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지는 않겠구나” — 그날 요가가 내게 알려준 것
2023년 5월, 나는 겨우 무기력과 우울감을 벗어나고 있었다.
대부분은 요가로, 그리고 캠핑과 독서로.
그날도 평소처럼 요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하타 요가 수업이었고, 온몸에 개운한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어쩐지 숨통이 트이는 기분도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운전 중이었다.
그때 차창 밖으로 가로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고 있었고, 나는 “하늘이 참 좋다. 나무 그림자가 차 위로 내려앉는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하늘을 보고 있구나. 그림자를 보고 있구나.’
정말 오랫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살지 못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20대 이후 요가를 다시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명상 중에도 ‘관찰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나는 지금 주변을 ‘느끼고’ 있었고,
그걸 인식하고 있는 또 다른 나도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날 유난히 호흡에 집중했던 요가가 나의 인지에 영향을 준 것이다.
나는 예민한 성향으로 원래 생각이 많고, 완벽주의적이고,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인지 언제나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살아왔다.
그 덕에 어떤 상황에서도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고 신중한 성격이라는 평을 듣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행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그날 요가 수업은 몸과 감각, 호흡에 깊이 몰입하도록 유도했다.
손끝과 발끝,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내 몸의 감각을 느끼는 데 집중했던 1시간은,
생각의 과부하에서 나를 끌어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머릿속을 떠나 ‘몸의 감각’과 ‘주변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 한마디가 떠올랐다.
“아… 살겠구나. 나는 죽지는 않겠구나.”
1년쯤 후였다.
나의 콘텐츠를 좋아하던 한 요가 강사님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물 밑에서 빨대로 숨 쉬듯이 계속 나아가세요?
힘들지만, 죽지 않고 계속 버티며 나아가고 계시잖아요.”
그때는 제대로 답을 못 했다.
나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정확히 몰랐으니까.
영화 속처럼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는 드라마틱한 ‘삶의 의지’가 내겐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걸 했다.
몸과 마음이 아파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숨쉬기, 독서, 유튜브 보기뿐이었다.
조금 나아지니 요리하기, 요가하기, 캠핑하기로 확장됐다.
그러다 SNS를 시작했다. 그게 전부였다.
지금도 ‘생각 많은 완벽주의 K-장녀’ 자아가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고조될 때가 있다.
자의식이 과도하게 커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그날의 느낌을 떠올린다.
요가가 나에게 가르쳐준 ‘감각’을.
그것이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데려온다.
당신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행위는 무엇인가요?
어떤 것이라도 괜찮아요.
산책, 명상, Mindful Eating, 춤추기, Shaking.. 어떤 것도 가능하데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앞으로 ‘생각 많은 완벽주의 K-장녀’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게요.
브런치 구독해두시면 다음 편에서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