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아주 조금씩 시야가 트이듯 괜찮아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아주 작게 반복하는 셀프케어 루틴

by 헤더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막막한 기운이 옅어지던 어느 날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집 근처, 최대 정원 4명의 작은 요가원.

그날도 평소처럼 요가원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천천히 엑셀을 밟았는데,

그날따라 시야가 확 트였다.

파란 하늘엔

실수로 붓칠한 듯한 흰 구름이 흘러갔고,

도로 위의 차들조차 싫지 않았다.


아,

나는 지금 조금 나아지고 있구나—


그때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그 느낌을 알아차리고 나니,

그 순간을 더 자주, 더 오래 머금고 싶어졌다.


나는 그날 아침 했던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보았다.

물 두 컵, 짧은 명상, 가벼운 요가,

감정일기, 좋아하는 요가복,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선 일까지.


그렇게 시작된 루틴은

내게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다.

요가는 내 방구석에서 시작해

요가원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내 아침 루틴은 복잡하지 않다.

대부분 아주 단순한 것들이다.


짧은 스트레칭 몇 동작

●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호흡

● 따뜻한 물 두 잔

● 한 단락 독서

● 감사일기와 짧은 필사

● 배경처럼 틀어두는 긍정적인 유튜브 채널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내 뇌에 ‘오늘도 무사할 거야’라는 메시지가 새겨진다.

물론, 매일 똑같이 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명상을 빼먹고,

어떤 날은 책을 넘길 힘도 없다.

그럴 땐 괜찮다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나는,

루틴이란 건 내 마음과 몸을 살피는 기준이지

스스로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조금 늦게나마 배웠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셀프케어와 요가로 우울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후,

또다시 큰 우울이 찾아왔다.

그땐 그 어떤 루틴도 통하지 않았다.

요가도, 감사일기도, 숨 고르기도.


그래서 ‘극복’이라는 단어를

이젠 조심스럽게 쓰게 되었다.

회복은 완결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이사, 남편의 이직, 낯선 환경,

그리고 몸에 퍼진 원인 모를 두드러기.

그 모든 변화가 한꺼번에 밀려오자

나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번엔 병원의 문도 두드렸다.

내 곁에 늘 있어주던 남편조차

이 감정까지는 함께 걸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캠핑 준비를 하던 어느 아침.

일어나자마자 깊게 숨을 쉬고

내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나는 여전히 어제의 일을 복기하고,

이리저리 해석을 덧붙이며

감정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또 ‘검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때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생각은 내가 아니야.

내 마음은 내가 아니야.

내 몸도, 내가 아니야.”


거울을 보며 눈을 마주치고

작은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미쳤다, 잘 될지도 모르겠다.

준비됐어— 가보자.”

삶을 다시 사랑하려면

어쩌면 매일같이

스스로를 다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이게 맞는 길인가?’ 고민하고 있는

하루의 등불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요즘 당신의 하루를 붙잡아주는 작은 루틴은 무엇인가요?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느낀 건 언제였나요?

당신만의 회복은, 어떤 리듬으로 찾아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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