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핸디앤디 Oct 18. 2024

설레임은 금방 녹아요.

     편의점은 만남의 장소다.

     가장 흔한 만남은 물건과 사람의 만남이다. 

     꼬르륵 거리는 뱃속의 굶어 죽은 귀신과 삼각김밥이 만나기도 하고, 과한 알코올 섭취로 빙빙 돌아가는 머릿속 뇌세포들과 숙취해소제가 만나기도 한다. 더운 날 타는 갈증과 시원한 음료수가 만나기도 하는 곳이 편의점이다. 이런 물건과 사람의 만남은 감정 없는 물건이 항상 기다릴 뿐 사람이 기다리는 경우는 극히 없다. 간혹 물건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한 때 포켓몬 빵이 유난을 떨던 그때를 돌아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겠다. 그때는 사람이 물건을 기다렸으니까.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물건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찾던 물건이 없으면 대체 상품을 구매한다던지 그냥 나가서 다른 편의점이나 마트로 간다. 냉정하다. 잠시의 기다림도 허용하지 않는다. 약간의 아쉬움은 남겠지만.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때를 기다리는 곳이 되기도 한다.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들어오는 손님이 그런 손님이다. 비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손님. 불러 놓은 콜택시를 기다리는 손님(이런 분들이 가장 많다.)이 있겠고, 춥고 더운 날은 잠깐이나마 몸을 데우거나 식히기 위해 들어오시는 어르신들도 있다.

     전국의 수많은 편의점들이 이렇게 아주 사소한 재난을 예방하거나 피난처 구실을 하고 있다. 편의점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무언가 하나를 사 주신다. 껌 한 통이라도 말이다. 비가 그치지 않아 우산을 사갈실 때도 있다. 솔직히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하고 생각을 한다. 다만, 매장을 돌아다니지 마시고 그냥 한 곳에 앉아 계시거나 서 계시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돌아다니시지만 않으면 고맙다. 어차피 무언가를 사러 들어온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움직이면 동선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내 시선도 따라가야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닥도 지저분해진다. 역시 내 할 일이 늘어난다는 이유 때문이다. 난 역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비를 피해 들어오셨으면 비만 피하고 가셔도 좋다(사장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다만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해주시면 고맙겠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도 하는 약속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약소장소로 편의점을 낙점하신 분들은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우선 들어오면 매장을 짧게 한 바퀴 돌아본다. 특별히 찾는 물건이 일단 없다. 혹시나 먼저 오지는 않았을까, 진열대에 가려 안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여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한 바퀴 돈다. 내 시선도 따라 돈다. 그러고는 구입한 물건도 없이 실내 테이블 의자에 앉는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창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100% 편의점에서 만나기로 사람이 있는 것이다. 간혹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미안했던지 커피나 음료수를 구입해서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눈치를 미리 차단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눈길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부러울 때도 있으니까.

      늦게 귀가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학생도 있고, 연인을 기다리기도 하고, 독서실에서 귀가하는 자녀 간식을 사주려 기다리는 부모도 있다. 중고 물품 교환을 위해 거래당사자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기다리는 데는 오만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기다림에는 설레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무엇을 기다리던지 기다림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길어질수록 그 파장도 넓어진다. 물론 부정적인 파장이다. 사람이 사람을 기다릴 때는 더욱더.

     설레임이었던 기다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바심으로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설레임의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나야 할 텐데. 그래야 그들도 좋고 같은 공간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편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물건을 많이 사가야 우리 사장님도 좋을 텐데.


      기다리던 사람이 창 밖으로 보이거나 문을 열고 들어올라치면 화색이 돈다. 그때가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때때로 설레임의 감정은 흐르는 시간에 조금씩 씻겨 나가 이윽고 다양한 크기와 두께로 불안 섞인 미움의 이끼가 쌓이기도 한다. 

      그 기다림의 두께에 따라 원망 섞인 투정은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자칫 그 결이 상대의 미안함을 싹둑 잘라내기라도 하면 기다림의 마음마저도 함께 사라져 다툼으로 이어지다 문을 나서며 각자가 왔던 길로 가버리게 된다.

     간혹 극단적인 경우도 아주 드물게 있다. 기다림과 미안함의 감정이 뒤엉켜 싸움이 돼버리기도 한다. 싸우는 손님을 지켜보다가 언성이 높아지거나 나가서 싸울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끼어든다. 다른 손님이 끼어들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적의 적은 동지가 되기는커녕 두 사람은 자신들이 키운 불씨를 똘똘 뭉쳐서 말리는 사람에게 불똥으로 던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한다. 초반에 잡던지 아예 다 타버릴 때까지 내버려 두든지 해야 한다.

     그냥 내버려 둔 손님들은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워 버린 양 며칠 뒤 두 손 잡고 출입문으로 걸어 들어온다. 불안한 반가움이 스며든다.



    보통 우리는 좋은 것만을 기다린다. 나쁘거나 싫은 것에 들이는 시간은 기다린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기다림은 좋은 감정의 씨앗이다. 단지 그 씨앗이 무엇으로 발아할지는 시간만이 알고 있다.

    기다림이 아직 설레임으로 남아 있을 때 기분 좋은 무언가로 발아될 것이다.



    설레임이 녹아 내려서 조바심이 나고 그 조바심이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나쁜 감정으로 변질되기 전에 기다림을 끝내기로 약속한다.





주) ; '설레임'의 규범 표기는 '설렘'입니다. 

        저의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 '설레임'으로 표기하였음을 양해 바랍니다.




    


이전 09화 불편한 손님, 고마운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