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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un 13. 2023

정서와 기술의 성장을 위해

글을 쓰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얼굴을 보자마자 글은 잘 써지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한쪽에는 정서라는 주머니가, 다른 쪽에는 기술이라는 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기분인데 그 주머니가 너무 무거워 한발 한발 떼기가 여간 곤욕이 아니라고 답했다. 정서라는 주머니가 달린 발을 힘겹게 한 발 떼면, 기술이라는 주머니가 발목을 잡고, 다시 기술이라는 주머니가 달린 발을 힘겹게 한 발 떼면, 정서라는 주머니가 발목을 잡는다. 어디로 향하는 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이 한 발 한 발이 즐거우니 참 신기한 일이다.

 요즘 내 발목을 잡는 건 정서이다. 글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피하려는 모습이 보여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인 미움, 질투, 분노, 슬픔 등에 대해 나도 모르게 어물쩍 글을 쓰고 있었다.


 처음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건 합법적인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어서였다. 무술을 못해도 무협 소설을 쓸 수 있고, 우주에 가 보지 않아도 SF 소설을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등장인물이 살아 숨 쉬는 진짜 인간처럼 글자 속을 활개 치려면 감정만큼은 진실해야 했다.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은유 작가님이 쓴 ‘글쓰기의 최전선’이 손에 들어왔다. 작가님은 합평 글쓰기 강의를 오래 해 온 내공으로 작법론도 중요하지만, 글을 쓰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며 합평 경험을 아낌없이 공유해 주셨다. 그 책을 통해 내가 회피하려 했던 게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관점이 드러나는 두려움. 글로 표현된 건 응축되고 증폭된 감정인데 그것이 내 삶 전체를 뱅충맞게 보이게 하지는 않을지 겁이 났다.

 공적 자아는 맡겨진 임무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며 능숙하게 다루는 편이지만, 사적 자아는 아직 미개발지이다. 불특정 다수의 많은 청중 앞에서 그럴듯하게 프레젠테이션하는 공적인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할지 막막해 미리 머릿속에 대화 상황을 연습해 보는 사적인 나를 누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줄까!  늘 그렇게 가정에서 사회에서 가면 쓰는 법을 교육받아 왔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글을 쓰는 중입니다’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에 열심히 매진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남기고, 보여주기 위한 글이다. 글에 담긴 감정은 솔직한 게 맞지만, 처음부터 작가 서하만 보여주겠다는 경계선이 명확한 글쓰기였다. 요즘들어 이런 경계선을 확장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6월이 끝나고 7월이 오면 아마 기술이 발목을 잡을 테니 미리 김이설 작가님의 합평 강의를 신청해 놓았다. 첫 합평 수업이라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고 어떤 의견들이 오갈지 벌써 기대가 된다.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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