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우리는 손을 잡거나 다정하게 밖에서 키스를 하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는 그 어떤 연인 같은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흔하디 흔한 커플 투샷조차도 한번도 찍지 않았지만 그가 짠 데이트 코스를 돌면서 같이 걸어다니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들은 충분히 즐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나는 비슷한 것들을 좋아하고 같이 나누는 대화도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친구로서도 그랬다. 그래서 그냥 함께 지내는 시간이, 대화가 함께 방문하는 곳들이 즐거웠다. 누군가와 있으면서 그렇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친밀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그렇게 이미 친밀한 사람이었다.
그가 예전에 내가 머무는 숙소에 와서 며칠 머문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연애 같은 이야기를 서로 하던 사이가 아니었고 담백한 친구 사이었다. 그리고 한 공간에서 잠을 자면서도 그저 담백하게 며칠을 같이 보냈었다. 그렇다고 서로가 불편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때도 함께 걷고, 대화하고, 토론했다. 그와 나 사이에 이미 형성되어있는 그러한 편안함은 이 당시에도 함께 있었다. 누군가와 너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 내 안에서는 피곤함과 혼자 있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며 상대를 밀어내기도 하는데, 그와 있으면서는 신기하게도 그런 기분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만큼 그냥 그 주변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우리는 서로 편안하게 나체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샤워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 안의 긴장감조차도 없었다. 상대가 있는 것 자체에 대한 편안함이 그와의 관계 속에서는 늘 함께 했다. 그러한 편안함 자체가 섹스가 서로 제대로 맞지 않아서 쌓이던 긴장이나 불만을 완화시키고 있었다. 어차피 섹스는 나에게는 연애의 작은 요소였다. 그가 나에게 적극성을 요구하는 자체를 제외한다면 그와 맞닿는 살 자체는 어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서로에 관해 느끼는 편안함이 서로의 스킨쉽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백허그를 하며 함께 티비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은 편안하고 즐거웠으며 함께 같이 보는 것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의 충만함은 내 안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너무나도 섹스에 있어서 삽입 시도를 하고 싶다는 어필을 하는 것을 느끼고 나는 그가 강제로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가능성이었다. 그는 강제로 시도를 하려고 했으나 나의 거부반응은 그가 성적으로 흥분하는걸 멈추게 했다. 그는 그만큼 양측이 좋아하고 동의하는 섹스만 즐길 수 있는 것 같았다. 시도를 안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잠시 안에 들어왔던 묵직함은 몸안에 남아서 다음날까지 내 안에 지속되었다. 그렇게 나는 몸도 마음도 그와 함께 하기 위해 맞춰가고 있었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나는 서로가 좀더 편안해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나의 초점은 오로지 그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지 자체에 있었다. 그가 내 남자친구로서 괜찮은지 어떤지에 대한 판단 자체는 나에게 이미 불필요했다. 그 판단은 이미 비행기를 타기로 한 순간부터 끝나 있었다. 나는 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러던 중에 그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직장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고 하며 그 여자애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아가서 다음날 우리는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식당에서 그는 "나는 같은 문화권의 사람과 사귀고 싶은 지도 모르겠어."라고 했다. 나는 이미 그곳에 가 있었고, 우리는 이미 스킨쉽을 포함한 내 안에서는 '사귀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의 이야기가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되묻지도 못했다. 그만큼 나에게 충격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이 등산을 갔고, 산을 좋아하는 나는 산을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나 서로에 대한 편안함이 사라지는 것조차도 아니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우리는 그저 편안하게 서로 농담을 하고 거리를 즐기고 자연을 즐기고 있었고, 그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양한 요리를 해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함께 맛있게 먹었고, 같이 장을 보고 같이 군것질을 했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같이 지내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었다. 나는 시내 행사를 예약을 해두었는데, 그는 그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 행사에 혼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것은 큰 실수였을까. 우리는 그날 저녁을 같이 보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는 농담으로 그의 전 여자친구 릴리와 함께 살때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그가 그때 릴리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갑자기 눈을 감고 그녀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걸자 그는 내 말을 쳐내면서 기다리라고 하며 만면의 미소를 띄우며 그녀를 상상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그는 크게 울었다. 그녀를 잃은 상실감에 크게 울었다. 그리고 어째서였을까. 나는 그때 그를 달래주었다. 전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크게 우는 그를 달래주었다. 사귀는 사이에서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순간에 나는 그런 마음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여기 온 것은 그를 달래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하며 그냥 그를 달래주었다. 그는 내 옆에 있었지만 더 이상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누웠는데 릴리가 그에게 손으로나 입으로 섹스를 해주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듯 했다. 바로 옆에 있는 나의 존재는 그에게서 완전히 지워져있었다. 나는 그러한 그 순간에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나 역시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그의 슬픔에 공감하는 데만 동참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인지 나는 내 안의 상처와 감정은 무시했다. 그렇지만 그만큼 나는 그를 위해서 그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에 꿈에 나왔던 여자가 릴리였다고. 그의 마음 속에 아직 있던 그녀가 꿈에 나온 것만 같았다.
그의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그를 비판할 생각으로 미안함을 담아서 네가 머리는 트여있지만 마음이 닫힌 것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는 나의 비판을 비판으로 듣지 않고 머리가 트여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며 고마워했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내가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을 꽤 오래전부터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감정적인 공감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내 친구는 그 뿐만이 아니었고 나는 그가 내 심정이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해주지 않더라도 그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데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사고 과정을 듣는 것을 꽤 좋아했고 그것이 비록 내가 동의하는 방식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저 그의 여정의 일환으로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다. 나는 나의 방식을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그도 역시 그랬다. 이러한 서로가 가진 각기 다른 장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일조했다고 느꼈다. 적어도 나는 그를 한번도 우러러보거나 그가 대단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여긴 적이 없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뛰어나다고 느꼈다. 서로가 그렇게 장단점이 있다고 느꼈다. 이미 서로의 능력이나 뛰어남을 생각하던 시점에서 그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좋은 친구관계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느끼기에 그는 내가 그의 장점을 평가하는 것보다 내 장점을 덜 평가한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 그의 평가와 상관 없이 나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느끼던 그의 단점인 마음이 닫혀있는 점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연애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할때도 나는 그에게는 내가 보통 연애를 하면 상대에게 기대하게 될 많은 부분에 대한 것들을 처음부터 많이 접고 있었다. 나는 그를 어느정도 알고 있고 그가 가능한 정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때 착각한 부분은 이러한 것은 그가 나를 직접적으로 상처주지 않았을 때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직접적인 비난과 비판을 듣고 상처를 받자 나는 그 상처를 그가 이해하고,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가 이해하고 그가 무언가 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내가 간과했던 큰 지점이었다. 친구로서의 그는 나를 비난하는 일이 없었고, 나는 연인으로서의 그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귈지 말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시작된 그의 비난에 나는 갈길을 잃고 있었고 나는 그러한 비난들을 이미 소화하지 못한 채 있었다.
그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하지 않을 행동"이라고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했고 그러한 그의 행동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의 외모에 대한 비난, 나에 대한 평가,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는 언급, 거기에 나아가 결국은 전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밤새 울기까지 했다. 그 무엇도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 나와 사귀고 싶다는 사람"이 나에게 할 행동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행동을 예상하지도, 방어하지도 못한채 나는 마음이 그에게 크게 열려있었고 그래서 그의 그러한 행동들 하나하나는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되어서 가슴 깊이 박혔다. 이날 역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