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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힛시커 Feb 23. 2022

실제상황! 하루 만에 미국 출장-1

아몰랑 우선 가라니까 가보자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쓰는 브런치 글.






금요일 퇴근 시간 다가올 무렵, 회사에서 갑자기 월요일에 미국 출장을 가줄 수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지나고 미국을 가라고? 뭐 부산 대전 출장도 아니고?

우선 저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못 간다고 말했고 이는 다음의 이유들이 마음에 걸려서였습니다.




1. 부모님이 제주도가셔서 강아지를 저희 집에서 혼자 열흘간 맡아야 했고, 그렇게 강아지와 같이 있던 중 연락을 받은 거였습니다. 갑자기 주변에서 믿음직한 애견 호텔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비싸기도 했지요. 친구나 지인에게 부탁해보기에는 격리 기간까지 해서 약 2주 이상을 맡기기가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 않을 터였습니다.


2. 이 업무는 애초에 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PM(Project Manager)이 있었는데, 본인은 아이도 있고 여러 사정으로 출장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급하게 저에게까지 요청이 온 것.


3. 이 출장 모집을 사실 1월에 했고, 저는 그때 새로운 업무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원하였습니다. 그때 지원해서 뽑혔는데 갑자기 저의 출장지로 예정된 주의 코로나 상황이 너무 심각해져서 업체 측에서 저희 사람들을 지금은 받아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출장을 못 가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에서 발 빼겠거니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러면 출장 가서 할 일을 한국에서 문서 스캔본을 받아 가며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니, 본인들이 출장 못 간대서 제가 대신 갈 요량으로 지원한 건데, 한국에서 업무해야 하면 원래 담당자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어물쩡 업무가 넘어와 버린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상태에서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 저도 일정이 있고 스케줄이 있는데 갑자기 출장을 가 달라고 하니 투덜대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것도 금요일에 연락해서 월요일이라뇨?


4. 무엇보다도 출장 주 토요일에 저의 매우 중요한 개인 일정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월요일은 너무 급박하고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못 간다고 했더니 그러면 화요일은 괜찮겠냐고 하셨고, 제 상황을 말씀드렸지만 완곡한 말투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시는 팀장님의 기세(?)에 못 이겨 우선 출장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순간 이 상황에서 공사를 어떻게 구분하는 게 맞는 걸까, 나를 하루 만에 준비해서 미국을 보내버려도 되는 애로 생각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고, 뭔가 순간적으로 복잡 미묘하고 짜증이 확 났어요. 그런 와중에도 업무를 생각했을 때 뭐가 최선일까? 정말 내가 가야 하는 걸까? 하며 일 생각을 앞세워하게 되는 저는 영락없는 n년차 직장인이었지요.


결국 개인 일정을 어렵게 조율했고 출장을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항공권, 호텔, 기타 등등 신경 쓸 게 많았지만 별 수 있나, 화요일의 나는 비행기를 타는 옵션뿐이다,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출장 하루 전 월요일, 출근했는데 원래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님은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된 저에게 쓸만한 자료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깊게 관여하고 있던 플젝이 아니었던 터라 아는 게 많이 없는데, 가서 뭘 봐야 할지 무엇을 체크해야 할지 리스트는 프로젝트 리딩 중이신 그분께 받아야 했죠. 저 내일 떠나는데 오늘까지 자료 주시냐고 여쭤봤는데, "우선 대강 드래프트 작성해서 드릴게요~"라고 속 좋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사람을 당장 자기 대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미국을 보내 놓고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나 싶으면서도 별 수 없어 우선 그분이 주실 자료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날 즈음 자료가 왔는데, 너무 허술해서 이것만 가지고 미국에 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그리고 그 PM님은 재택근무 중이셔서 원활한 소통이 어려웠어요. 그분의 팀장님도요.

할 수 없이 저는, 두 단계 위 상사를 찾아갔어요.


"00님 안녕하세요, 논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 제가 00님 담당에서 진행하는 ㅁㅁ프로젝트 건으로 미국 출장을 가는데, 실무자 분들께 충분한 자료를 받지 못한 것 같아서 내일부터 미국에서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가 모호한 상황입니다. 관련하여 확실하게 콘셉트를 이해하고 맡은 역할 확실히 인지하고자 논의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프로젝트고 지금 제가 미국 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컨펌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30분가량 미팅을 했고, 다행히 실무자 PM님보다 훨씬 폭넓고 풍부하게 설명해 주셔서 할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자료도 더 받게 되었습니다.


출장을 통보받고 주말 동안에는 행정적인 처리 때문에 골머리, 하루 남은 월요일에는 정작 담당자는 거의 나 몰라라, 당장 출장 가서 그래도 밥값은 해야 하는 저만 전전긍긍.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그렇게 감정을 쏟을 시간도 없이 일정은 촉박했지요.


아무튼 누군가 떠먹여 주길 기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이 모든 게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저는 할 일을 해야 했고, 뚝딱거리며 나름대로 최대한 준비를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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