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여가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외국어 학습이 가진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갈고 닦은 외국어 실력은 자기 문화권 안에서는 자신의 무기이자 일의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통역이나 번역, 해외 취업 등의 기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저처럼 일상생활의 여가를 더 풍요롭고 다양하게 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외국어 학습은 내가 그 외국어를 통해서 친구를 사귀고, 여가를 즐기는 등에까지 활용될 수 있을 때 큰 힘을 발휘합니다. 무엇보다도 학습을 유지하고자 하는 ‘힘’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체의 경험이 그 외국어를 학습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몇 개 국어를 해요.”하는 자랑이나 스펙이 아니라, 실제로 그 외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감동을 느끼거나 친구와 마음을 나누거나 하는 경험은 이력서의 한 줄과는 다른 삶 자체를 풍성하게 해주는 가치를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