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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Mar 30. 2023

비상 주유

글을 쓰는 중입니다

 3월 한 달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진행 중이던 단편 작업도 잠시 중단했다. 이유는 23년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였다.


 나에게는 처분해야 할 작은 부동산 자산이 있었다. 몇 년 전 지방에 독립을 위해 마련한 작은 아파트가 그것이다. 생에 첫 부동산 거래였고, 내 생에 첫 집이었지만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채 소유권을 증명하는 종이 몇 장만이 손에 남았다 떠나갔다.

 몇 년 전 집을 마련한 계기는 단순했다. 부모님과 거주 공간의 분리가 진정한 독립이라 생각했기에 내 소유 집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거주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 부모님과 같이 산다고 말하면 그 나이 되도록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 취급이 지겹던 차였다.

 하지만 이제 부모님은 약해진 몸으로 혼자 생활하기 불편한 나이가 되어버렸고, 나도 안정적인 글쓰기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생활비 마련이 필수였다. 만약 집이 안 나가면 최악의 경우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파트타임 자리를 기웃거려보았지만, 구해지는 자리는 글쓰기를 당분간 중단해야 하는 풀타임 자리들이 대부분이었고, 원하던 파트타임은 면접 단계에서 틀어지곤 하니 글쓰기를 위한 자신감도 같이 바닥을 향해 갔다. 다행히 막판에 부동산이 큰 손해 없이 처분되어 한숨 돌리며 올 한해도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19년 여름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년 겨울에 모아두었던 자금이 떨어졌을 때는 5년간 경력 단절되었던 전 업계에서 갑작스럽게 일 제안을 주어서 21년 한 해 동안 행복하게 비상 주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2년 반쪽짜리 반짝 성과만 내면서 23년을 버틸 일이 막막했는데 어쨌든 다시 비상 주유에 성공해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 벌어지는 이런 행운들에 감사하며 글쓰기의 매력에 몰입하게 된다.


 더 감사한 마음이 커진 건 오랜만에 들어간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서 노동의 헐값을 뼈저리게 느낀 탓도 있다. 내가 20살에 처음으로 했던 일은 PC방 아르바이트였고, 당시에 내가 하는 일의 가장 큰 부분은 돈통 지키기와 손님이 빠져나간 자리 정리였다. 지금처럼 다양한 음식과 음료 제조 및 서빙은 하지 않았지만, 받은 월급의 총량은 지금과 비슷했다. 최저시급이 오른 만큼, 수당이 붙은 만큼 근무 시간은 줄어들고 노동의 강도는 강해진 게 요즘 알바 시장이었다.

 비단 PC방 뿐만이 아니다. 영화 다음 소희 배경이 된 콜센터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10~15년 전에는 전문적인 콜센터 업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영팀으로 한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고 근무 형태도 정규직 내지는 계약직이었다. 그러던 게 어느 순간부터 전화만 받는 파견 근무 형태의 하청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콜 처리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제로 월급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초보 사장 시절에 매출 들어오는 날짜를 잘못 계산해서 한 달 반짝 새벽 대리운전 콜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4시간 근무라는 짧은 시간치고는 야간근무수당도 있어서 꽤 괜찮아 보였다. 콜센터에 근무한 적은 없지만, 첫 회사 생활을 운영팀에서 전화나 메일 상담을 담당했던 적이 있어서 쉽게 적응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콜 받는 방법은 첫날 바로 숙지하고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적응 못할 어려운 업무는 아니었다. 문제는 팀장이란 사람의 끊임없는 욕설이었다. 4시간 동안 없이 귓가를 찌르고 들어오는 비아냥 섞인 욕설은 사람을 탈진시켰다. 그분이 그렇게 숨 쉬듯 욕을 하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그게 그분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욕은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뱉는 사람도 탈진시키는 법이었다. 나는 그곳을 관둔 후에도 그분의 빨갛게 충혈된 눈과 술에 취한 듯 혀 꼬인 목소리로 내뱉던 욕들이 잊히지 않는다.


 문득 이것이 내가 써야 할 글이 전할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이 실종된 세상에서 정을 찾아가는 이야기. 약육강식 세상에서 모두가 더불어 생존하는 이야기. 올해 나에게 주어진 행운의 시간 동안 내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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