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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un 06. 2023

시작과 끝, 그리고 시작

글을 쓰는 중입니다

 약속했던 두 달의 잠수 기간이 끝났다. 단편  두 편을 끝내겠다는 야심 넘쳤던 계획은 한 편도 쓰지 못하는 결과를 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난 일 년보다 더 치열한 글쓰기를 하며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성장한 거 같아 착잡한 마음과 기쁜 마음이 공존한다.


 두 달 동안 내가 매달렸던 글 소재는 ‘갑작스러운 일상의 붕괴’였다. 이 소재는 벌써 십 년이 되어 가는 세월호 분향소에서 있었던 감정 조각이 그 시작이었다. 그때 나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안산으로 조문을 갔었다. 부모님 모두 집안의 막내였고, 나도 늦둥이였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빠른 나이에 ‘식’자 돌림은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모두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날 안산은 지금 순간까지도 내가 경험한 장례식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례식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렸을 때 해가 지는 중이었는지, 해가 진 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도시 전체에 진동하던 짙은 향내만은 조각도로 예리하게 뇌에 새긴 듯 지워지지 않는다. 안산시 전체가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차분한 분위기 속에 묘한 흥분감이 감도는 게 기이한 느낌이었다. 외부 손님을 맞아 부러 밝게 수다를 떨어 준 친절한 택시기사님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풀어져 분향소에 도착했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우리네 정서 씨는 2014년 5월 안산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 뉴스만 봐도 눈물샘이 고장 난 듯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던 때였다. 그래서 분향소에 들어가면 눈물이 터질까 봐 미리 손수건도 준비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분향소 정면에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공기를 나눠마시며 옷깃을 스치며 부대껴야 할 싱그러운 어린 생명들이 검은색 사각 액자에 갇힌 채 층층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박제된 아이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설치된 컨테이너 더미에는 유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사각의 두꺼운 철제 상자 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어떤 소리도 어떤 빛도 없이 어둠만 남아있었다.

 분향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누가 숨통을 조이는 듯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며 인상이 구겨졌다. 평상시처럼 아침을 맞이하고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틀었을 뿐인데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몸에 흐르던 피가 한순간에 빠져버린 그들은 통증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감히 한마디 말도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이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짧은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 사건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사고로 가족을 잃고 일상이 붕괴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의 조각이나마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구성도 끝나고 일곱 번째 퇴고할 때쯤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이런 감정을 담을만한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걸.


 감정 조각 하나도 이렇게 힘든 데 큰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글로 써낸 작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참고가 될까 싶어 518 광주에 대해 다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탄식이 새어 나왔다. 특히 그 소설이 나에게 인상 깊었던 지점은 시점이었다. 1인칭도 3인칭도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등장인물들을 2인칭 ‘너’, ‘당신’으로 표현한 게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따뜻한 배려이며 존중인지 느낄 수 있었다. 써야만 하는 실체를 쓰지 말아야 하는 개인적 느낌이 침범하지는 않을까 조심, 또 조심한 게 느껴졌다.


 시각화를 위한 자료 역할을 하는 기획서를 주로 썼기에 문장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 아직은 많이 힘들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힘든 일을 할 때 여전히 행복하다. 왜 꼭 손에 잡히지 않은 걸 잡으려 뒤쫓을 때 몰입하고 행복한지  참 잔인하다. 그리고 포기하면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어주는 영감님은 얄밉기 짝이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힘을 내 써보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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