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손님들이 오고 갔다. 최대한 그들의 눈길을 피하며 그동안 노숙에 따른 피로를 풀었다. 물론 내가 찜해 둔 자리에서. 잠깐 잠들었던 것 같은데 창으로 들어오던 빛은 어느새 농익은 오렌지 색을 띠고 있었다. 즐거움이 담긴 말소리에 귀가 가닐가닐해서 잠이 깼다. 주문대 앞에서 도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자가 낯이 익다. 오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다. 카페에 온 단골손님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혹시 둘이 연인? 주책없는 호기심과 오지랖이 발동한다. 슬슬 기지개를 켜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다가갔다. 발바닥 젤리를 최대한 활용해서 소리 없이 슬금슬금 다가가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역시 여자의 육감이란.
“어머, 네가 미라구나. 반갑다. 나는 수연이야.” 라며 마치 내가 사람 말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르렁’하며 반갑다는 눈빛으로 수연에게 답하고 도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벌써 내 개인정보를 수연이한테 팔아먹은 거야?’하는 눈빛을 도윤에게 힘주어 보냈다. 도윤은 눈을 피했다. 나는 도윤의 눈길을 따라 방향을 틀어 눈을 보고 다시 한마디 했다. ’ 네가 어디까지 얘기를 했냐에 따라 내가 수연한테 하는 행동이 달라진다는 거 몰라?’ 멍청아라는 말은 뺐다. 도윤은 길냥이인 내가 귀여워서 같이 살기로 했다는 내용 정도만 전했다고 했다. 다 말해 주었어도 좋았을 텐데 사람들끼리는 서로 보는 눈이 없는 거 같아. 수연이의 맑고 깊은 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친해지면 좋겠다고.
그녀와 함께 겨울을 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녀는 원룸에 살고 학비를 벌며 공부하는 학생이라 내가 미리 포기했다. 그녀에게는 마음은 있지만 돈이라는 여유가 없어 나에게 간식을 많이 못 사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몇 년이 지나면 상황이 달라지긴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당장 이번 겨울이니까.
수연은 커피 향이 가득한 머그컵을 들고 창가 쪽 바 테이블로 간다. 마치 자기 집 거실에 있는 듯 자연스럽다. 컵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앉는다. 나도 그녀를 따라 바 테이블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펼쳐 놓은 노트북의 화면을 슬쩍 훔쳐본다. 영어와 숫자, 특수문자가 얼기설기 얽혀 있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비록 고양이지만 영어와 일어 정도는 읽을 줄 안다. 한동안 자판을 두드리던 손놀림을 멈추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표시된 곳을 펼친다. 그나마 그 책 안에는 신경망, 알고리즘, 딥러닝 같은 어디서 본듯한 단어들이 눈에 눈에 들어온다. 유튜브에 취업하려고 하나? 그녀의 눈을 통해 언뜻 본 미래와 지금 보는 책은 접점이 없어 보였다. 말을 해 주어야 하나? 하지만 도윤과 한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 여기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노숙으로 돌아가면 그때 알려줘야겠다. 그런데 그때까지 수연을 만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도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수연의 공부를 방해할까 싶어 참견하려는 기세다. 아니나 다를까. 도윤이 수연과 내가 있는 쪽으로 온다.
뒤숭숭한 마음 탓인지 도윤이 다가오는 소리 때문인지 수연은 느슨한 책 속의 신경망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어깨는 작은 한숨에 따라 천천히 떨어졌다.
도윤은 오랜 친구처럼 익숙하면서도, 동생 같은 안쓰러움이 섞인 눈빛을 머금고 수연의 옆 자리에 앉았다.
“수연아.” 도윤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오늘은 공부가 잘 안 되는 모양이네?”
수연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커피맛이 날 것 같은 미소를 짓는다.
“네… 아무리 해도 집중이 안 돼요. 이 전공이 저랑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말끝이 떨렸다.
노트북 화면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지쳐 있었다.
“꽤 오래 고민해 왔던 것 같네. 전공이 안 맞는다는 생각.”
“네.”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는 그냥 전망이 좋다고 해서 선택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제 마음은 자꾸 다른 데만 가요. 뭘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도 용기가 없어요.”
창 밖을 보는 수연의 시선은 어디에도 가닿지 못했다. 두 눈에 힘을 주고 수연의 눈동자 속을 들여다본다. 흐릿한 초점 속에 짧지만 압축해 놓은 듯한 쇼츠영상이 스쳤다.
강의실 맨 앞 줄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수연의 모습. 책상에는 법전이 놓여 있고 강의를 하는 교수의 손끝으로 한자로 된 법률 용어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꼬리를 한 번 흔들고, 도윤을 향해 눈을 맞췄다.
도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눈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마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힌트’를 얻은 듯
그는 수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수연아.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 것은 또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도… 지금 전공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은 있는 거지?”
수연의 눈이 커졌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도윤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군고구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카뮈가 그런 말을 했어. ‘인간은 자기 길을 선택하는 존재다. 다만, 그 길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할 때만 열린다.’ 넌 방금 정직하게 말했잖아. ‘이건 내 길이 아니다.’ 그 말은 이미 너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는 거 아닐까? 불안은 용기 앞에서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야.”
도윤의 말에 내 꼬리가 갑자기 수그러들었다.
수연의 어깨도 다시 한번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눈빛 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은 풀린 듯했다.
“정직하게… 제 마음한테 솔직해지라는 거군요.”
그녀는 노트북을 덮고, 돌체라테 맛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오늘은 그냥, 그 말이면 될 것 같아요.”
수연의 가벼운 뒷모습이 풍경소리와 함께 잦아들면서 카페에는 다시 불안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마도 수연이 버리고 간 불안의 부스러기가 아닐까 싶다.
도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소파에 올라가 앉는다. 눈치가 빤하다. 수연의 미래를 담아 보낸 눈빛에 대해서 물어볼 게 틀림없다. 너무 일찍 내 능력을 과시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삶도 아니고 수연이다. 내 마음이 그러라고 했다. 수연이가 내 능력을 눈치챈 것도 아닌데 설마 나를 쫓아내지는 않겠지. 그래도 도윤의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수연이 나가고 바로 손님이 들어와서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이참에 나의 진짜 능력을 솔직히 고백하는 게 좋을까? 오히려 내 능력을 이용하려 들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어쩐다.
사람들의 과거나 미래를 본다는 것은 나에게는 저주다. 차라리 모르면 속이 편하다. 때로는 아름다운 과거와 찬란한 미래를 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만족할 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이 내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 능력을 이용해서 간식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미안하지만 우리 냥이들은 그런 능력이 없어도 마음먹고 간식을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알량한 자존심이 아니다. 나는 그런 하찮은 것에 내 능력을 이용하고 싶지 않으며, 그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지금 내 얼굴이 창백해 보이지 않니?
도윤은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서빙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2분도 되지 않아 헐떡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손에 츄르가 들려 있다. 역시 도윤이는 착한 데다 눈치까지 빠르고. 내가 사람하나는 잘 골랐단 말이야.
내 앞에 다시 나타난 도윤의 손에는 츄르가 없다. 표정 또한 읽을 수 없었다. 뭐야! 깜짝 선물로 주겠다는 거야, 아니면 추궁을 위한... 그렇게 상상 속에서 냉온탕을 오가는 사이 도윤은 내 앞 의자에 앉았다. 올게 왔다.
“너 아까 그거 뭐야? 뭘 한 거야?”라며 눌러 놓았던 흥분을 토해 놓았다. 여태까지 어떻게 참았나 몰라.
“뭐, 별거 아니야. 그냥.. 눈에 보이는 걸 말해줬을 뿐이지.” 나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 마냥 답했다.
“눈에 보인다니? 사람의 미래라도 본다는 거야?” 하며 올빼미 눈이 되어 나를 집어삼킬 듯이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인간의 눈 속엔 과거와 미래가 담겨 있어. 너한테 안 보이겠지만, 내겐 보인단 말이야.” 머리를 살짝 뒤로 빼고 고개를 살짝 돌려 오른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내 거만한 모습에 의기소침해진 것인지, 도윤은 숨이 잠시 멎은 듯했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내 능력에 감탄한 걸까? 아니면 충격을 먹었나?
그런데 츄르는 어느 타이밍에서 나오는 거지? 츄르가 나오게 하려면 도윤의 나간 정신부터 제자리를 찾게 해야 했다. 잘난 채를 한 번 더 해야겠다.
“아, 그런데 너는 왜 수연이한테 그 얘기는 안 해줬어?” 라며 멍한 도윤에게 질문하며 공수를 전환한다.
“무슨 얘기” 아직 정신이 혼미한가 보다.
“너한테 내가 슬쩍 보여줬잖아. 몇 년 후 수연이가 로스쿨 다니고 있는 거 말이야.” 하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을 상기시킨다.
“어.. 보기는 했지만 믿을 수 없어서. 그게 정말 이루어질지,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말이지. 정말 그렇게 된단 말이야?” 반신반의하며 되묻는 그에게 호기심보다는 조바심이 엿보인다.
“그래, 맞아. 그게 수연이 선택한 미래야. 못 믿겠어?” 하는 눈빛을 내보낸 순간, 아차 싶었다. 너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는데…
“그럼 내가 믿을 수 있게 내 과거와 미래도 보여줘.” 아차 하는 순간 예상했던 질문이 날아왔다.
“ 아직은 안돼. 다 보여주고 나서도 못 믿거나 이제 내가 필요 없으니 여기서 나가라고 하면 난 어쩌나..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내 능력을 돈벌이에 이용할 수도 있잖아. 인간들은 늘 그래왔잖아.” 라며 둘러댔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이게 나로서는 최선이다. 실망한 눈빛이 역력하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지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내며 말한다.
“이거 먹고 살짝만 귀띔해 주면 안 되겠니?” 여기서 츄르가 나오는구나. 어쩌나, 한 박스를 준다고 해도 난 너에게 할 얘기가 없어. 안 보인다고. 그래서 내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네 옆에 있는 거라고.
“사람에게는 뭐든 때가 있는 법이야. 그때가 되면,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알려 줄게. 그때는 공짜로 해줄게. 간식을 요구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하며 설득력이 1도 없는 눈빛을 발산한다. 정말로 미안한데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의 내 관심사는 너의 미래가 아니고 내 앞에 있는 츄르다.
“너도 할아버지랑 똑같은 말을 하네. 너 혹시 할아버지 빙의한 거 아냐?” 한 결 부드러워진 눈빛이 되어 말한다.
“그건 츄르를 먹고 답해주면 안 될까?” 짧은 혀로 입술을 핥아가며 답했다.
도윤은 기운 없이 늘어진 팔을 내밀어 츄르를 먹여 주었다. 내 평생 제일 맛없는 츄르였다. 그건 선물도 아니었고 미끼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