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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힛시커 Jan 18. 2022

직장생활 최악의 사수 썰 품

말랑말랑 갓 졸업생 차디찬 회사생활 적응기

(표지 사진 출처 - 양치기 님)


그 시기를 참 잘 겪어냈어, 장하다.

나는 후배들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미국 어학연수를 위한 1년의 휴학을 거쳐 4학년 2학기에 바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름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년 반 동안은 감히 제 인생에서 만나본 사람 중 가장 겪어내기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수와 일을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글로써 굳이 그녀를 흉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득 생각해 보니 1년이 10년 같았던 그 시간을 겪어내고 더 나은 환경을 쟁취한 제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저와 같은 혹은 비슷한 일은 겪은 분들은 많이 공감도 하시면서 위안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리고 해맑은 갓 졸업생이었던 제가 참으로 파란만장한 시기를 겪었다는 것을 (그때는 고통이었으나) 잊지 않고 기록하고자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큰 소리 한번 치지 못했던 순진한 직장 초년생의 에피소드 들어보실까요!



험담 상습범, 걸리지나 마시지요


그녀가 친한 대리에게 사내 메신저로 제 욕을 하는 것을 서너 번 목격했습니다. 제가 뒤에 서 있는지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제 욕을 하던 모습을 목격한 순간, 당시 제가 어리고 순진하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라도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이젠 꽤나 긴 시간이 지나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OOO 씨는 야근을 안 해요. 할 일이 없나 보죠?", "어젠 제가 남아있는데도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 가더라고요" 등의 근무시간 관련한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맨 땅에 헤딩했어요. OOO 씨는 저보단 살만한 거예요.


본인에게 일을 쉽게 끝낼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도 공유해 주지 않고, 제가 맡은 업무인데도 관련 메일에 참조를 넣어주지도 않았습니다.


"대리님, 혹시 그 메일에 제가 빠져 있을까요? OOO자료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에효.. 쉽게 얻으면 배우는 게 없는 법이죠. 이따 보낼게요. 뭐.. 저는 처음 왔을 때 이런 거 알려주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OO 씨 그나마 편한 거예요."



제 차는 나중에 팔 때 감가 되면 안 돼서.. OO 씨 차 타고 갈까요


당시 그녀를 따라 일주일에 한 번 약 150km 떨어진 곳으로 당일 출장을 다녀왔어야 했는데, 죽어도 본인의 차를 몰지 않고 그렇다고 당당히 제 차로 가자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떠나야 할 시간이 오면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더 처리할 일이 남은 것처럼 괜스레 미적대는 모습, 다 티 나잖아요.


하루는 그냥 대놓고 물어봤습니다.


"대리님, 지난주에 제 차로 갔으니 이번 주엔 대리님 차로 가도 될까요?"

"아.. 저는 중고로 차 팔거라. 주행거리 늘어나면 감가가 많이 된대서.. OO 씨 차로 갈까요"


그 후로도 쭉 제 차로 갔죠..



업무방법은 스스로 알아오세요


한 번은 다음 해의 예산 계획을 짜야하는 업무가 있었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당일 아침에 알았지만요.


"OO 씨, 이거 예산 이따 오후 4시까지 짜야한대요 (엑셀 파일을 포워드 하며)"

"아 대리님 제가 한 번도 안 해봐서 그런데 혹시 어떻게 계획하면 될까요..?"

"저도 몰라요. 그래도 작년에 제가 할 땐 이렇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는데 OO 씨는 좋겠네요"


그녀는 사수의 개념을 잘 몰랐던 걸까요?



새벽 세 시, 먼저 가볼 테니 마무리하세요


보고 자료를 참 많이 만들던 팀에 있었습니다. 신사업이라 참고할 레퍼런스가 많지 않았지요.


그날도 어떤 보고자료를 만드느라 파트가 모두 모여 야근을 하는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더니 어느덧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OO 씨 그거 마무리해서 아침까지 본부장님께 송부해 주세요"


입사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신입 사원이었던 저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어떠한 가이드도 주시지 않은 채 떠나시는 당신.


오늘 점심 외식할까요? 결제는 한 번에 OO 씨가, 돈은 안 보내쥼ㅋ


구내식당이 있었지만 메뉴가 시원찮은 날에는 외식을 하자고 제안하던 그녀, 계산할 타이밍이 오면 또 앞치마를 벗고 괜스레 주변을 정리하는 등 미적대다 그 모습을 보기 힘든 제가 소위 말하는 '카드깡'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대리님, 돈은 왜 안 보내주시는 건가요..


상대가 짜고 얄미우면 후하던 나까지도 똑같이 변하게 되지요? 그런데 대리님, 8천 원씩 보내달라고 굳이 리마인더까지 드렸는데도 왜 안 보내주시나요..




해외출장, 좁은 방 안에서 왜 굳이 메신저 하세요..?


출장비를 정액으로 책정해서 지급하는 저희 회사, 해외 출장이 잦았던 팀에서 그녀와 함께 출장을 갈 때면 여지없이 가장 저렴한 2인용 방 하나를 예약하여 함께 묵으며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녀의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소위 말해 돈을 남겨 먹으려고 하는구나 싶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못했지요.


함께 떠난 이탈리아 출장에서 어김없이 싱글 침대 두 개짜리 작은 방에 체크인을 하고 잠시 침대에 몸을 뉘어 피로를 풀어보려 하는데, 그녀는 갑자기 랩탑을 켜더니 메일을 막 체크하기 시작했어요. 신입이었던 저도 그녀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랩탑을 켰지만 별다른 업무는 보지 않고 침대에 앉아 쉬려고 했지요.


갑자기 울리는 회사 메신저 알람..


- OO 씨, 이거 한 시간 내로 해 주세요.


대리님, 일을 하는 건 괜찮은데,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왜 굳이 숨통 조이게 메신저를 하시죠..?


여러분, 출장엔 무조건 개인 방이 필요합니다.



자료는 네가, 크레디트는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신입 때부터 혼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업무를 배워 빠르게 습득했다는 장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생각해도 신입이 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련의 나날들이었던 것도 부정할 수는 없네요 ㅠㅠ


몇 날 며칠을 영혼을 갈아 보고자료를 만들면 그녀는 그 자료만 받아서 본인 발신으로 유관 부서와 상사 분들에게 메일을 쓰고는 했습니다. 역시나, 자료를 작성한 저는 참조에서 쏙 빼고요.


그 자료를 컬러 프린트해서 본부장님께 가져가 보고하는 모습을 볼 때는 참 많이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내 이름도 넣어 주지.... :(



본부장님, OOO 씨가 요즘 일을 안 하고 놀아요


제가 파트 내에서의 어려움을 그녀에게 진지하게 토로한 다음날,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녀가 본부장님께 제 흉을 보는 것을 목격했지요. (이런 것은 왜 지나치지를 않나..)


"본부장님, 요즘 OOO 씨가 좀 뺀질대고 나태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신입 사원이 나태할 것이 있나요..




이밖에도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는 글이니까 마일드한 것만 골라서 몇 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면 글쓴이로서 좋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고 아플 것도 같습니다. 


그녀에게 이렇게 당하고만(?) 지낸 것은 아니고, 진지한 대화를 시도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대리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미팅룸으로 가실까요? 제가 업무를 잘 해내고 싶은데, 저희 파트 내에 이러이러한 부분 때문에 원활한 업무 진행이 어려울 때가 있는 것 같아서...(중략)... 그래서 대리님께서도 저에게 이렇게 해 주시고, 그에 대해 저도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 OO 씨 근데 그거 알아요? 에구 저 때는 더 심했어요~ 지금은 진짜 많이 나아진 거예요. 저는 어땠냐면요... (중략).. 그래서 저는 이 이상 어떻게 나아질지 모르겠네요.





말 그대로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깨달은 순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며 그냥 모든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부서 이동을 신청해서 지금은 훨씬 배울 점 많고 좋은 팀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지만요 :)





지금도 어린 나이지만 그때는 정말 많이 어리고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아본 경험도 전무해서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퇴근길 운전하면서 펑펑 울어서 신호가 보이지 않아 위험했던 적도 있고, 정신과 세러피를 받아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독립 전이라, 집에 오자마자 현관에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어서 부모님께서 심하게 걱정하셨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잇, 그냥 때려치워! 하는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1단계 그녀와의 대화 시도, 2단계 그 윗분과의 면담, 3단계 정 안되면 부서 이동 신청, 4단계 퇴사. 이렇게 점진적인 플랜을 세워 하나씩 도장깨기를 하자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잘 풀려서 추억처럼 그때를 회상하지만, 그때의 저는 정말 힘들었고, 지금도 그런 환경을 힘겹게 겪어 내고 계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찾아가서 어깨라도 한 번 토닥여 드리고 싶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 오래 방치되다 보면 나의 인간성을 잃고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나중에 후회할 언행을 쉽게 저지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은 언젠가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선배의 자리에 올랐을 때 나의 후배에게 그것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내 마음속 직장생활 상처 중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본문에 포함하지 않은 저의 화려한 에피소드를 조금씩 더 풀며 격하게 공감하고 위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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