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 프롤로그

by HeartStory



내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편의점 앞 골목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반려동물 관련 가게들을 전전했다. 애견, 애묘 샵들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주린 배를 채우곤 했다. 허탕을 치는 날들이 잦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 근처에 있으면 떨어지는 콩고물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날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의 품에 안겨 들고나는 멍이와 냥이를 볼수록 마음에 상처만 깊어갔다. 그곳을 떠난 이유는 배고픔보다는 외로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끼니를 거르는 날이 사라졌다. 간간히 간식을 얻어먹는 기회도 잦아졌다. 위치선정을 잘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뛰어난 선인안이 한 몫했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이 인간과 동물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인간의 사랑을 먹고사는 반려동물이라면 더욱더 큰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나는 이것을 선인안이라고 명명했다.

야구 선수들에게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가려내는 선구안이 중요하듯이 나와 같은 길고양이게는 선인안이 꼭 필요한 깜량 중 하나이다. 그 능력에 따라 간식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나에게 간식을 사줄 만한 사람을 잘 골라서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불쌍한 눈빛을 보내는 일은 다른 고양이들도 잘하지만 그 대상을 고르는 선인안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이다. 물론 나는 그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한다. 나도 가끔은 삼진 아웃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투수를 탓해서는 안된다. 고양이의 무늬가 다 같지 않은 것처럼 인간도 저마다 다른 취향이 있을 테니 이해한다. 더군다나 내가 가진 초능력에 비하면 선인안은 껌이다. 돼지본드와 껌의 접착력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그래도 씹던 껌은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려라. 인간들아.


도윤을 만나기 전까지 편의점 사장은 내 충실한 조달자였다. 처음 그녀를 만난 날, 나는 텅 빈 뱃속을 안고 유리창 너머 매대에 진열된 고양이 간식만 바라보다가 마침내 필살기를 꺼냈다. 애처로운 눈빛,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다. 사장은 계산대 안쪽에서 대수롭지 않게 창밖을 흘긋흘긋 쳐다보았다.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애달픈 내 눈빛과 마주친 그녀는 미소를 짓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는 밖으로 나와 모퉁이에 작은 플라스틱 용기를 내려놓고 손에 든 캔을 몇 번 흔들더니 뚜껑을 열었다. “뽀오옥, 딱” 아.. 그 소리는… 굶주린 내 배 속까지 곧장 스며들어, 허기를 더욱 세차게 흔들었다. 사람들이 바삭한 치킨을 한 입 베어 물고 캔콜라를 따는 소리와는 비교가 안된다. 사람들에겐 그저 흔한 고양이 간식 캔일 뿐이지만, 내게는 며칠째 집을 비웠던 집사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들리는 환의의 찬가다. 이제서와 드디어가 섞여 꽉 닫혀 있던 문이 단숨에 열리는 듯한 해방의 소리였다. 나는 꼬리를 번쩍 세웠다. 캔을 든 손을 내게 내밀고는 “이리 와서 먹어”라며 남은 한 손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한 발 다가서니, 캔의 내용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잠깐의 순간에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의 두 눈은 밤샘근무가 주는 피로감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마치 깊고 맑은 우물에 붉은 단풍잎이 떠 있는 듯. 그 우물 안에 퇴근 후 그녀가 집의 현관을 들어서자 레트리버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가 반갑게 달려드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엷은 미소와 함께.

허기를 채우고 편의점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배가 부르니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여서 그랬을까? 왠지 이곳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은은한 주황의 가로등이 그렇고, 군데군데 모여있는 쓰레기들이 그렇고, 야트막한 구릉 따라 이어진 산책로가 그렇고, 이 길을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멍이와 사람들이 그랬다.

길 건너에는 새로 지은 듯한 아파트 단지가 있었지만 이쪽은 오래된 허름한 건물들이 대로를 따라 줄을 섰다. 왕복 8차선 도로의 너비가 이쪽과 저쪽 사이의 거리감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 줄 끄트머리 코너에 3층 건물이 있다. 1층 오른쪽에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있고 왼쪽에는 편의점이다. 건물 벽면 2층과 3층 사이에는 ‘카페 카뮈‘, 맨 위에는 ‘윈 스터디 카페’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한 건물에 카페가 두 개나 있다니. 이래도 되는 거야? 같이 살자는 것인지 함께 죽자는 것인지, 어리석은 인간들. 나중에 스터디 카페가 라테 파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약간 민망했다. 뭐, 그렇게들 배워가는 거 아니겠어.

그렇게 편의점 부근에서 며칠째 노숙을 하던 때에 나의 반려인 도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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