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핸디앤디 Oct 21. 2024

예상치 못한 맛

     편의점에는 진열된 물건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손님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취향도 다르고 편의점에 들어온 목적도 다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주머니 속 사정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유들은 물건을 고르는 데 있어 많은 영향을 끼친다.

     어떤 이는 매운맛을 선호하고 어떤 이는 간식을 사러 오고, 어떤 이는 긴요하게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온다. 개중에는 원하는 물건이 없거나 가격이 비싸서 대체품을 찾다가 그냥 나가시는 분들도 있다.

     목적도 취향도 다른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아마도 신도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일은 인간과 신을 일대일로 붙여 놓아도 불가능할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은 특히 선택 부분에 있어서는 신의 영역이 아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출출해서 무언가 요깃거리를 사러 들어온 손님이 많다. 라면이 땡겨서 컵라면 진열대 앞에 섰는데 50여 개의 선택지가 눈에 들어온다. 볶음면을 먹을까 그래도 쌀쌀할 때는 뜨근한 국물이 있어야겠지 하며 고민을 한다. 특히 젊은 손님들의 경우에는 더 고민이 깊어진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볶음면은 우선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선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중년의 손님들은 젊은 층의 손님들보다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더 짧다. 선택의 폭은 머무는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연령대만큼 차이가 난다. 젊은 층은 다양한 상품에 눈길을 주고 손길을 내민다. 반면에 나이가 드신 분들은 대부분 스테디셀러, 즉 전통적으로 꾸준히 팔리는 것을 집어 가시는 경우가 많다. 그건 아마도 나이가 늘어나면서 반대로 호기심은 줄어들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편의점에서는 연륜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의 장점은 시간을 아끼고 만족도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주는 상큼함은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시고 떨떠름하다 할지라도. 때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쩌다 마주친 상품이 내 인생 최애 상품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청소년층은 눈에 들어오는 선택지는 많으나 막상 선택하려면 제약이 많이 따른다.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이 물건을 고르는 데 있어서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는 돈이다. 정해진 용돈 안에서 소비를 해야 한다. 충동구매는 어림도 없다. 이것도 저것도 먹고 싶고 갖고 싶은데 용돈은 늘 부족하다. 아이들에게는 용돈을 올려 받는 것보다 성적을 올리는 게 더 쉽지 않을까?


     가장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은 젊은 층의 손님들이다. 이들은 어느 정도 자유롭다. 취향의 폭만큼이나 지갑의 사정도 천차만별이다. 상술에 쉽게 흔들려 지갑을 털리는 청년도 있고 경제사정에 맞게 합리적으로 지갑을 여는 청년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 넓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만큼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 뚜렷한 목적이 없으면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 선택이 갉아먹는 시간의 길이도 길어졌다. 편리함의 대가는 돈뿐만 아니라 시간이라는 관념까지도 포함되는 게 아닌가 싶다.


     편의점에 들어와 물건을 사는 데에도 이렇게 간단치 않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그 미미한 선택마저도 이유가 있고 핑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안에 후회도 있고 미련도 있고 희열도 있고 만족도 있다.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약간의 지침을 얻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또 쓴맛을 볼지라도 골라야 한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내게 쓴 맛을 줄지 단 맛을 줄지는 선택한 자만이 알 수 있다.



     선택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듯하다.

     인간은 세상에 나올 때부터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많은 것들, 특히 중요한 선택들은 내가 아닌 부모와 같은 보호자들이 해 주었다. 그저 그들이 선택해 준(그것도 나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 아래) 것들을 따라야만 했다. 선택을 위한 연습을 할 수 없었고 있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선택이라는 벽에 부딪히면 당황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더 두려워지고 어려워졌다.


      어차피 인생은 맨땅에 머리박기다. 어떠한 선택을 해도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다 알면 재미없잖아.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또 다른 선택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인생은 많이 달라진다. 굴복할 수도 있고 한 번 더 맞짱을 뜰 수도 있다. 보이지 않던 선택지가 안개를 겆어내고 나타날 때도 있다. 그것을 운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운도 찾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내게도 그랬던 것 같다. 노력 없이 누군가 동아줄을 내려 주기만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요행을 바라왔던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내게는 선택지가 없거나 단 하나만 남았다고 느꼈던 때가 있다. 그런데 그때마저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다만 보려고 하지 않았고 찾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뒤돌아서 또 실패한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다른 선택지가 분명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급하고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다 보니 점점 더 가라앉아 버렸다.

그렇게 경험을 하고도 또 편안하고 안전한 선택지만을 찾았다. 그런 선택지는 또다시 나를 물속으로 떠밀어 버렸다. 세상에는 안전하고 편안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안전하고 편안한 것을 찾으면 안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 삶은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균형.


      균형 잡힌 삶을 찾아가는 길에는 매일의 선택지가 있다. 그 안에는 예상치 못한 맛이 숨겨져 있다.

      익숙하지 않던 것도 새로 나온 것도 좋아하지 않던 것도 모두 내 선택지 안에 있다. 인간에게는 모든 게 다 처음이다.

신은 인간에게 전생의 기억대신에 호기심을 주었다. 인간이 재밌게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진 선택지와 함께.


      그 맛이 당신의 입맛에 맞기를 바란다.




이전 10화 설레임은 금방 녹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