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달리고 있지만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by 권희대



싸이렌 소리를 울리며 도시는 더 단단하게
사람들을 감금할 것이다




비상구의 남자는 몇년째 달리고 있지만 문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푸른빛에 휩싸인 채 표정 없는 옆모습으로 이 길이 정말 비상구라는 확신에 차있다.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한 신념으로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 희망을 품어보겠지만 마찬가지야. 때가 되면 얼음처럼 녹아내릴 희망은 유한한 에너지에 불과하지. 누구도 쉽사리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뿐. 생각은 짐이야. 어서 달리라고.

사내의 충고가 푸르게 들려오는 오후
조금 전 벽에 붙어있던 햇빛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나는 알고있다. 그는 영원히 안전지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분명 코스프레만 허락된 운명이란 게 형벌처럼 존재한다. 재능과 운이 없는자의 말로가 그러하듯.

밤이 되면
싸이렌 소리를 울리며 도시는
더 단단하게 사람들을 감금할 것이다.

모두들 달리고 있지만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비상구의 남자는
예언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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