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리 Feb 15. 2021

월급에 부치는 시 Ode to Salary

토리 시 02

월급에 부치는 시


아직 채 다 스러지지 못한 그대의 자취를 봅니다


통장 한 귀퉁이에 소박히 새겨진 그 자욱에는
변비같던 많은 시간의 낱알과
하릴없던 상념의 어느 조각과

진상 고객에게 미처 발설하지 못한 험한 말 한 뭉텅이와
냉방병 한 줌이 녹아 있습니다.  


아! 그대를 만나기까지 시계의 초침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달려왔는지요!


그러나 오랜 기다림도 무색하게
그대는 홀연히 하늘로 돌아가버립니다그려
옷과 화장품과 어떤 시인의 아름다운 시집 한 권을 남긴 채...

아! 그대는 좋은 월급이었습니다
실로 그러했습니다...





2012년 썼던 시 한 편.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벌었던 돈이 무척 소중하고 애틋했던지 그 애절한 맘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월급은 채망 위의 모래성처럼 어렵사리 손에 쥐이고 쉽사리 흘러나간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나는 용돈이나 벌어 쓰는 정도였다면, 지금의 나는 나라는 한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1인 가구의 가장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월급과 나는 더욱 긴밀해졌다. 월급이 없고서는 서울이라는 이름의 도시 정글을 살아나갈 수 없으므로, 나는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월급을 극진히 모셔야하리라.


그러니 이렇게 빌어본다.


친애하는 월급 님, 쉽게 오셔서 어렵게 가소서!

매거진의 이전글 허물상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