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본격적인 청소에 앞서 준비하는 시간이다. 청소에 무슨 준비가 필요할까 싶겠지만 어떤 일이든 하는 사람에 따라 좀 더 쉽고 편하게 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의 기본은 쓸고 닦는 일이다. 나는 그에 앞서 쓰레기통과 재활용품수거함을 정리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인 음식물쓰레기 처리하는 일을 한다. 그 일을 새벽 3시에 한다.
가장 손님이 적은 시간대가 3시에서 4시다. 아마도 깨어있는 사람이 가장 적은 시간대가 아닐까 싶다. 그 시간에 전국 5만 개 이상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분들은 당연히 깨어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생각해 보면 은근히 많은 분들이 새벽에 깨어 있다. 응급실의 간호사와 의사, 경찰과 소방관도 밤을 낮처럼 보내는 이들 중 하나겠다. 예를 들다 보니 그런 것인지 아니면 대부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낮이든 밤이든 가급적 보지 않으면 좋을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일 텐데 모순적이게도 좋지 않은 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면서, 봐도 나쁘지 않은 사람들 축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어라 그러면 나는 간호사나 의사보다 좋은 사람일 수 있겠네. 요거 뭔가 찜찜한데도 이상하게 설득이 되는 것 같네.
하여튼 그 시간대가 손님이 없어서 청소하기에는 아주 좋은 시간대다. 손님이 없으니 손님에게 피해를 줄 확률도 낮아지고, 청소하는데 방해받을 원인도 없으니 손님이나 나나 모두가 좋은 시간이다. 물론 손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손으로 꼽을 정도면 충분히 좋은 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나한테만.
청소는 편의점 하루 일과 중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귀찮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최대한 보이지 않게, 냄새나지 않게, 소리 나지 않게,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아..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것은 싫다. 자칫 국물이라도 튀어 몸이나 옷에라도 묻으면 짜증이 확 밀려온다. 설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싫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손님이 없으면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물론 책을 보거나 글을 쓰면 후다닥 지나가 버리지만 눈치껏 해야 한다. 일하러 온 거지 책 보러 온 건 아니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무상무념으로 들어간다. 내가 단순한 사람이구나 싶을 때가 바로 이때다. 그렇다. 단순한 게 좋다. 쓰레기와 재활용 이렇게 둘로 나누면 된다. 더러운 것은 다른 문제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 내가 쓰레기가 싫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없는 것에는 두 번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쓰레기통과 재활용수거함을 왜 정리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나도 이해가 안 가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손님들이 싫었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는 몸에 배어 있기도 하고,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잔소리 때문에라도 억지로 분리수거를 철저히 한다. 그런데 집 밖으로 나오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해야 할까, 가면을 쓰고 나오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 쓰레기통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 사장은 종량제 봉투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당부한다. '미안한데 쓰레기통 정리 좀 잘 부탁해요.'라고 부탁한다. 사장 입장에서는 그게 비용이기 때문이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사장과 친인척 관계가 아닌 이상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쓰레기통을 뒤지고 정리하는 데 있어서 즐거울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 일을 한다.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한다. 이때 억지로 하다 보면 짜증이 난다. 매일 해도 매일 짜증 난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난 환경지킴이라고, 난 지구를 살리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한다. 효과가 있다. 그러면 조금은 달라진다. 물론 즐겁지는 않다. 가끔은 쓰레기통에서 재활용품이 나오면 보이지 않는, 알지도 못하는 손님에게 욕지거리를 한다. 소심하게 허공에 대고 속으로 말이다. 그럴 때면 몸 안에 있는 쓰레기 같은 기분을 밖으로 내보내서 그런지 한 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게 보여야만 아깝다거나 여기에 왜 돈을 써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손님이 쓰레기를 치우는데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가끔 차 안의 쓰레기나 다른 곳에서 생긴 쓰레기를 편의점 휴지통이나 야외 테이블 옆에 슬며시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의외로 편의점뿐만 아니라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담지 않고 얌체처럼 쓰레기가 모여 있는 곳에 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종량제 봉투 살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이다. 아직은 없지만 조만간 음식물 쓰레기까지 편의점에 버리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먹고 가는 음식이 컵라면이다. 나는 컵라면을 집어드는 손님이 있으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가지고 바로 나가면 그나마 찌푸렸던 눈살이 조금은 펴진다.(단순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안에서 먹고 가면 일이 2중, 3중으로 늘어나고 쓰레기도 그만큼 늘어나기 마련이다. 손님이 가고 난 자리에는 나무젓가락, 컵라면 용기(음식물이 묻은 컵라면 용기는 재활용이 안된다), 음식물쓰레기가 고스란히 남겨진다. 대부분 스스로 정리하고 가지만 거기서 나온 쓰레기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다. 물론 손님이 집에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지구에 쌓이는 쓰레기의 총량은 변함이 없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지구의 환경인지 나의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인지 자문한다. 당연히 내가 좀 더 편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환경을 앞세운다. 난 이기적이다. 하지만 한마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자면, 나는 끓여 먹는 봉지라면은 먹어도 컵라면은 먹지 않는다. 집이든 밖에서든.
국내 편의점 수가 2024년 기준으로 5만 5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컵라면 용기가 점포당 하나씩만 나와도 5만 5천 개다. 2개씩 나오면 10만 개가 넘는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만 매일 평균 2개 이상은 꼭 나온다. 드물긴 하지만 어떤 날은 10개 이상 나오는 날도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75리터 종량제 봉투가 두장씩 쓰인다. 1주일에 150리터의 쓰레기가 전국 5만 5천 개의 편의점에서 나온다고 상상해 보자. 싫다.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난 단순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내가 불편해지는 것이 걱정이 될 뿐이다.
나는 둘 중 어디에 속할까?
쓰레기?
재활용품?
분명 둘 중 어느 하나 일 텐데 어딘가 잘 못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어디에 들어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