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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희대 Sep 17. 2024

하늘에 연을 띄우듯

추석단상

처가에 다녀오느라 강변북로를 달렸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막히더군요. 밤이 되니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습니다. 그 많던 차들은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갔으려나. 어느 날보다도 환하게 빛나는 달이 또 쓸데없는 상념에 젖게 합니다.


추석에 어울리는 달이 강변북로 위에 덩그렇게 떠 있습니다. 너무나 선명해서 공을 들인다면 달 주변을 유영하는 우주선도 보일 기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완전한 구형은 아니네요. 누군가 다 된 그럼을 부러 흐릿하게 한 듯 왼쪽 끝이 희미합니다. 아직 추석이 이틀이나 남았기 때문이겠죠.


달밑으로는 강변으로 죽 이어진 높다란 빌딩들이 서있습니다. 연휴의 밤에 어울리는 군데군데 이가 빠진 사무실의 불빛들을 보여줍니다. 고향으로 간 사람이 많을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남아 일을 하고 있나 보네요. 나는 저 불빛 속에 있지 않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강변북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드라이버 중 일부는 저처럼 미세하게 원형을 갖추지 못한 달을 보고 있을 겁니다. 자연의 시간은 정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구나,라고 누군가가 차속에서 희미한 언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네요.


중추가절.


그믐날 차가운 하늘에 띄우는 연처럼, 빛나는 달 옆에 맑은 생각 하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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