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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디앤디 Oct 11. 2024

좋아하게 되면 닮아 간다.

     어김없이 오늘도 딸랑 거리는 풍경 소리로 하루가 시작된다.

유난히 풍경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불안한 소리를 낸다. 아니나 다를까 비틀거리는 손님이 들어온다. 손님이 풍기는 술 냄새에 풍경마저 취한 듯 닫히지 못한 문에 달려 흔들리고 있다. 몸의 모든 육감이 긴장을 한다. 춥지도 않고 에어컨이 켜진 것도 아닌데 팔뚝의 잔털이 일동 차렷을 한다.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드신 술로 몸도 가눌 수 없게 된 분이 들어오면 긴장감과 함께 불안감이 덩달아 몰려온다. 얘네들은 혼자 오는 법이 없다. 거기에 '거어억, 거어억' 거리는 소리라도 들리면 내 몸의 모든 레이더가 아주 격하게 반응을 한다. 내가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내 눈빛은 담뱃불도 붙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만큼 요주의 대상이 된다.

   다행히 별다른 일이 벌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별다른 일이란 내 입장에서 알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보거나 알게 되는 경우다. 딱 한 번 있었다. 다행히 매장 안에서 벌어진 것은 아니다. 손님이 느낌이 왔는지 갑자기 출입문 밖으로 나가서 확인해 주었다. 좀 전에 무엇을 드셨는지 친히 냄새까지 풍겨가며 보여주고 알려주었다. 빗물 배수구 옆에다 쏟아 주셔서 고마웠다. 매장 안에서 그랬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작은 일들은 간혹 있다. 거나하게 취하신 분들은 술을 사러 들어오시기 마련이다. 저녁의 검붉은 노을빛을 한 낯빛으로 소주와 맥주를 사가시는 손님,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혈중 알코올 농도를 가늠케 하는 손님들이 주로 일을 만든다. 주택가에 있는 편의점에는 술을 드신 분들이 숙취해소제를 사러 오시는 분들보다 한 병 더를 원하시는 분들이 더 많다. 한 병 더를 속으로 외치고 들어 오시는 분들 중 가끔 냉장고에서 술병이나 맥주 캔을 꺼내시다가 또는 카운터로 가져오시다가 떨어 뜨리는 분들이 있다. 손님이 다치지 않으면 큰 다행이고, 먹지 못하게 된 술값을 계산까지 하고 가시면 작은 다행이다. 취한 분들에게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일을 더 번거롭게 만들 수도 있다. 가급적 말을 붙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술을 잘 못한다. 선천적으로 그런 것 같다. 주량을 늘려 보려고도 해 보았지만 포기했다.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란다. 할아버지도 술을 못하셨다. 소주 한 잔만 드셔도 열 잔을 드신 것처럼 얼굴이 벌게 지셨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증조할아버지 되시겠다. 증조할아버지를 뵌 적은 없지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말술의 술꾼이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술집은 면사무소 소재지에나 있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시골동네 술집까지 거리는 5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보통사람이 걸어서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거리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 지금은 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흙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 도로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 손잡이를 꼭 잡아야 했다. 울퉁불퉁 흙과 돌부리가 서로 잘났다고 옹기종기 얼굴을 내밀던 그런 길이었다. 그 길을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를 등에 업고 집까지 가셨다고 한다. 인사불성의 아버지를 등에 업고 5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으셨다고 한다. 그냥 걸어도 힘든 10킬로미터의 거리를 절반은 산만한 아버지를 등에 업고 걸으셨다니 상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이 퉁퉁 부을 것만 같다. 모시러 가는 길 중간에 증조할아버지를 만나면 그게 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며 웃으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술만 보면 그 생각이 난다. 그래서 술을 못하지는도 모르겠다.


     반면에 나의 아버지는 말술이다. 이런 경우를 격세유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술을 못하시고 아버지는 잘하시고 나는 못한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문에 나는 나의 아버지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술을 마시면 쇼크가 오거나 그런 거는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 보다 주량이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술로 인해서 타인에게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주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먹는 음식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서 하는 행동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옆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는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다.

   좋아하게 되면 닮아 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닮고 싶으면 먼저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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