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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디앤디 Oct 14. 2024

동굴 밖으로

     새벽 1시.

     출근한 지 두 시간 남짓 지났다. 전 근무자가 빼곡히 채우고 간 진열대에는 그 사이 손님들의 취향을 따라 팔려간 상품들의 빈자리가 생겼다. 그 빈자리의 원인은 늘 나가는 상품에 있어서는 편중된 입맛일 테고, 새로이 등장한 신상에 있어서는 호기심일 테다. 그 신상도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단명하기도 하고 꾸준히 장바구니에 실려 가기도 한다.

     그 빈자리를 채우다 보면 손님이 상품을 보고 제자리에 놓지 않고 엉뚱한 곳에 놓을 때가 간혹 있다. 일거리가 또 늘어나는 것도 있지만 순간 모르고 넘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잘 못 놓은 상품이 원래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가려진 상품은 없는 상품이 될 수도 있다. 편의점이야 뭐 고가의 상품도 아니니 그 상품을 팔지 못한다고 매출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라 대수롭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품만을 위해서 오는 손님들도 있다는 게 문제다. 이 편의점에는 그 상품이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단골을 잃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편의점의 생명은 내가 찾는 물건을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늘 정돈된 모습에 있지 않을까 한다. 같은 종류의 물건들이 끼리끼리 줄 맞추어서 모여있고, 다양한 색상이 그러데이션처럼 펼쳐져 있는 편의점. 그런 곳에 가면 뭔가 하나 들고 오고 싶어지지 않을까. 빈손으로 나오면 왠지 미안해지는 그런 곳 말이다. 나쁘게 말하면 사람 기를 죽이는 곳이고.

     무엇이든 일단 기싸움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는 손님이 사간 상품은 가급적 바로바로 채워 놓는다. 나중에 한꺼번에 해도 문제는 없으나 왠지 그게 몰아서 하는 것보다 편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나의 문제라면 문제다.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내 바로 뒤의 근무자에게 선물할 책을 찾다가 나의 책 구매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명히 내 기억 속에는 그 책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찾지 못하고 애를 먹었다. 꺼내서 보고는 제자리에 놓지 않고 아무 데나 툭 던져놓는 버릇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책들은 구분 없이 너저분하게 뒤죽박죽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책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감정에 틈이 벌어져 책을 찾기 전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시간과 감정의 낭비가 생겨 버렸다. 


      이 참에 책장 정리나 해야겠다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말았다. 특별한 약속도 없는 쉬는 날이었고 스스로에게 밀려든 실망과 짜증을 정리를 통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론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그러한 사정으로 예정에 없던 다분히 즉흥적인 책장정리를 하게 되었다.

나에게 책이 많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는 거.

      책을 수집하는 취미를 갖고 있는 것 치고는 책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어떤 일관성도 없다. 표지가 예쁘다거나 두껍다거나 독특한 색이 있다거나 하는 특이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수집을 위한 구입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보여주기 위해서 구매했을까? '나는 이런 책들을 이렇게 많이 읽었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타인이 또는 지인이 우리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자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최근 십여 년간을 뒤돌아 봐도 내가 사는 집에 가족이 아닌 사람이 온 적은 없었다. 아니 딱 한 번 있었다. 그마저도 그 사람은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책이 있는 방에는 들어가지도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읽지도 않은 책들이 왜 이렇게 많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충동구매가 원인 중에 하나일 테고 또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만 책들도 있는 것을 보니 끈기가 없어서 일 테고 지적 허영심으로 너무 어려운 책들을 구입한 것도 일조했을 것이다. 내게는 책을 구입해서 곁에 두면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어떤 안정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어떤 애착인형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여하튼 충동적이며 지적 허영심에 구입하여 끈기 있게 읽지 않았던 책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랍다.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책의 숫자만 해도 137권이다. 그 책들을 모두 구매했을 경우에는 내 한 달 치 편의점 월급보다 많을 것이다. 장바구니에 여전히 책이 남아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난 교보문고 플래티넘 회원이다. 그러면 말 다한거지. 도대체 한 달에 책값으로 얼마를 쓰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책을 구입하는 데 있어 신중함 보다는 충동적이라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되었다. 


     책장 정리를 마치고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구입하지 않은 책들도 삭제해 버렸다.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구입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는데 서점과 거리가 멀어지니 점 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편의점 물건도 배달주문을 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휴대폰 안으로 들어간 세상이다.

    책을 구입하지 말고 전자책을 구독하거나 E-BOOK을 구입해서 보면 경제적이고 물리적 공간도 확보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들을 한다. 당연히 나도 해 보았다.

    무거운 책을 가방 안에 넣어 매고 다니거나 들고 다니지 않아도 좋았다. 책값도 물론 종이책보다는 저렴하다. 구독이라 건 하면 더 경제적으로 책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방식이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몇 시간 후 또는 며칠 후 읽은 곳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면 앞의 내용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을 머릿속에서 이미지화한다. 왼손으로 책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책장의 한끝을 붙들고 머릿속으로는 글들을 영상화한다. 특히 소설은 더욱더. 그게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다. 책이 주는 물리적인 질감이 내 안에 있는 다른 감각들을 깨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리고, 구입한다. 다만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동굴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지만.


    많은 것들이 거의 모든 생활이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 안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인간은 적응을 하는 것이지 적응이 되는 것이지는 모를 일이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다. 

    동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도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살아가는 동물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문이 없는 것도 닫혀 있는 것도 아닌데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가 가둬 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나씩 동굴 밖으로 꺼내야겠다.

    가장 먼저,

    책은 서점에 직접 가서 오감을 충족시키는 책을 찾아 구입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가야겠다.



    가까운 '동네 책방'이 어디에 있을까?

    또다시 휴대폰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정녕 나올 수 없는 것일까?


    걷자. 동네 한 바퀴.

    없으면 좀 더 멀리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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