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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May 01. 2021

붓질, 덧발림, 마침내 가족

토리시 06

붓질, 덧발림, 그리고 가족붓질, 덧발림, 그리고 가족


<붓질, 덧발림, 마침내 가족>

처음에는 그저 흰 종잇장이었다

그러다가 아득한 추억따라 연필선이 흐르고

파레트 위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푸르게 반짝이던 시간들이 한데 섞이었다

그 고운 빛깔  속에서 너와 내가 생겨났다


붓질 한 번에 거목같은 아버지가

붓질 한 번에 깊은 물같은 어머니가

붓질 또 한번에 엄마아빠 품에 안겨서

울며 떠들며 보채던 너와 나의 유년시절이

그 그립고 예쁘고 따스한 것들이

흰 종잇장에 스미었다


그 많고 많은 덧발림 끝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너와 나의

가정이

외롭도록 흰 종잇장을 가득 채웠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되어 이 시를 가져와 보았다.

이 시를 쓴 지는  꼭 10년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문예창작 수업을 듣고 있었고, 교수님은 어디든 백일장에 나가 입상하면 가산점을 주시겠노라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학우들과 우르르 백일장에 참가했고, 그 때 썼던 작품 중 하나가 이 것이다. 때는 5월이었고, 따뜻한 봄날,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뛰노는 것을 보았다. 주제는 가정의 달을 기념하여 '가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시가 바로 이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도 나의 가족은 반짝이고 아름다웠나 보다. 서로 남이던 부모님이 만나 우리를 낳아 길렀고, 당신들의 든든한 신뢰와 지지, 사랑 속에서 우리 남매는 자랐다. 그래서 우리의 추억은 언제나 알록달록하다. 예쁘고 따뜻하다.


여느 가정이 그렇듯 때론 우리의 가정에도 폭풍이 불고 천둥번개가 내리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단비는 내렸고 무지개는 떴다. 이제, 동생과 나는 각각 집을 떠나와 산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흰 종잇장을 채워 나가야 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스케치북의 새로운 장을 넘겼다고 해서 우리 가족의 그림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더욱 더 많은 덧발림으로 그 그림을 더욱 빛내게 될 것이다. 미래의 일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어쩐지 이 일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값지고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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