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포스에 술이나 담배가 찍히면 신분증 검사 멘트가 기계음으로 나온다. 그 상품을 사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포스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형식적으로 나온다. 의무적으로 나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를 판매하면 처벌을 받는다. 보통은 과태료를 내게 되는데 일하는 곳에 따르긴 하지만 보통은 판매한 근무자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된다. 간혹은 그것을 역이용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다. 방심하는 순간 내 시급의 몇 십배에 달하는 돈이 날아갈 수도 있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해 주는 요즘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노트북처럼 화면 위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는 것처럼 포스 화면에도 카메라가 생기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다. 술이나 담배가 포스에 찍히면 자동으로 카메라는 손님을 스캔하여 그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연령인지 확인해 주는 시스템 말이다. 그게 과연 좋은 세상일까? 편리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나와 같은 근무자에게는 좋을 수 있겠다. 다만, 나도 소비자일 경우가 있다는 게 함정)
그러려면 우선 모든 국민의 얼굴이 데이터로 만들어져야 한다. 인권침해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기분은 나쁠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딥페이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 내 사진이, 내 얼굴이 어딘가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지금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디를 가도 고개를 조금만 쳐들면 CCTV가 보인다. 그 데이터들은 어디로 갈까? 상상하기 싫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손님들에게는 신분증검사 멘트를 무시하고 계산해 드린다. 단골손님 이거나 한두 번 신분증 검사를 했던 손님들, 그리고 누가 봐도 청소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때 멘트가 들리건 말 건 패스한다.
신분증 검사를 요청하면 대게는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좋아하거나 짜증을 낸다. 당당히 내미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쭈뼛쭈뼛 내밀며 불괘감을 표현하는 손님도 있다. 청소년이면 "안 가져왔는데요. 지난번에 여기서 샀는데요."라며 약속이나 한 듯 일관성 있는 멘트를 한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가끔은 그냥 속아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속아 줄 때도 있다. 형이나 언니의 신분증을 내밀거나 분실된 신분증을 내미는 경우다. 알 수가 없다. 신분증의 사진과 실물의 사진은 닮은 듯 아닌 듯, 구별이 잘 안 된다. 물론 진짜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을 수도 있다. 내 느낌이나 선입견에서 나온 의심일 수 있다. 확인할 길은 없다.
한 번은 신분증 검사 멘트로 인해서 기분이 좋았던 일도 있다.
신분증 검사가 필요할 나이를 한 참 지나고, 자녀가 있다고 해도 그 자녀 또한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나이가 지긋하신 단골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냉장고에서 술병을 하나 들고 와 계산대에 올려놓으신다. 이미 전작이 있으신지 벌겋게 상기된 안색이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셨던 같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가 보면 술을 사가시는 손님이 기분이 좋아서 드시는 술인지 그렇지 않은지 느낌이 온다. 물론 습관처럼 드시는 분들도 있다. 여하튼 그날은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포스에 소주 바코드를 찍자 여지없이 신분증 검사를 요청하는 멘트가 나왔다. 물론 이 손님은 당연히 패스다.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시더니 뭔가를 불쑥 내미신다. 카드가 아니다. 신분증이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장난스레 하신 행동임을 알기에 이럴 때는 맞장구를 쳐 주어야 한다. 당당하게 내민 신분증이니 봐주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하필이면 65년생이시다. 올해는 05년생부터 술, 담배를 살 수 있다. 간신히 턱걸이로 구매하실 수 있는 나이시라고 응대하며 신분증을 돌려 드렸다. 기분이 좋으셨는지 악수까지 청하며 손까지 내미신다. 흥겹게 악수를 나누고 손님을 보내드렸다.
손님의 나이대를 추측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서른 중반의 손님에게도 신분증 검사를 요청한 적도 있다. 다행히 그 손님은 기분 좋게 받아들여주었다.
젊어 보인다는 것은 때로는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청소년이 구입하면 안 되는 물건을 사지 못해 집에 다시 다녀오거나 동행한 지인에게 대신 구매를 부탁하는 일도 종종 있다. 물론 대신구매도 불법이기는 하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다. 더군다나 동행인 친구의 신분증으로 확인하는 출생연도가 구입을 거절할 수 있는 나이로부터 거리가 멀 경우에는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한다.
신분증검사 멘트를 받아들이는 손님들의 감정은 고스란히 태도에 드러나게 된다.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불편해한다. 불편해하면서도 좋아한다. 일부의 손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잘 응해 주시고 솔직히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다. 그만큼 젊어 보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상쇄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나이 지긋하신 단골손님은 아마도 나도 아직 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음이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청하지도 않은 신분증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젊다는 게 뭘까?
젊었을 때는 젊다는 것을 채 느끼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 젊음을 잃어버려 알 수가 없어진다. 어려서는 왜 그토록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그 어렸을 때보다 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음을 깨달아 간다.
어려서는 어려 보이는 게 싫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젊은 게 부러워 젊어 보이고자 애를 쓴다.
그래서일까? 젊음을 되찾고 싶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들이 조금은 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보이는 겉모습이 조금 더 젊었을 때와 가까워지면 멀어져 가는 내 꿈도 다시 살아날 것 같아서? 그래서 젊어지고, 젊어 보이고 싶어 지는 걸까?
나답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나다운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