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하 Oct 14. 2024

회피형 나르시시스트 (7) 재회와 엇갈림

소설, 이별의 불가능성

그는 이미 그렇게 여러번 이미 내가 그를 만나러 가기 이전부터 헷깔리는 신호를 주며, 나를 비난하기 시작하며, 관계로 인한 자신의 책임 소재는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에게 맞추기 바빴기 때문이다. 내가 섹스에 대해서 내가 어느 정도의 스킨쉽을 편하게 여기는지를 여러번 이야기해도 그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너와 나는 섹스를 하게 될 것이고 나는 네가 그것을 즐기기를 바란다고 계속 어필했다.

그는 내가 섹스를 즐기기 위해서 그와 단단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나의 심리 상황은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단단한 관계에서조차 임신의 리스크가 삽입의 즐거움을 윗돌아서 삽입을 그다지 즐기지 못한다는 나의 말조차 무시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리스크를 줄일 수단을 그 쪽에서 마련하려는 것조차도 아니며 나에게 피임약을 먹거나 피임 기구를 쓸 것을 이야기하고 내가 그런 것들을 거부하자 그런 것들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어필하기에 바빴다. 

나에게는 섹스 자체가 연애에 있어서 부차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 자체가 메인 도마에 올라가는 것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나의 이러한 이야기도 그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믿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나에게 쉽게 상처를 주거나 주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는 그와 쌓아올린 7년의 관계가 나에게는 무척 소중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귀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자체가 나에게는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여러번 이야기했다. 나는 7년간의 우리의 우정을 도마에 올리고 있다고. 그러나 나의 그 말도 그에게는 훨씬 가볍게 들렸던 것 같다. 전 여자친구 남자친구 들과 다시 친구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던 그에게 나는 누군가와 사귀게 되면 문화나 경험상 그 사람과 인연을 완전히 끊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나와 인연을 끊을 각오를 하면서 그럼에도 연애 관계를 시도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연애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잘 해보려는 각오나 마음이 있던 것 조차 아니었다. 그정도로 우리 둘이 이미 관계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고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도 내 마음과 같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가 내 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쓰레기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고 나는 소중한 그를 내 안에서 그렇게 만들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에게 가는 날이 되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불안과 회피를 느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공항 안에 돌아왔다. 돌아가기에는 늦었다. 그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10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마음은 편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다스리기에 바빴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입국 수속이 끝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입국자들이 나오는 곳에서 기다리기로 했었다. 공항에 도착했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어느새 돌아다니다 보니 주차장까지 가게 되었고 그때서야 그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했고, 그는 주차장에 늦게 나타났다. 낯선 모습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낯선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움추려들었다. 그는 나에게 "포옹해주지 않는거야?"라고 하고 나는 그때서야 "포옹을 해야하는 건가?"하고 포옹할 마음을 먹으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멀찌감치 가버렸다. 어색하게 그의 차에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거리, 새로운 풍경에 여행자의 기분의 나는 잠시 흥분하기도 했지만 옆의 그는 변함없이 낯설고 거리감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도 살이 찌고 체형이 변했고, 그가 쓰는 말투도 달라져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몇 군데의 관광지를 들렀지만 계단이 많은 그곳은 내가 즐길 만한 곳은 아니었다. 훨씬 흥미가 있을지 모르는 박물관도 언급했지만 그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나는 박물관에 들어가보고 싶었고 흥미를 표현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냥 자리를 떴다. 이날 부터 여행의 모든 스케쥴은 그에게 일임이 되었다. 나는 몇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그가 세운 계획을 따르고 싶기도 했다. 결국 나는 모든 일정을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자신의 방을 내가 쓰게 할 것과 손님 방을 나에게 줄 것 두가지를 고려한다고 했다. 나는 손님방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결국 그의 방을 쓰기로 했다. 이것도 실수였다. 나는 그의 방이 나에게 일임되었다고 생각하고 내 짐을 아무렇게나 풀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서야 내가 짐을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의 방은 그의 안에서는 내 공간이 아닌 그와의 공유 스페이스가 되어있었고 내 안에서는 내 물건을 어떻게 어질러놓아도 되는 내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와의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나에 대한 불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계속 평가하며 쌓아올리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가 말했다면 조율이 가능했던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그는 나중에 뒷통수를 치듯이 그의 불만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요리할 수 있게 장을 보고 싶다고 계속 말했다. 그러나 짐을 놓자 마자 그는 나를 안더니 쇼파로 가자고 했다. 쇼파가 낯설었다. 침대가 있는 방을 나와서 그는 굳이 나를 쇼파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만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던 그대로였다. 나는 긴 비행으로 지쳐있었고, 무엇보다도 먹을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냥 오늘은 이대로 자려나 싶었는데 그는 애무를 중간에 멈추더니 슈퍼에 가자고 했다. 그의 계획이나 마음을 알기가 힘들었다. 그가 데려간 곳은 한인 마트였는데, 한국 재료를 사기에는 적었고 그렇다고 일반 야채를 사기에는 비싼 곳이었다. 나는 일반 야채가 더 필요했다. 그는 그러면 여기서 사지 말자고 이야기했는데 그렇다고 다른 슈퍼를 가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그 어떤 충분한 재료도 갖추지 못한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섹스 시도를 했다. 내가 삽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일부러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대신 손이나 입으로 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 것 역시 내가 거부하자 그는 난색을 표했다. 그의 요구와 기대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우리는 그의 방에서 같이 잠을 청했다. 그의 잠자리는 좁았고 그래서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자지 못했다. 자다가 문득 꿈을 꿨다. 그와 섹스를 하는데 엄마가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꿈이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 한명도 보고 있었다. 그 꿈은 너무나 불안정한고 불안한 꿈이었고 나는 그를 안으며 불안함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나 불안함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는 불편하다며 밖으로 나갔고, 나는 혼자 잠들기 불안한 마음에 잘 곳을 찾아 헤맸다. 나는 불안함 속에 홀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다음날도 약간의 애무를 시도했지만 그는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간단히 동네를 산책하고 근처 공원과 바닷가에 갔다.  손을 잡거나 하며 걷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떨어져 걸으며 대화를 하며 걸었다. 나는 여전히 삽입이나 적극적으로 섹스에 관련된 행위를 내 쪽에서 하는 것이 불편했고 그는 이런 저런 애무를 시도하다가 불만족스러움을 표현하며 중간에 멈추곤 했다. 그는 그런 행동을 통해서 계속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언가를 그에게 해주어야 한다고 나를 압박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나는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애무는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범위를 이미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범위를 분명히 이야기했고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한다면 알아서 그 선을 지켜주기를 기대했었다. 그저 그는 나에게서 거부 반응을 느낀다면서 툴툴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편안하지 않았다.


이전 06화 회피형 나르시시스트 (6) 헷깔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