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를 잔뜩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그 무게가 버거워 더디게 와서는 내 몸에 불쾌한 물기만 남기고 사라진다. 거기까지면 그런대로 봐 줄만 하다. 그런데 그 바람은 남기는 것만 하면 내가 싫어할까 두려운지 뭔가를 하나 가져간다. 나의 채취다. 물론 좋은 냄새도 아니지만 그렇게 가져가면 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옆 사람에게 그걸 또 나눠 준다. 짜증을 싣고 다니는 그 눅눅한 바람. 내가 여름을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여름.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라 더욱 묵직한 바람이 내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알바 면접을 오전으로 잡았다. 편의점 사장도 10시가 좋다고 했으니 내 편의만 도모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다른 시간, 그러니까 불쾌지수가 가장 높은 시간에 보자고 했어도 응했을 나니까. 아직 방학철이 아니라서 알바를 구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크게 벗어났다. 구직자는 많았고 구인자는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섯 곳의 편의점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여기 달랑 한 곳에서만 면접 보라는 연락이 왔다. 그것도 일주일 만에.
그 편의점 사장은 우선 성별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일단 감점을 했다. 나에게 대놓고 여학생을 구하려고 했는데…라는 말로 첫인사도 없이 면접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최저시급에 주휴수당도 못 준다. 4대 보험은 가입해야 하고 본인부담금은 월급에서 제한다. 그래도 일을 할 생각인가 물었다. 당신의 하소연 섞인 이야기만 주야장천 해댔다. 내가 얼마 벌지 못하니 너희도 감수해야지. 그렇지 않니? 요약하면 이런 얘기였다.
이게 뭐지 일을 해달라는 건가 하지 말라는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구구절절하려고 했으나 참았다. 목젖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켰다. 얘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바로 전 알바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던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욱’해서 몇 마디 하다가 잘린 주제에 뭐라 해봐야 나만 손해지.
몇 명의 알바들 시급 갉아서 자기 삶에 간이라도 치려 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 말을 삼키고 다른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하고 뒤돌아서 나오는데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자리도 많지 않은데 그냥 한다고 해야 했을까. 한껏 풀 먹인 듯 뻣뻣했던 어깨는 습한 공기에 짓눌려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여름은 정말 짜증 나는 계절임에 틀림없었다.
눅진한 공기가 면접의 불쾌한 끈적임을 더해감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저만치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다. 순간 뛸까 하다가 급한 일도 없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가로막아 멈췄다. 다음 신호에 건너가자.
올록볼록한 노란색의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에 발을 걸치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바닥에 껌이 붙은 것도 아닌데 하릴없이 점자블록에 발바닥을 훑어댔다. 내가 밟고 있는 점자블록의 볼륨감이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적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러다 이 블록은 존재의 이유를 곧 잃어 버지리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애꿎은 보도블록에게 미안한 마음에 발을 멈추고.
바로 그때. 베이비파우더향이 바람에 살랑살랑 실려왔다. 그 가볍고 상쾌한 향과 함께 하얗고 아담한 캔버스 운동화가 꾀죄죄한 내 신발 옆에 버썩 멈춰 섰다. 옷깃이 닿을 듯 아주 가깝게 다가서는 느낌이라 흘기듯 옆을 바라보았다. 날도 더운데 횡단보도에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공간이 여유 만만인데, 굳이 내 옆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서 있는 이유는 뭔가 하고, 따지듯 묻는 눈길로 그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집 부뚜막에 올라온 고양이를 보듯이 말이다. 흘깃한 눈길이 너무 매서웠나 싶기도 하고 여자 옆에 붙어 서있는 것도 민망해 반 발짝 옆으로 비켜섰다. 너무 보폭을 멀리하면 자칫 피한다는 느낌을 줄 것도 같고 ‘더운데 내가 왜 자리를 움직여야 하지’하는 알량한 자존심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베이비파우더향이 좋았다. 그 향이 나에게서 나는 장마철의 꿉꿉한 냄새를 조금이라도 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물론 있었다. 그녀로 인해 공기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초가을 아침 공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2분이 채 안 되는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내가 싫어하는 눅진한 여름을 한순간에 좋아하는 상큼한 가을로 바꾸어 버렸다.
그 소녀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설마 나한테 인사를 했을까 싶어 당황하며 오른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길거리에서 나한테 인사를 할 만한 사람은 ‘인상이 좋아 보이시네요. 도를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종교적 신념이 가득한 사람들 외에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성별이 여자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가능성의 확률이 거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순간 벙벙할 수밖에. 엉겁결에
“예, 안녕하세요.”라고 답을 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부끄러움을 타는 듯하더니 그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꼬리를 감추었다.
“오늘 비가 올까요?” 뜬금없는 질문이 그 소녀를 훑어보게 만들었다.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왼쪽 팔에는 우산이 걸쳐져 있었고 오른쪽 손에는 작은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나를 포함한 신호를 기다리는 횡단보도 앞의 행인들은 우산이 없었다.
“오후에 비가 잠깐 온다는 예보를 본 것 같기는 해요.”라며 오전에 집을 나서며 본 날씨 앱의 기상예보를 기억나는 대로 얘기했다.
“어디 가세요?” 라며 그녀는 질문을 이어갔다.
“집에 가요.”라며 답하고, 의례적으로
“어디 가시는 길이신가요?”라고 질문을 되받아 쳤다.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그 소녀는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일까 순간 궁금하기도 했다.
“일하러 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무슨 일을 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 주변 차량의 소음으로 정확히 듣지 못했다. 일을 하러 간다고? 직업이 있다고? 나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부러운 마음이 일기도 했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좀 더 귀를 기울여 집중해서 들었어야 하는데 미안했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팔과 다리, 그리고 약간의 어눌한 말투로 봐서 혹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 미안했지만 그래도 다시 물었다.
“잘 못 들었는데 무슨 일을 한다고 했어요?”
“커피전문점에서 일해요. 카페 이름은 ‘준’이에요. 영어로 제이, 유, 엔, 이” 그 소녀가 ‘유’ 발음을 하는 사이에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그녀와 나는 동시에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 떼서 길건너로 향했다. 그 소녀의 걸음걸이는 짐작한 대로 조금은 부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고 다만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뿐이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나란히 걷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것일까? 긴장을 했을까? 오히려 내 발걸음이 더 어색했던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거진 다 건너왔을 무렵
“나 거기 어딘지 알아요. 커피 마시러 가도 될까요?”
“예, 한 번 오세요. 커피 맛있게 내려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그 소녀는 카페로 가는 왼쪽 길로 나는 직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소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소녀의 옆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알바 자리는 구하지 못했다. 일자리라도 구해지면 그 소녀가 일하는 카페에 가보려고 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도 없어 점점 더 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그 소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하면서도 알바자리도 못 구한 주제에 다른데 마음을 쓴다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는 핑계와 합리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 소녀가 일을 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이는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갔다. 그럴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한 번쯤 가서 보는 거야. 어때 그냥 자연스럽게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거야. 내가 그 소녀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다음 날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카페로 갔다.
분명 아는 길인데도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들어서는 유리문에 ‘알바구함’이라는 문구가 내 눈높이에 딱 맞게 A4용지에 곽 차게 쓰여 있었다.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을 수 있겠는 걸 하는 예감이 카페의 에어컨 바람을 타고 시원하게 내 몸을 휘감았다. 그 소녀가 기억하지도 못할 추레한 며칠 전의 모습을 지우려 짐짓 자신감이 넘치는 자세로 유리문을 들어섰다. 하지만 그 소녀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주문대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엉거주춤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주문부터 해야 하나, 그 소녀를 먼저 찾아야 하나, 알바를 물어볼까? 머릿속은 팥빙수 기계 속의 얼음처럼 빙빙 돌아가고 있음에도 몸은 다행히 계산대 앞에 놓여 있었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분이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이 눈에도 내 행동이 커피 마시러 온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서비스업을 오래 해보신 분들의 감이란 가끔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장님 말씀으로 그 소녀는 그저께까지 일을 하고 그만두었단다. 그래서 그 자리를 대신할 알바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면접을 보고 내일부터 일하기로 하고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혹시나 그 소녀를 만날까 싶어 그때 그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볼륨감을 잃어버린 노란 점자블록이 며칠 새 더 희미해진 느낌이다. 시원하고 산뜻한 여름과 알바자리를 물려주고 간 그 소녀의 안녕을 빌어본다.
그렇게 한차례 여우비가 다녀갔다.
사족 : 그 소녀는 요하네스 페이메이르가 그린 초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과 너무나 닮았다. 다시 올 수도 볼 수도 없을 그 순간의 표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