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의점 야간 근무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근할 무렵에 퇴근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갈 무렵에 출근을 한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며, 찬란한 태양 빛보다는 은은한 달 빛에 더 익숙한 삶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부업으로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어쩌다 보니 본업이 되었다. 부캐가 본캐가 되어버린 것이다. 솔직히 지금의 생활이 나쁘지는 않다. 왜냐고 묻는다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깨어있는 새벽 시간대가 좋다. 그것이 쉬는 날의 새벽시간이건 근무하는 날의 새벽이건 간에 말이다. 어찌 보면 체질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졸음이 하염없이 쏟아질 때면 드러누워 자고 싶어 진다.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간다. 편의점 근무시간에는 당연히 손님이 없을 때 가능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졸음은 손님과 함께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졸음은 손님이 없을 때를 알고 있다. 무서운 놈이다.
쉬는 날이든 근무하는 날이든 상관없이 네모난 곳에서 벗어나 옷깃 속을 파고드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없는 날에는 스스로 바람을 만들기도 한다. 새벽 공기는 다른 어떤 시간대의 공기보다 싱싱하게 와닿는다. 다만 이번 여름은 상대하기 쉽지 않은 녀석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이 또한 지나가고 있다.
편의점 일을 시작하고 두 달 정도 지나자 일이 익숙해졌다. 일이 익숙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가 된다. 여유가 생기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밤하늘의 별과 달이다. 대도시에서는 별을 보기가 어렵긴 하겠지만 중소도시의 밤하늘에는 여전히 총총하다. 부르지도 않은 고독은 고요함에 묻어 온다. 그 고독은 까아만 하늘이 덥어 버린다. 아~! 파란 하늘만 하늘이 아니구나! 밤이든 낮이든 삶은 언제나 빛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다.
기계적으로 인사하고 손님이 테이블 위에 상품을 올려놓으면 반사적으로 바코드를 찍고 결재를 받고 영혼 없는 '안녕히 가세요'를 외쳤다. '또 오세요'는 사장이 아니면 쉽게 나오지도 않지만 정말 영혼 없는 발악이다. 솔직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손님이 없는 게 좋다. 그나마 바쁠 때는 영혼 없는 인사마저도 생략한다. 손님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계화를 넘어 유령화가 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동안 그렇게 유령처럼 오가던 손님들이 어느 순간부터 형체를 띠기 시작하더니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유라는 놈은 참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름답게 보다 여유롭게 살고 싶어 진다.
누군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나는 지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졸지에 내가 즐기는 대상이 된 손님에게는 미안한 표현이기는 하다. 먹고사는 일은 모두 쉽지 않다. 편의점 일도 쉽지 않다. 재미도 없다. 어찌 보면 단순 노동이다. 오죽하면 최저시급 차등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예를 드는 것이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아니겠는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쉬워 보여도 일은 일이다는 얘기다.
내게 있어서 편의점 일의 장점은 혼자 일하는 것이다. 다른 직종에 비해 직원들 간의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 교대 근무자 외에는 다른 직원을 알 필요가 없다. 그리고 퇴근하면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야간 근무자는 새벽시간의 여유가 덤이다. 물론 편의점의 위치나 환경, 업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손님이 가장 없는 시간대는 대부분 새벽시간이다. 이때 나는 책을 읽는다. 당연히 졸음은 온다. 무서운 놈이다. 이 놈은 즐기고 싶지만 피해야 하는 놈이다. 그래서 무조건 밖으로 피한다.
당연히 단점도 있다.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때로는 졸음보다 무섭다. 이게 서비스직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직원을 키오스크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손님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손님은 불멸자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손님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분 나쁜 상황에서도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더 기분이 나빠지지 않으려면,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면.
내가 일을 즐기는 방법은 손님을 통해서 나를 찾는 것이다. 손님을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순간 놀라기도 한다. 손님의 행동과 말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물론 선한 나보다는 악한 나를 발견할 때가 더 많다.
이 글은 편의점의 출입문을 통해 들고 나는 사람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고 답하는 글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내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반성문이 될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시시콜콜한 잡담일 수도 있겠다.
손님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볼 때도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는 할아버지를 보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을 떠올릴 때도 있다. 근사하게 나이 든 어르신을 볼 때면 나도 저렇게 늙어 갔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볼 때면 그 안에서 나의 악한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이 어쩌면 우리네 삶을 옮겨놓은 연극무대가 아닐까 한다. 다양한 상품만큼이나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 더 투명해진 나를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에피소드에 따라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겠다. 삶이 다 그렇지 않을까.
편의점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 머릿속의 여과지를 거치면서 어떤 맛을 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맛과 향이 그윽하고 여운이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