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6회 - 한 문장 상담

by HeartStory

카페 문에 붙은 전단지가 가을바람에 살랑인다.

“정답은 없습니다. 당신의 문장을 들려주세요.”

수연의 손글씨다. 글자 하나하나에는 약간의 떨림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기대가 혼재되어 있다. 카페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의 붉그스레 한 얼굴에도.

도윤은 전단지에 테이프를 덧붙이며 “떨지 마. 다 잘 될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한 다짐이리라.

그리고 나, 미라는 여느 때와 달리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얌전히 있어야지. 내가 나설 때가 아직은 아니다. 영웅은 언제나 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짠’하고 나타나니까.


오늘은 ‘한 문장 상담’을 시작하는 날이다.

도윤과 수연이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수연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카페에 손님을 늘리는 목적이 우선 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자존감을 살리는데도 한몫할 수 있다는 생각이 두 사람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이벤트의 준비는 일사천리였다. 도윤은 카페 안 달마도 액자를 내리고 그 벽에 메모판을 설치했다. 자석으로 메모를 고정시키는 메모판이다. 반려동물이 없는 민혁이가 압정이나 핀으로 고정시키는 코르크 판으로 하자는 것을 수연과 도윤이 나를 생각해서 자석용 메모판으로 결정했다.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배려가 반복되면 그것이 당연한 줄 아는 인간과 다르다.

수연은 손글씨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달고 다니면서도 항상 작은 노트에 펜으로 메모를 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글씨체가 반듯하고 귀엽다. 글꼴이 나를 닮았다. 전단지 바탕에 내 사진을 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별점에 만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대체로 잘 만들었다. 역시 수연은 야무지다.

민혁은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전단지를 붙이거나 나눠 주었다. 편의점 사장님은 쇼윈도 유리창 명당자리에 전단지를 직접 부착해 주었으며, 단골손님에게는 직접 나눠 주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준비한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카페 안에는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났다.

책 대신 사람의 목소리가, 커피 향 대신 기대와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한 문장 상담’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씩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괴롭히는 문장을 한 줄 적어놓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모르겠어요.’

‘사람이 싫어요.’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빠라서 미안하다.’


가슴속을 떠돌던 생각들이 종이 위에 글이 되자마자 그것은 하나의 날씨가 되었다. 구름의 양, 습도, 온도, 먼지의 농도와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할아버지가 오늘은 일찍 오셨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지만 오늘만큼은 시간차를 두고 함께 온 손님은 없었다. 내 눈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빛이 걸려 있었다. 유리창을 부딪히며 들어온 햇살이 그분의 주름 사이로 스며들었다. 시간이 그 얼굴에 글씨처럼 새겨진 듯했다. 눈동자는 여전히 깊고 맑았다. 도윤의 텅 빈 눈과는 반대로.

“오늘은 시끌시끌하네.” 할아버지는 계단을 걸어 올라와 힘에 부친 듯 카운터에 손을 짚고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새로운 놀이야?”

“놀이요?” 아직 할아버지에게는 이벤트에 대해 말하지 않은 듯 도윤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놀이에 대해 짧게 변명을 섞어 설명을 한다.

“한 문장 상담이라고. 정답을 주지 말고, 그냥 들어주는 거랍니다. 수연의 아이디어예요.”

할아버지는 도윤과 수연이 기특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사람은 정답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확인하러 오니까.” 자신에게 사주가 되었든 고민이 되었든 무언가를 물으러 왔던 손님에게 얻은 경험 속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첫 번째 손님은 중년 남성이었다. 종이에 적은 문장은 짧았다.

‘내가 잘못 산 걸까.’

그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두 모금 마시고 돌아갔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커피뿐만이 아니라 묘한 여운이 남았다.

할아버지는 그의 종이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잘못 산 인생은 없어. 다만, 방향을 바꾸지 않은 인생이 있을 뿐이지.”

그 말은 누가 듣지 않아도 공기 속에 오래 맴돌았다.

나는 그의 눈 속을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길’이 이중노출된 사진처럼 겹쳐 있었다.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회한, 그리고 아직 피지 않은 웃음들. 아마 그분도 나와 같은 걸 보는 게 아닐까. 다만, 그분은 그것을 말 대신 ‘온기’로 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 능력을 전수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도윤에게라도.


두 번째는 수연이었다.

“나도 써도 돼요?”라며 쑥스러운 미소로 종이를 집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적었다. 맴도는 여러 문장 속에서 우선순위를 매기느라 고민이 길어졌으리라.

‘나는 내 선택을 믿을 수 있을까.’

역시 글씨는 단정했지만, 확신을 갖고 싶은 마음은 바둥대고 있었다.

도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지 않아?”

수연은 고개를 젓는다.

“가끔은. 근데 또 모르게 돼. 내가 지금도 도망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때 할아버지가 한 걸음 다가섰다.

“믿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야.” 그분의 목소리는 바람보다 부드럽고, 햇살보다 살가웠다.

“결과를 믿는 건 거래지만, 과정을 믿는 건 용기란다. 용기는 늘 불안과 함께 오지.”

그 말의 울림에 수연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눈 속에서 도윤의 모습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희미했지만 확실했다. 아주 오래 전의 도윤. 그는 웃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밤이 내려앉을 즈음, 사람들이 떠난 테이블에는 여러 장의 종이들이 문장의 무게 때문인지 흔들림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겨진 메모지의 문장들은 벽 한 켠으로 옮겨졌다. 마치 벽면이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모든 문장을 가슴에 담으려는 듯 하나하나에 눈길을 멈추며 날개의 깃털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참 신기하지. 다들 외로워서 쓰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다들 살아 있으니까 쓰는 거야.”

도윤이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카페 카뮈를 계속하셨어요?”

“이곳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주는 곳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는 곳이었으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잔잔한 기쁨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줄 누군가를 찾는단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자기 안의 침묵을 듣는 거야.”


수연은 벽에 붙은 문장 하나를 가리켰다.

‘정답은 몰라도 괜찮아요.’

그 밑에 할아버지의 글씨가 작게 적혀 있었다.

‘괜찮음은,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큰 공감이란다.’

나는 그 글씨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다. 정답이 아니어도, 살아 있는 건 늘 괜찮은 일이니까.


언제부터일까. 사람들이 질문보다 대답을 더 두려워하게 된 건.

내가 본 문장들은 글을 쓴 사람들의 몽타주가 되었다. 메모를 남긴 몇몇의 사람들은 답을 보려고 다시 카페를 찾을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그때는 내 능력을 발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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