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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디앤디 Oct 04. 2024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교대시간 10분 전 편의점에 도착한다. 유니폼을 입고 교대근무자에게 전달사항을 듣고 인수인계를 받는다. 전 근무자는 퇴근한다. 이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날의 일을 시작하며 한 번, 마치면서 한 번, 이렇게 두 번한다. 각각 만나는 교대근무자는 다르다. 최소 두 명의 근무자를 알게 된다. 보통 3교대를 하니까, 거기에 요일에 따라 근무자가 달라지는 날이면 세 명에서 네 명의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인연이라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잠깐 5분 정도의 시간을 공유한다. 말을 섞는 것도 업무적인 것 외에는 극히 없다. 그날의 특이사항이나 전달사항을 주고받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개인적인 질문은 할 필요도, 받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된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손이 빠른지 정도는 알게 된다. 물론 편의점 일에 국한에서 말이다.

     편의점 일은 보기만큼 쉽지만은 않다. 한 것은 티가 안 나지만 하지 않은 것은 금방 티가 난다. 그것은 교대하는 근무자가 확실히 피부로 느낀다. 교대하고 나서 10분 안에 판가름 난다. 업무를 시작하고 10분 동안은 손님을 응대하면서 매장을 한 바퀴 돈다. 상품 진열대에 빈자리는 없는지 신선식품 코너에 소비기한이 지나거나 임박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장 안의 테이블이나 전자레인지 등의 청결상태도 점검한다. 할 게 없다. 그러면 전 근무자는 일을 매우 잘하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루가 아름답게 시작된다. 전 근무자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각인된다.

     나도 다음 근무자에게는 전 근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편의점은 24시간 돌아가고 있으니까. 깔끔한 매장과 정돈된 상품 진열대를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줘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사장의 눈치를 보거나 사장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다음 근무자 눈치를 보며 다음 근무자를 위해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의점 일은 하루가 거의 비슷하게 돌아가는 순환구조다.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돌아가야 편하다. 내가 조금 게을리하게 되면 다음 사람이 힘들고 그게 반복되면 그 사람도 일을 게을리하게 된다. 나만 일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이 하기 싫어진다. 그 고리를 만들지 않는 게 좋다. 보인다면 얼른 끊어 버려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말이다.


     며칠 전 나와 교대하는 근무자가 그만두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두 명이 바뀌었다. 한 명은 내 시간 앞에 일하는 친구, 또 다른 한 명은 내가 일을 마치는 시간에 나와 교대하는 친구다. 호칭이 애매해서 사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그 친구’라고 칭한다. 우정이 쌓일 만큼 친해질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나이도 천차만별이라 ‘친구‘라는 단어가 함께 어울릴 시간이 없는 것만큼이나 어울리지는 않지만 마땅한 대명사가 없어 그렇게 부르기로 나름대로 정했다. 그 사람이 ' 난 친구 아닌데요 '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인연으로 엮인 앞, 뒤로 근무하는 친구들이 그만두었다.


     이곳에서 일을 한지 일 년이 지나간다. 중간에 두 달 넘게 쉬기는 했지만. 그동안 교대근무자가 세 번 바뀌었다. 내 앞에 근무자만 그렇다. 

     최근 6개월 동안 세 명의 사람이 거쳐 갔다. 내 바로 앞의 근무자만 그렇다. 내가 근무를 하지 않는 다른 요일과 시간대를 포함하면 더 있을 수 있다. 길게는 3개월, 짧게는 한 달을 근무했던 친구도 있다. 저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편의점의 이직률은 높은 편이다.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도 않으니 말이다. 일을 구하는 입장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경영주 입장에서는 그게 단점이 되어 버린다. 편의점 일자리를 구할 때 사장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사람 쓰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겪어보니 조금은 알겠다.


     내 앞에 근무자가 바뀌면 몇 주 동안은 힘들다. 바뀐 근무자가 일을 못해서라기보다는 잘 몰라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다음 근무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상품진열대에 빈자리가 많이 보이고 정리정돈이 안되어 있어서 어수선한 상태로 근무교대를 하게 된다. 때로는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친구도 있고 실수한 것을 어떻게 하냐고 걱정과 투정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출근하고 이 삼십 분은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안정이 된다. 문제는 서로 이해하고 익숙해 질만 하면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사회에 갓 나온 사회 초년생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저마다 처한 상황과 그 변화에 따라 살아가야 하니까. 나 조차도 편의점 일을 오래 하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특히 20대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잠깐 스쳐 지나가며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요. 경력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든 어느 직업이든 분명히 배우는 것은 있다. 편의점은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간다. 나는 이 안에서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이해해 보려고 한다.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전 근무자가 바뀌면 가끔 아쉬움이 남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조금 더 편했을 때, 좀 더 오래 일을 해 주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아쉬움이다. 분명 그런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해도 인정받는 사람일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런 아쉬움이라면 매달 사람이 바뀌어도 좋겠다. 의외로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내 뒤의 근무자는 나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근무한 친구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친구지만 내가 겨울에 스키 탄다고 두 달 넘게 일을 쉬었을 때도 그 친구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봄이 시작될 무렵 다시 왔을 때 무척 반겨주었던 친구다. 그동안 전 근무자 때문에 힘들었단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웠다.


     그 친구가 그만두었다. 그만두기 한 달 전부터 나에게 먼저 그만둔다고, 서울로 간다고 귀띔을 해 주었다. 한동안 방황을 하던 것 같더니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기에 집에 먼지 뭍은 책 몇 권을 주었다. 그 친구를 위해 따로 구입한 책도 한 권 넣었다. 부담이 될까 봐 새로 샀다고는 안 했다. 근무 교대할 때 계산대 옆에 읽던 책을 주섬주섬 챙기는 것을 자주 보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책 추천은 잘 못한다. 하지만 책 선물하는 것은 좋아한다. 어찌 보면 선물은 나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받는 사람이 원하던 것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책 선물은 호불호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적당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좋아하든 말든 특별한 날에는 책을 선물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다시는 볼 확률이 희박한데 굳이 책을 선물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한다. 그동안 고마웠으니까. 특별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준 적은 없지만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아무런 불만 없이 해 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그 친구가 일을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전 전 근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리 없이 톱니바퀴가 굴러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못 봤다.


     떠나는 그 친구에게 묻고 싶었다.

     교대시간 내가 퇴근할 때 나의 뒷모습은 어땠는지...

     하지만 묻지 못했다.


     그 친구는 그렇게 방향을 찾은 듯 가볍게 떠났다. 다시는 물에 젖어 바닥에 내려앉지 말고 가벼운 깃털을 마음껏 휘저으며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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