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 4

by HeartStory

출입문에 달린 고양이 목에나 걸어줄 만한 방울이 ‘딸랑딸랑’ 반가운 소리를 낸다. 어느 가게든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는 경쾌하다. 풍경이 울릴 때면 앞발보다 볼에 난 수염이 먼저 나선다.

“안녕, 라테 한잔 부탁해.” 하며 계산대 앞 바 테이블 의자에 익숙한 몸짓으로 걸터앉았다. 편의점 사장이다. 단숨에 달려가 그녀 옆 의자에 올라앉았다. 무릎에 올라앉을까 했지만 도윤이가 샘이라도 낼까 싶어 참았다. 편의점 사장이 내게 무릎을 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불편하게 걸친 엉덩이와 무릎 사이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얹혀 있었다. 라테가 바 테이블에 놓이자 “소비기한이 며칠 남지 않아서 가지고 왔어.”하며 검은 봉지를 도윤에게 건네주었다.

“사장님 애들 주시지 미라까지 챙겨주시고.. 혹시 제가 먹을만한 건 없을까요?” 도윤은 고마운 마음과 함께 너스레를 떤다.

“토리랑 애들 먹일 것도 충분해. 게네들은 신상 나오면 테스트 겸 가져다주니까. 미라를 거둬줘서 기특하기고 하고. 도윤 씨 먹을 것도 있어. 이건 선물이야. 신상 초콜릿. 미라랑 나눠 먹으면 안 돼. 미라에게 초콜릿은 독약이나 마찬가지야.”

“어.. 이거 웃돈 주고 먹는다는 그 초콜릿 아니에요? 고맙습니다. 보답으로 오늘 라테는 제가 사겠습니다.”

“아냐, 아냐! 그럼 선물이 아니지.” 손사래를 치며 허리춤에 두른 작은 가방 속 카드를 꺼내 도윤에게 들이밀었다.

“지금이야 너도나도 찾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런 제품이 있었다는 거 기억도 못할걸. 난 별맛도 모르겠구먼.” 하며 사실에 겸양을 보태듯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남들이 하는 거, 먹는 거 다 똑 같이 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왜 그러지. 인간들은 나보다 지능도 높은 걸로 아는데. 내가 보기엔 다 특별한 인간들이던데. 그걸 왜 모를까? 어쩌면 내 지능이 더 높은지도 몰라..

“편의점도 그렇지만 여기도 손님이 많이 줄었네. 설마 내가 첫 손님은 아니겠지?” 왼쪽으로 서서히 돌아가던 고개가 카페 내부를 스캔하고 제자리를 찾는다.

“그럼요.. 두 번째예요.” 멋쩍은 표정으로 답한다.

“여전히 철학 책들이 빽빽하네. 다른 종류의 책들로 바꾸거나 분위기를 전환해 보는 건 어때?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로 말이야.” 하며 인테리어 견적을 뽑듯 다시 한번 고개를 좌우로 돌려 본다.

“거의 모두가 할아버지 책인 데다가 솔직히 제 손 때도 많이 묻어 있어서 정을 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디다 옮겨 놓을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고요.” 하며 내 생각을 묻듯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내 의견을 묻는 거라면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하는 눈빛을 보낸다.

“할아버님이 이 카페 인수하기 전에는 손님 많았는데.. 하긴 그때는 '사주카페'가 유행이었을 때였고, 그 시류에 걸맞게 여기도 사주카페로 간판을 걸고 있었으니까. 아직 건물 뒤쪽 벽면에 간판이 그대로 있어. 낡은 데다 다른 건물이 들어서서 일부만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주카페 아니냐고 묻는 손님이 있어요. 마침 할아버지가 계실 때면 손님들을 박대하지 못해 상담해 주시기도 해요.”

“요즘에도 할아버님이 사주 봐주셔?” 가려고 일어서다 놀란 듯 다시 앉으며 묻는다.

“그런 건 아니고. 하소연 같은 거 들어주시고 조언정도 해 주시는 거죠. 특별히 복채랄까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 그렇지. 이제는 연세가 있으셔서 예전 같지 않으시겠지. 힘들 때 할아버님 도움 많이 받았는데.. 그때가 좋았지 싶네. 그만 가봐야겠다. 라테는 여기가 최고야.”하며 입에 비해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미라도 고맙다고 전해드리라고 하네요. 저도 초콜릿 잘 먹겠습니다. 또 뵐게요.” 하며 인사를 했다.

“아.. 참. 미라 이름은 미라가 생각나서 지은 거야?” 하고 나가려던 몸을 돌려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시쳇말로 뜬금포였다. 마치 ‘미라’라는 명찰을 달고 있던 사람을 아는 것처럼. 내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 ‘미라’라는 사람의 존재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에 놀라 귀를 바짝 세웠다.

“미라요? 그냥 그 이름이 순간 떠올라서 지었어요. 사장님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인가요?”

“아니야. 이름 예뻐서. 잘 지었네. 여기 작명도 한다고 써붙여라.”하고 뭔가 실수한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뜬금포의 표적은 아무 피해가 없는데 뜬금포를 날린 사람과 나는 한 방 먹었다. 편의점 사장은 뭔가 알고 있다. 뭔가를 확인차 물은 질문을 애써 다시 감추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그 질문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음에 놀란 것이다.



오늘은 목요일이다. 카페 카뮈의 명목적인 사장인 도윤의 할아버지가 나오시는 날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나오신다. 도윤이 바깥 볼 일을 보는 몇 시간 정도 있다가 가신다. 안 오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다른 요일에 대신 오는 것도 아니다. 고집이 있어 보이는 인상은 아닌 것을 보면 할아버님만의 어떤 루틴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눈빛을 읽기는 했지만 나이가 지긋한 인간의 눈을 본 다는 것은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깊은 과거와 그 보다 더 깊은 미래를 봐야만 한다. 남다른 능력에도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할아버지가 나오시는 날에는 손님도 덤으로 함께 따라온다. 동시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몇 십분 정도의 편차를 두고 온다. 항상 할아버지가 먼저 도착하신다.

도윤의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카페 카뮈에 살게 된 지 나흘만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할아버지가 나와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사람들처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들어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시간차를 두고 각기 제 갈길을 간다. 항상 손님이 머무는 시간이 더 짧다. 이런 패턴이다. 하지만 이런 패턴 속에서도 묘하게 바뀌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손님의 표정이다. 무표정하거나 어두운 낯빛으로 들어왔다가는 편안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간다. 음료에 무슨 약이라도 탄 듯 말이다. 그래서 손님이 먹다 남은 음료를 먹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만 했다. 나에게 인간들이 마시는 음료는 쥐약과 같다. 특히 카페인과 알코올이 든 음료는 더더욱. 식초는 냄새도 싫다. 이런 거 알려주면 꼭 나쁜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하튼 도윤의 설명으로는 할아버지보다는 손님이 말을 많이 하고 할아버지는 가끔 고개만 끄덕일 뿐이라고 한다. 음료에 약은 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어떤 마법을 부리는 것일까? 고개를 끄덕이며 최면을 거는 걸까? 고갯짓은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도윤은 할아버지가 오는 날이면 긴장한다. 할아버지와 내가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그래도 사장이니까, 공과 사는 엄격하게 구분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묘한 어색함은 오늘도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도 씻겨지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일까?

내 아지트가 할아버지와 손님의 전용석이다. 할아버지는 늘 햇살이 나른한 오후에 온다. 그 시간에 맞춰 창가에 요염한 자세로 눕는다. 따스한 기운이 매끄러운 내 털 위로 미끄러진다. 보호막을 두른 듯 오감이 차단된다.

손님이 들어와 할아버지를 찾는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될 무렵 보호막이 사라진다. 같은 자세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혹시 그에게도 나와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올 때마다 에너지를 충전해 두고 할아버지의 움직임을 따라 오감 속 신경세포들에게 경계태세를 갖추게 한다. 매번 특이한 점은 찾지 못하지만.

손님은 주저리주저리 속에 있는 말들을 쏟아낸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가끔 한 마디씩 하는 할아버지. 그의 눈빛에서는 공감이라는 오감을 합친 것보다 밝은 빛이 발산된다. 아마도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법이 아닐까 싶다.

도윤이 알고 있는 할아버지의 마법은 융합적이다. 언젠가 도윤이 할아버지에게 비결을 물었을 때 “같은 극이 마주 보고 있는 자석의 방향을 살짝 틀어주기만 하면 돼.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돼.”라고 답했다고 한다. 철학적이면서도 물리학적인 말이다.

할아버지는 생소한 철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태어난 날과 시간만 묻는다. 그것마저도 형식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영 엉터리다. 그래도 카페에 온 손님은 안고 들어왔던 불안이나 고민을 툴툴 털어 버리고 간다. 탈탈은 아니기에 여전히 무언가 찌꺼기는 남기 마련이다. 이것이 또 쌓이고 자라 다시 카페를 찾기도 하겠지. 간혹 두 손에 작고 희미한 반딧불을 조심스레 담아 가는 사람도 있다.


손님들의 미래를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쯤이면 도윤의 따가운 시선이 비수가 되어 날아온다. 혹시라도 할아버지에게 내 능력을 과시할까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눈치다.

인간들은 가끔 보면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쉽고 빠른 것을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가진 능력을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재미없을 거야. 상상력을 잃어버릴 테니 말이야. 미래를 안다는 것은 스스로가 상상한 세계에 대한 믿음과도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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