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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May 06. 2023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글을 쓰는 중입니다

 4, 5월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며 단편 작업이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덕분에 브런치 글을 쓰는 건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어디 절간에라도 들어갔냐고 되물어 오곤 한다. 아니면 24시간 중 20시간은 책상 앞에서 맹렬히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절간도 아니고, 책상 앞도 아니다. 그저 집에서 조용히 규칙적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일출에 일어나 강아지들과 산책하고, 간단하게 간식거리로 요기한 후 고양이의 잔소리를 들으며 책상으로 와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래봤자 집중 시간은 1, 2시간 정도인데 하루 중 가장 긴장되고 치열한 시간이다. 글쓰기가 끝나면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챙겨 먹는다. 그리고 읽고 싶었던 책이나 작법서를 보며 자유분방하게 떠오르는 문장이나 생각들을 또 다른 노트에 끄적인다. 오후에는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PT에 가거나 강아지들과 산책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덕질 블로그를 하거나 예능, 드라마를 보며 자정 전에 하루를 마감한다.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쉬워 보이는 일상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글을 쓰는 시간에 쓰는 일에만 몰입하고, 그 곱절 이상의 시간을 생각을 비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채워야 하는 브런치 글도 멀리하고 있다고 핑계를 대본다.


 올해 목표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품질의 단편을 한 작품이라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표 자체가 데뷔를 미루는 비겁한 핑계이거나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닐까? 이런 식으로 천천히 글을 쓴다고 실력이 늘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라고 답을 알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되묻게 된다. 그래서 두 달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정해놓고 루틴을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이 루틴을 지켜나가고 싶어졌다. 글을 쓰는 속도는 형편없이 느려졌지만, 글의 품질은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들이 출간한 글쓰기 책들에서 왜 한 작품을 반복해서 고쳐 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퇴고를 반복할수록 글은 개미 눈꼽만큼이라도 무조건 더 좋아진다.


 최근에 일본 소설가 마루야먀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를 읽었다. 마루야마겐지라고 하면 세 가지 유명한 키워드가 있는데 백경,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 문학상을 거부한 독설가이다. 이분 역시 지인 추천으로 접한 작가였는데 날고기를 씹는 듯 야생의 느낌이 살아있는 글을 쓴다는 평이 구미를 당겨서 대표작 ‘달에 울다’를 접했고, 그다음에 이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문학작품이라고는 백경 한 권만 접하고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을 한 괴짜 천재 작가 느낌이라 괴리감이 있었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 소개와 작품 목록을 보니 50년 넘게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단편, 장편, 에세이를 출간한 순수한 워커 홀릭이었다.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는 한 가지 일에 몰입을 넘어 집착하는 프로 작가의 일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책 내용은 고독한 생활에 자신을 던져넣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공모전이나 선인세에 의존하지 말고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쌓아나가라는 좋게 말하면 FM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꼰대적인 이야기이다. 자칫 흘려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이기에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책에 나온 대로 더 외로움에 익숙해지면서도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높아진 안목에 미치지 못하는 글때문에 글쓰기에 하루하루 더 집착해 나가는 날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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