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문에 걸어 둔 풍경이 울린다. 반사적으로 '어서 오세요'를 외친다. 다른 손님을 응대하고 있을 때는 못하지만 그래도 매번 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몇 달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냥 튀어나온다. 그렇게 울리는 풍경 소리가 상황에 따라서 연인의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처럼 낭랑하게 들릴 때도 있고, 게으른 아침을 깨우는 알람처럼 자그럽게 들릴 때도 있다.
예전에는 멜로디 차임벨을 사용하는 곳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풍경을 달아 놓는 가게가 더 많다. 특히 카페나 편의점은 거의 풍경이다. 내 추측으로는 멜로디 차임벨은 가게 안에서 틀어 놓은 음악 소리에 묻히거나 방해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와는 다르게 풍경은 들리는 소리도 예쁘지만 보이는 모습도 아날로그적이라 정겹기도 하다.(매번 그런 건 아니다)
이렇게 편의점의 모든 일은 풍경이 울리면서 반복된다. 24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더운 여름에도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손님이 가장 적은 시간대가 눈에 보인다. 사람이 움직이는 시간대는 서로 약속을 하지 않았을 텐데도 거의 비슷하다. 그만큼 인간들의 삶이 습관적이고 일괄적으로 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씁쓸할 때도 있고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다행이다 싶은 이유는 바쁠 때 몰아서 바쁜 게 좋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손님의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뜸한 시간대다. 그게 언제냐고? 다들 알고 있는데 나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영업비밀이다. 그래도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비밀 아닌 비밀을 말한다. 새벽 1시부터 차츰 줄어들기 시작한 손님들은 3,4시경에 양손으로 꼽을 정도가 되었다가 5시 정도면 슬슬 또 소란스러운 아침이 시작된다. 휴일 전날과 평일의 모습이 다소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렇다.
이 시간대는 손님이 방해하지 않는 한 나의 시간이다. 나를 고용한 사장 입장에서는 괘씸한 일이다. 일하라고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시급(고용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늘 적다)을 주고 있는데 일은 하지 않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분명 기분 나빠할 것이다. 사장도 알고는 있을 것이다. 모든 편의점에는 CCTV가 있다. 감시카메라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감이 좋지 않다. 죄를 지어도, 그렇지 않아도 감시를 당한다는 것은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니까. 여하튼 암묵적인 특혜 아닌 특혜 아래 일을 하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해주시는 사장님이 고맙다. 하지만 직원이 나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눈치를 보기도 하고 스스로 검열을 하기도 한다. 솔직히 그럴때면 속으로는 그런다. '자르려면 자르세요.' 그렇지만 가급적 내가 맡은 일은 최대한 부족함 없이 하려고 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다 보면 느끼겠지만 이글의 주인공은 반갑지 않은,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다. 대놓고 싫은 내색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구시렁 구시렁댄다. 지극히 나만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은 이런 손님들이다. 나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 손님들.
청소를 하기 위해 밑 작업을 하는 시간에 오는 손님이다. 모든 손님이 그런 건 아니고 개중에 한 둘 있다. 손님이 가장 없는 시간대를 골라서 청소를 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인간들 참 지저분하게 산다'라고 구시렁 대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고 있는 바로 그때, 들어오는 손님은 일단 환영받지 못할 손님 1차 후보가 되시겠다. 졸지에 자신은 지원한 적도 없는 어떤 수상부문에 후보가 되는 것이다. 불명예스러운 후보에 오른 것을 짐작한 눈치 빠른 손님은 자신이 꼭 사려고 했던 목적물을 취득하자마자 꽁무니 빼며 퇴장한다. 이런 분은 최종후보에 올릴 수도 없고 올리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진다. 그냥 '좋아, 굿'하며 엄지척을 한다.
최종 후보에 올라가는 흔한 불청객은 그 시간에 들어와 당신과 나의 시간을 하염없이 죽이는 사람이다. 특별히 무엇을 사러 들어왔는지 모르는 손님이다. 손님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냥 출출해서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들어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선뜻 손이 가는 먹거리가 없는 경우다. 즉석식품 진열대 앞에서 삼각김밥과 줄김밥을 주물럭 거린다. 눈으로만 봐도 포장에는 내용물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알려주는데 음식은 손맛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우선 손으로 맛을 추측하는 인간들 꼭 있다. 만지작 거리던 것을 사가면 다행이다. 그냥 내려놓는다. 손맛이 별론가 보다. 손님은 자신의 귀한 시간을 죽이고 나는 청소도 못하고 카운터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나에게 그 시간은 참으로 중요한 시간이다. 그 죽어가는 시간에 청소를 하게 되면 평소처럼 늘 마치던 시간에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앉아서 쉴 수 있다. 손님이 있던 없던 맡은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러면 싫어한다. 한참을 물건 고르는데 허비하더라도 계산이 늦어지면 짜증을 낸다. 물론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할 때도 있다. 신선식품 물건이 들어오거나 아이스크림 같은 냉동제품이 들어왔을 경우에는 얼른 그 상품들이 있어야 할 곳에 놓아야 한다. 그럴 때는 손님이 있건 말건 하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청소와는 일의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해도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기다린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다.
또 다른 한 부류의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을 들자면 이런 손님이다. 마찬가지로 내 시간을 갉아먹는 손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다. 이런 손님은 나갈 때까지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물건을 고르면서도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는다. 10분이 넘게 매장 안을 빙빙 돌며 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손님이 있다.
그러면 나는 왜 이런 손님이 싫을까?
편의점 직원들은 앉아서 쉬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거나 하던 일을 멈추고 계산대를 지킨다. 누가 무엇을 훔쳐갈까 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의심의 눈길로 보기도 한다.) 손님을 위해 대기하는 것이다. 몸이 아파도 정리할게 많아도 일단은 계산대를 사수하며 서 있어야 한다. 그게 손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매장을 할 일 없이 돌아다니며 통화를 하고 있어도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솔직히 서 있는 것은 힘들지 않다. 어떤 날은 근무시간 내내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하는 날도 있으니, 대부분 서 있는 것에 익숙하다. 다만 서 있는데 쓰는 에너지 보다 아까운 것은 시간이다. 그것은 손님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의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학생은 김밥이나 컵라면을 고르는데 10분, 고른 음식을 먹는데 10분이 걸린다. 그런데, 먹으면서 시간이 아까운지 동영상 강의를 보고 있다. 뭐지 이 상황은? 고르는데 보낸 10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무엇을 할 때는 그것에만 집중을 한다. 한 가지만 한다는 얘기다. 그 학생에게 물어볼 걸 그랬다. 앞에 보낸 10분이 더 중요했는지를.
손님은 죄가 없다. 언제든 방문하라고 편의점은 24시간 문을 열고 있으니 말이다. 손님은 그 24시간 중에 그가 필요한 그 시점에 그 편의점을 갔을 뿐이다. 그리고 나라는 직원을 만났을 뿐이다. 그 점에서는 구시렁대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인지라 여전히 반갑지는 않다.
이런 손님들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알게 모르게 시간을 아이러니하게 사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시간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보통의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와 체류하는 시간이 대략 얼마나 될까? 편의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상품 진열대에서 사고자 하는 물건을 고르고 계산까지 마치고 문을 나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말이다.
뭐 쓸데없이 이런 것까지 계산하고 있냐고? '계산대에 올라온 상품들이나 정확히 계산해서 손님도 가게도 손해보지 않도록 신경이나 쓸 일이지'라고 말하는 사람 분명히 있다. 지금 당신도 순간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제는 불변한다. 시급을 받고 일하는 나 같은 근로자에게는 더욱더 그 말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런 부분에 통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검색해 보니 편의점에서 머무는 시간이 평균 2분 정도가 된단다. 2분을 넘는 손님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내 시간을 내가 어떻게 쓰든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도 시간이 아깝고 물건을 사러 온 손님에게도 아까운 시간이다. 누군가가 그저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나에게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보통은 이런 일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직접적으로 타인의 시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약속시간에 늦는 것처럼 어떠한 시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시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내가 무심코 버리는 시간이 그 시공간을 함께 보내는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시간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인간의 수명이 50년이나 60년으로 제한된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런 내용으로 소설을 써 본다면...
'신이 보기에 인간의 수명이 점차 늘어나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수준에 이른다. 그로 인하여 인구가 늘어나고 지구는 점점 병들어가고 인간은 신인 자신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신은 자신의 창조물인 지구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인간의 수명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신이 말한다. "얼마면 되겠니?"(원빈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